사람마다 선호하는 타입의 사람이 있다. 자신과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자신과는 다른 성향의 사람에게 끌리는 사람도 있다. 재미있는 건 대화가 잘 통하고 함께 있을 때 즐거워서 '이 사람과 나는 정말 잘 맞는구나'라고 느끼다가도, 어떤 순간을 계기로 멀어지거나 관계가 끊어지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잘 맞다는 건 내 착각이었나'라거나 '나와 잘 맞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라는 생각이 막연히 든 적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잘 맞다고 생각했던 사람과 멀어지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오늘은 "잘 맞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상대와 자신이 서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는 그 사람과 "잘 맞다"라고 여긴다. 독서나 공부 등 자기 계발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이, 주말마다 여행을 가는 사람과 친해질 수 있을까. 물론 서로 다른 면에 끌려 친해지는 사람들은 수없이 많다. 하지만 서로 자신의 관심사를 유지한 채 그대로 만나는 시간이 길어진다면, 둘의 관계가 처음과 같이 친함을 유지하기란 힘들 것이다.
'끌리는 것'과 '끌림을 유지하는 것'은 다르다. 우리는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에게 본능적으로 끌린다. 하지만 서로 다른 사람이 그러한 반대에 끌려 관계를 시작한 후,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이게도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을 그 사람의 존재가 아닌, '스스로의 노력'으로 채워나갈 때도 있다. 감성적인 사람이 이성적인 사람을 만났지만, 이성적인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전보다 더 많이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과 같다.
그러다 보니 관계를 유지하면 할수록, 때로는 상대로 인해 지칠 때도 생긴다. 원하던 사람을 만났음에도 말이다. 이 과정에서 어떤 이들은 상대와의 관계를 끊어버리기도 한다. "우린 너무 달라"라는 이유는 꽤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사실 그 말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바로 '나는 달라지고 싶지 않아'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과 반대되는 성향을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거라 믿는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한 착각이다. 앞서 말했듯이, 반대되는 성향의 사람을 만나면 되려 부족한 성향을 억지로 써야만 하는 상황이 더욱 많아진다.
만약 당신이 감성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는데 비해, 상대는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해보자. 당신의 "서운해"라는 말을 들은 상대가 곧바로 공감을 해줄 수 있을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상대가 정말로 이성적인 성향이 강한 동시에, 당신을 사랑한다면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어떤 게 서운한데?" 이것은 당신의 감정을 알아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자신의 방식으로 당신을 사랑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성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에겐 '이유'가 중요하다. 그렇기에 당신의 서운한 감정이 무엇에서 비롯되었는지를 파악하고 싶어 한다. 서운한 원인이 자신에게 있는지, 자신의 어떤 부분이 상대에게 그렇게 느껴졌는지를 알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것을 확실하게 알아낸다면 '똑같은 이유로 자신에게 서운함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 행동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기에 당신이 여기서 취해야 할 가장 좋은 행동이란 단순하고 명확하다. 상대가 알고 싶어 하는 것을 말해주면 될 뿐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당신은 고통스럽고 껄끄러운 고비들을 마주해야만 한다. 흘러넘치는 감정을 힘겹게 억누르는 동시에,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이성'을 최대한 사용해야만 한다.
자신이 어떤 이유로 서운했는지, 그러한 행동을 자신이 왜 서운하게 느끼는지, 앞으로 상대가 자신에게 어떻게 해주길 바라는지를 조리 있고 차분하게 설명하는 일련의 과정들. 즉, 당신이 상대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 중 가장 서투른 부분을 억지로 끄집어내야만 하는 것이다.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을 거부하거나 회피한다. 그와 동시에 자신이 좀 전까지 가장 싫어했던 행동을 상대에게 거꾸로 요구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냥 좀 공감해 주면 안 돼?"
결국 상대와 너무 달라서 관계가 끝난 다기보단, '스스로 바뀔 자신이 없어서'가 좀 더 정확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그런 건 아니다. 상대와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기에, 힘들더라도 상대가 원하는 방식으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또한 존재한다. 서운한 감정을 애써 삭히며 상대에게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차근차근 설명해 주는 사람, 상대가 느끼는 감정이 어떤 기분일지 잘 느끼진 못해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라고 생각하며 다독여줄 수 있는 사람 말이다.
스스로 바뀌면서까지 상대와의 관계에 노력했던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그것은 이미 지나간 사람을 얼마나 자주 떠올리느냐이다. 관계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그런 사람은 정말로 흔치 않기에, 다른 누구를 만나더라도 자연스럽게 그 사람이 떠오르면서 뒤늦은 후회를 하게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과 인간관계에 대해 대화를 하면서 느끼는 건, 모두가 바라는 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 '문제가 생겨도 대화로 잘 풀어갈 수 있는 사람', '각자의 다름을 인정해 줄 수 있는 사람'. 그런데 정작 그런 사람을 곁에 두길 바라는 사람들 중, 본인도 그러한 노력을 꾸준히 하는 사람은 아주 적었다. 화가 나면 아예 대화 자체를 피하거나,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강하게 주장하거나, '나는 맞고 너는 틀렸다'는 식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자신의 기준만을 고수한 채 '나와 잘 맞는 사람'만을 만나길 고집한다면, 사실 그 누구와도 잘 맞기란 어렵다. 정말로 괜찮은 사람은 누구와도 잘 맞춰나갈 수 있다. 그 말인즉슨, 타인과 잘 맞고 맞지 않고 보다 더 중요한 건 '맞춰나가기 위해 스스로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이다. 자신이 원하거나 부족한 부분을 충분히 그것을 가진 상대를 곁에 두고 충족하려는 건 좋지 못한 행동이다. 어쩌다 운 좋게 그런 방식으로 원하는 것을 얻더라도, 그다음에도 원하는 것이 생기면 그 사람은 또다시 그런 사람을 곁에 두려고 할 것이다. 그것이 계속 반복되면 그 사람은 누군가 곁에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된다. 더 중요한 건 아무도 그런 사람을 가까이 두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사실이다.
아무리 잘 맞더라도 다른 부분은 당연히 있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잘 맞는 사람을 찾기보단, 잘 맞지 않더라도 어떻게 맞춰나갈지를 고민하고 행동해 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결국 스스로의 단점을 어느 정도까지 본인의 노력으로 극복하려 하는 태도를 갖추지 못하면, 누구를 만나더라도 좋은 관계를 오래 유지할 수 없다. 운동이라고는 전혀 하지 않으면서, 좋은 음식과 값비싼 약만 먹는다고 건강이 좋아지진 않는다. 좋을 때 좋은 것보다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서로를 이해하고 감싸주려 하는 것. 그런 사람이야말로 당신과 '정말로 잘 맞는 사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