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부른 상태에선 맛있는 음식을 봐도 그다지 감흥이 없다. 하지만 배가 고프면 약간 질이 좋지 않은 음식들도 먹음직스럽게 보이곤 한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내면에 사랑이 충만한 상태에서는, 자신을 향한 호감이 커도 상대가 별로라면 거절하는 게 어렵지 않다. 반면 사랑이 고프면 상대가 별로여도 호감과 관심을 놓치고 싶지 않기에 관계를 계속 이어나가게 된다.그러다 덜컥 만남을 시작한 뒤, 뒤늦게 후회한 적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힘든 연애를 반복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힘든 연애를 반복하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사랑이 고파서" 관계를 시작한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식으로 연애를 시작한다. 외로운 시기를 보내던 중 누군가의 관심을 받는다. 자신에게 관심을 표현하는 사람이 평소 생각하던 괜찮은 사람의 기준엔 부족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오랜만에 받는 타인의 호의가 나쁘지 않기에 몇 번 더 그 사람과 연락을 취하고 만남을 가진다. 그러한 과정에서 별로인 모습들을 하나둘씩 목격한다. '정말로 이 사람을 만나도 될까'라는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돈다. 주변 친구들에게 이러한 고민을 털어놓는다. 누군가는 시작하라고 하고, 누군가는 멈추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사람이 없으면 '이제 누가 자신을 그만큼 사랑해 줄까'란 생각도 들자, 별로였던 모습들이 점점 좋게 해석되기 시작한다. 그렇게 만남이 시작된다.
막상 만나기로 하자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진다. 봇물이 터지듯, 지금까지 누군가를 만나면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둘씩 하자, '왜 진작 시작하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행복한 기분이 든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다. 그 사람보다 자신이 관계에 더 신경을 쏟는 것 같다. 사귀기 전과는 달리, 상대가 자신을 덜 사랑해 주는 것 같은 태도에 서운함을 느낀다. 한두 번은 좋게 말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듯하자 서운함은 더욱 커진다. 헤어져도 자신보단 상대가 더 아쉬울 거란 생각에, 표현은 점점 날이 서 있고 날카로워진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상대가 나의 서운함에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한 기분이 든다. 화를 내도, 서운하다고 말해도 무신경하게 대답만 하고 달래주려고 하지 않는다.그 모습에 더 서운하지만 조금씩 눈치가 보이기 시작한다. 어느 날, 상대가 먼저 이별을 통보한다. 마음 한쪽이 덜컥 내려앉는다. 애써 침착하게 대화를 마무리하고 집에 돌아오지만 왠지 모르게 자꾸 눈물이 난다. 그동안 상대에게 했던 행동들이 떠오르며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내가 너무했나' '그땐 내가 좀 심했지' 결국 아쉬운 건 본인이기에 상대를 만나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관계를 붙잡는다.
이제는 상대가 서운한 행동을 해도 넘어가는 일들이 잦아진다. 행복하면서도 가슴 한쪽이 괜시리 답답한 날들이 이어진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아무것도 아닌 일로 쌓였던 감정이 터지고, 몇 번의 다툼 끝에 관계가 끝이 난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던 중, 또다시 누군가의 새로운 관심을 받는다. '지금은 연애하고 싶지 않다' '누구를 만날 때가 아니다' 자신의 거절에도 상대는 굴하지 않고 계속 관심을 표현한다. 잦은 술자리, 흡연, 야근과 장거리, 친한 이성친구 등. 머리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이미 어느새 상대의 손을 잡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아니야. 멈추라고. 어디선가 들리는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더니 이젠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사랑받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우리는 누군가가 보내는 관심보다, 관심을 보내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행복한 연애 끝에 결혼하더라도 1~2년 사이에 이혼이라는 결말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건, '좋은 사람'은 지금 내게 좋은 걸 주는 사람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누군가 자신에게 잘해줄수록, 그 사람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잘해주는 건 특별한 게 아니라 기본 중의 기본이다. 오히려 상대를 잘 알지도 못하는데 지나치게 잘해준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말 위험한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크고 화려하게 불탈수록, 그만큼 빠르게 사그라든다. 잘 모르는 상대가 과하게 잘해주는 걸 '그만큼 매력적이니까'라며 스스로를 추켜세우는 게 혼자만의 엄청난 착각일 수 있다. 어쩌면 모르는 사람이 쉽게 다가갈 수 있을 정도로 쉽거나 만만해 보이는 행동을 하는 것일 수도 있음을 기억하라.
사랑이 고픈 상태에서도 상대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을 향한 관심과 호의에 눈이 멀어, 상대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관계를 시작했을 때 오는 결과가 얼마나 잔혹할 수 있는지 겪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러한 경험은 단지 이별 이후의 아픔뿐만 아닌, 다음 만날 사람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열 번의 불안정한 연애보다, 한 번이라도 좋은 연애를 경험하는 게 훨씬 이로울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누구든 자신이 한 행동만큼의 사랑을 돌려받는다는 것. 자신이 한 것보다 과한 관심을 받는다는 건, 그만큼 상대가 당신에게 바라는 게 있다는 걸 명심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