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떠올리는 것'의 진정한 의미

by Quat


명절이 될 때면 나오는 얘기들이 있다. '제사를 꼭 지내야 하는가?' 해가 거듭될수록 점점 제사를 축소하거나, 지내지 않고 넘어가는 곳들이 많아지는 듯하다. 나 또한 이 부분에 있어서는 그럴 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왜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조상 잘 만난 자손들은 명절날 해외여행을 가고, 그렇지 않은 자손들은 제사에 정성을 기울인다'라고. 물론 제사와 성묘 또한 누군가에겐 반드시 지켜야 할 소중한 문화라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명절날 제사를 지낼 때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1년에 딱 한 번 정성스레 돌아가신 분을 기리는 것보다, 여러 번 그분을 떠올리는 게 더욱 참되고 옳은 마음이 아니겠냐고 말이다. 오늘은 "누군가를 떠올리는 것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당신은 제사나 장례식과 같은 행위가 왜 이뤄진다고 생각하는가? 누군가는 이에 대해 "돌아가신 분을 기리기 위해"라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제사, 장례식, 추모는 돌아가신 분을 위한 마음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그 분과 관련 있는,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 생각한다.



돌아가신 분은 말이 없다. 무언가를 바란다고 한 적도 없을 터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제사상을 차릴 때나, 장례식에 수많은 돈과 시간을 쏟아붓는다. 돌아가신 조상님이 드실 것이라며 아침 일찍부터 좋은 과일이나 음식들을 골라 정성스레 손질한 뒤 제사상에 올린다. 누군가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며칠을 목을 놓아 울거나, 그와 관련 있는 사람들이 모여 그 사람에 대한 각자의 기억을 공유하며 슬픔을 삭힌다. 이것이 정녕 세상을 떠난 사람을 위한 행동이라 할 수 있을까.






물론 이 말이 '돌아가신 분을 위한 마음이 없다'라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가 제사나 장례식을 치를 때 그런 의미도 당연히 존재하지만, 개인적으론 돌아가신 분을 위한다는 의미보다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행위"라는 생각이 시간이 갈수록 더욱 들곤 한다.



제사를 1년에 몇 차례씩 지내는 집안일 경우, 그러한 행위로 인해 자손들에게 조상의 은덕이 베풀어질 거라는 믿음 또한 강하게 가질 것이다. 장례식도 근본적인 의미에선 크게 다르지 않다. 자신과 가까운 누군가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고 상상해 보라. 그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자신과 가까운 관계일수록, 우리는 '그 사람을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렇기에 그 사람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마음을 정리할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장례식'이라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사람들은 살아생전 그와 함께 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슬픔에 잠기고, 자신과 마찬가지로 그 사람과 추억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함께 슬픔을 나누며 서서히 그를 마음속에서 떠나보낼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내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살아생전 그 사람에게 못되게 굴었거나 신경도 제대로 쓰지 않았던 사람들이 정작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그 누구보다 슬퍼하거나 분노한다는 사실이다. 병으로 몸져누워있던 부모님을 몇 년 동안 보살피던 자식보다, 살아생전 부모를 잘 찾아뵈지도 않던 또 다른 자식이 부모의 장례식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누구보다 크게 우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평소엔 열심히 살지도 않던 사람이 제사만큼은 철저히 챙기며 조상의 은혜를 바라기만 하는 모습을 떠올려보라. 그런 속사정을 아는 사람의 눈엔 얼마나 꼴사납게 보이겠는가.



나는 어떤 삶을 살든, 누가 되었든 상황에 따라 변하지 않는 인생의 진리가 몇 가지 있다고 믿는다. 그중 하나가 바로 '최선을 다한 사람은 결코 과거를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선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자신의 기준에서 무언가를 하며 "정말 나는 후회 없이 모든 걸 해봤다"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은 그 자리를 떠난 후 결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이따금씩 과거를 회상하는 것과, 과거에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후회를 하는 건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르다. 누구나 살면서 자신의 삶 전반을 떠올리게 되는 시기가 있다. 그 시절 자신이 내린 선택과 그에 따른 결과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삶을 회상하는 사람'과 '삶을 후회하는 사람'은 여기서부터 전혀 다른 행동을 보인다.



회상하는 사람은 자신이 과거에 내렸던 선택에 대해 곱씹어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신이 내린 선택에 대해 온전히 스스로 책임을 져야만 한다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 당시 자신이 한 선택으로 비록 결과가 좋지 않았더라도, 그 선택이 당시로서는 최선이었다는 걸 수긍한다. 그로 인한 결과에 대해 변명하지도, 후회하지도, 되돌리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현재 자신의 삶이 좋은 선택과 그렇지 않은 선택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거라는 걸 알고 있으며, 가장 중요한 건 그로 인한 현재에 본인 스스로가 만족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후회하는 사람은 정반대로 행동한다. 매번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선택을 내리면서, 과거에 내렸던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곱씹는다. '그때 내가 이랬다면 어땠을까' '저랬다면 어땠을까' 결과가 좋지 않으면 이미 자신이 뱉은 말과 행동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려고 하기보단, '남 탓'을 하거나 '상황 탓'을 하며 자신의 책임을 부정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그렇기에 현재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이 가진 것보단 가지지 못한 것과 남들보다 부족한 것에만 초점을 맞춘 채 살아간다.






똑같은 행위를 하더라도 어떤 마음을 갖고 하는지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무엇을 하든 말이다. 똑같이 청소를 해도, '이걸 내가 왜 해'라고 생각하고 하는 것과 '이왕 하는 거 깨끗하게 하면 좋지'라는 마음을 먹고 했을 때 청소를 하는 과정부터 결과는 천지차이다. 제사도 그렇다. 단순히 조상의 은덕을 받기 위해 제사를 차리는 행위에만 연연하는 걸, 과연 조상신이 보더라도 좋게 봐주겠냐는 것이다. '누가 제사를 물려받을 것이냐' '나는 할 만큼 했으니 이젠 네가 해라' '네가 왜 그걸 물려받냐' 자신의 제사를 두고 자손들끼리 치열하게 다투는 모습을 몇 달 동안 보다가 제사를 지내는 날만 정성스럽게 지낸다 한들, 그 과정을 전부 지켜본 조상이 그런 자손들에게 은덕을 베풀고 싶을까? 적어도 나는 그럴 마음이 전혀 들지 않을 것 같다.



아무 생각 없이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 '왜 그것을 해야만 하는가'에 더욱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그것을 하기 위해 나름의 최선을 다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래야 지나간 일에 연연하는 일이 줄어들고, 현재에 더욱 몰입하고 집중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있을 때 잘해야 한다"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다만,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걸, 우리는 항상 인지하며 살아야 한다. 자신이 무언가를 잘 알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그것을 자신이 잘한다는 보장은 결코 없는 것이다. 적어도 자신이 아는 것을 잘하고 있다면 굳이 그것을 타인에게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며, 다른 사람들 또한 당신이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인정할 것이다. 잊지 말자. 듣기 좋은 달콤한 말을 하는 사람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야말로 당신이 오래도록 곁에 둬야 할 사람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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