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지치는 순간들이 있다. 그럴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기댈 수 있거나 의지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다. 그것을 꼭 사람이라고만은 볼 수 없다. 누군가에겐 사람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게임이 될 수도, 오래된 인형일 수도, 말라비틀어진 나뭇잎이 될 수도 있다.
자신만의 기준으로 상대가 의지하는 무언가를 비난할 수 있을까. 이런 말을 하는 나 또한 무심코 타인이 기대고 있는 것을 별 것 아니라고 말한 적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러한 생각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인가를 떠올려보기도 한다. 나에겐 아무것도 아닌 무언가가, 타인에겐 온 우주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어린 왕자'에 여우가 등장하는 부분을 좋아한다. 세상에 수백만 마리가 있는 여우 중 한 마리가, 누군가에겐 매우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가 되는 그 순간을. 그렇게 누군가에게 각인된 존재가 자신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던 사람과 관계를 맺고 그것을 유지하는 과정. 누워서 빈둥거리며 쉬는 1시간과,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기 1시간이 전혀 다른 의미를 지내는 건 다름 아닌 그 때문이다.
때때로 우리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일부분을 기대기도 한다. 처음엔 그저 손을 맞잡은 정도에 불과하다. 며칠이 지나고 나면 팔짱을 낀다. 시간이 좀 더 흐르면 상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기도 한다. 하지만 거기서 좀 더 진행이 되면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멀쩡한 두 다리가 있음에도 그 사람에게 업어달라고 하거나, 일으켜달라고 하는 등 어떻게든 그 사람을 곁에 붙잡아두려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특별한 존재가 된다는 건, 그 사람에게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한 번이라도 남들과 다른 눈으로 자신을 바라봐주는 사람을 만나보면 알 수 있다. 그렇기에 그 사람이 자신에게 기대거나 의지하는 것 또한 자신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한쪽이 다른 쪽에게 기대는 순간들이 길어질수록, 관계는 서서히 무너진다.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서서히, 하지만 분명하게. 그렇게 누군가에게 좋았던 사람이, 마지막엔 최악의 사람으로 변한 채 쓸쓸히 떠나간다는 걸 알고 있는가.
어떤 사람이든 힘든 순간 기대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말이다. 학교 폭력으로 인해 성인이 된 후에도 트라우마가 남은 소년에겐, TV가 그것이었다. 어린 시절 인종 차별로 인해 심한 마음고생을 했던 한 소년에겐, 서핑을 할 수 있는 파도가 그것이었다. 그들 모두 좋은 사람이지만, 사람이 아닌 다른 것에 의지하며 고통스러운 매일을 견딘 것이다. 그들에게 TV와 파도란 가족이자, 친구이자, 연인이었던 것이다.
무엇에 기대든 의지하는 무언가가 생긴다는 건, 본인에게 그것이 특별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건 TV나 파도가 아니다. 다름 아닌 '사람'이다. 당신이 바라보는 사람이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고 한들, 그 또한 단지 사람일 뿐이다. 힘들 때 자신의 곁에 누군가 있길 바라는 하나의 존재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상황에 따라 두 가지 사람이 될 수 있어야 한다. 타인에게 어깨를 빌려주는 사람과 타인의 어깨에 기댈 수 있는 사람 모두.
결국 TV나 파도가 누군가에게 특별해지는 이유는 하나이다. 그들이 힘들었던 순간, 기댈 수 있는 누군가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 또한 누군가가 아닌 다른 것에 의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다. 다만 당신이 의지하는 그것을, 어느 누구도 대체할 수 없을 거라 속단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결국 당신과 나, 우리 모두 힘들 때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곁에 있어주길 바라는 인간이라는 걸 기억하길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