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내가 만난 좋은 사람들의 특징 중 가장 겹치는 것을 딱 하나만 말해보라고 한다면, '대화를 잘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흔히들 대화를 잘하는 것과 말을 잘하는 것을 비슷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 2가지는 전혀 다르다.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상대에게 잘 전달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꼭 대화를 잘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말을 잘하는 사람들 중, 대화에 문제를 겪고 있는 이들 또한 아주 많았다.
왜 말을 잘하는 사람들도 대화에 문제를 겪는 걸까. 바로 그들이 상대의 생각에 대해 '넘겨짚기'와 '속단하기'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상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 스스로 상상하고 그것이 '사실'이라는 전제로 답변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말을 잘하고 못하는 것과 상관없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화를 할 때 이 2가지 중 1가지 또는 2가지 실수 모두를 저지르곤 한다. 이것이 반복되고 습관이 될수록, 누구를 만나던 대화를 하기가 힘들어지는 것이다.
이것과 관련해 한 가지 예시를 살펴보자. 이제 막 만남을 시작하려는 남녀가 있다. 그들은 사귀기 전, 앞으로 조심해야 할 부분들에 대해 서로 대화를 하는 중이다. 그러던 중 기념일에 대해 한쪽이 말했다. "넌 기념일을 얼마나 챙겨야 한다고 생각해?" "글쎄, 그게 그렇게 중요할까?" 여러 차례 대화를 주고받은 후에 그들은 생일이나 1주년과 같은 굵직한 의미를 가진 기념일들만 챙기기로 합의했다. 또한 그러한 기념일에도 특별한 뭔가를 챙겨주기보단, 조금 더 특별하게 보내는 정도로 생각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기념일이 되었을 때, 그들은 서로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한쪽은 '그래도 기념일이니까'라고 생각하며 꽃이나 선물 같은 것들은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 반면, 다른 한쪽은 챙기지 않기로 했으니 별다른 선물을 준비하지 않은 것이다. 똑같이 '기념일이라고 해서 특별히 보내려고 하진 말자'라고 했지만, 서로가 생각한 기본 전제가 달랐기 때문에 생긴 오해였던 것이다.
대화를 하면서 가장 오해가 생기기 쉬운 순간이 언제인지 아는가? 바로 '이 정도 말했으면 알아들었겠지'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라는 생각이 들 때이다. 예전엔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넘어갔던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왜냐하면 내 머릿속에 있는 생각 그대로를 온전히 전달하는 게 굉장히 힘들기 때문이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우리는 머릿속의 '날 것 그 자체'의 생각을 상대에게 그대로 전달하는 게, 대단히 무례하다는 걸 알게 된다. 아무리 화가 나도 정제된 표현으로 생각을 전달하는 것도 어른으로서 지녀야 할 태도이기 때문이다. 전달하고픈 메시지에 갖가지 수식어를 갖다 붙이거나, 빙빙 둘러 말하기도 한다. 문제는 그런 과정이 지나치면, 기존에 전달하고자 했던 내용과 전혀 다르게 해석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기분이 상했던 일을 전달할 때도 상대의 눈치가 보여 너무 좋게 둘러 말하면, 나의 기분이 나쁜지조차 모르고 넘어가기도 한다. 핵심을 전달하는 게 힘들어서 같은 말을 표현만 다르게 하다 보면 상대가 듣다가 지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게 쉬운 사람들은 이것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이 과정에서 상대의 생각을 속단하거나, 넘겨짚는 경우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똑같은 말을 하고 있더라도 서로의 기본 전제가 다를 수 있음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 쓸데없는 오해를 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요구하고 싶다면 정확히 자신이 요구하는 게 무엇인지 밝힐 수 있어야 한다. 거절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 정도면 알아듣겠지'라는 생각으로 좋게 거절을 하면, 상대는 그게 거절인지도 모를 수도 있다.
원하는 걸 확실하게 말하는 것. 자신이 뱉은 말로 인해 발생할 결과가 무엇이든 기꺼이 감수할 준비가 되어있는 것. 누군가를 만나 대화를 할 때 이 2가지만 주의 깊게 살펴봐도, 이 사람이 괜찮은 사람인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쓸데없는 넘겨짚기와 속단을 하며, 마치 자신이 상대를 완벽히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할수록 인간관계는 점점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오래 알고 지냈다고 한들, 나조차 나를 모를 때도 있지 않은가. '아직도 내가 모르는 게 있을 수 있다'는 것. 누군가와 오랫동안 원만하게 지내기 위해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마음가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