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구도. 익숙한 목소리. “지금부터 흉가 1층을 먼저 둘러볼게요.” 영수의 말투는 생각보다 침착했다. 희수는 대본을 띄운 창을 스르륵 넘겼다. 화면 속 영수는 평소와 달리 비장한 표정을 한 채, 조심스럽게 흉가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채팅창에서도 벌써부터 “가보자고~”, “무섭다 ㄷㄷ” 같은 말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제 시작했지만 나쁘지 않은 사람들의 반응을 보며 안심한 희수는 대본을 보며 준비한 대사를 채팅으로 남겼다. “그 흉가는 도대체 어떤 곳이길래 이렇게 긴장하신 건가요?”
그러자 영수는 천연덕스럽게 희수의 채팅을 읽으며 자신이 방문한 흉가가 어떤 사연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시청자들에게 설명해 주었다. 희수는 이미 그와 몇 번 합을 맞춰보면서 영수가 어떻게 말할지 알고 있음에도, 자신이 그의 설명에 몰입하고 있음을 느꼈다. 살짝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긴장한 표정, 그러면서도 자연스럽게 설명을 하는 영수를 보며 새삼 대단하다고 감탄했다. 몇 년을 알고 지냈지만 저 녀석에게 저런 재능이 있었다니.
"오 설명 미쳤다"
"이 사람 곧 떡상예정"
"분위기 지리네"
아직까진 자신을 포함해 20명 남짓의 사람들만 방송을 보고 있었지만, 자신과 마찬가지로 그들 또한 이 방송에 점점 몰입하고 있었다. 자신을 향한 논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흉가를 방문해 두려우면서도 최선을 다해 정면돌파하려는 신입 유튜버의 열정 가득한 모습. 희수는 문제없이 진행되는 모습에 마음이 조금씩 놓이고 있었다.
그렇게 영수가 1층을 돌고, 2층 계단을 오르기 전까지는 별다른 일은 없었다. 계단을 올라 2층 복도를 서성거리던 순간, 사건은 시작됐다.
“으악, 젠장!”
‘쨍그랑!’
사람들의 반응에 신이 난 건지, 영수가 2층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며 카메라를 이리저리 돌리던 도중,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에 희수도 깜짝 놀랐다. 이런 건 대본에 없었는데.
"아, 여러분. 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실수로... 꽃병을 깨뜨렸어요."
이윽고 비친 화면엔 먼지가 뽀얗게 쌓인 나무 바닥에 잘게 부서져 여기저기 흩어진 유리조각들이 보였다. 영수도 많이 당황했는지 목소리가 아까와는 다르게 떨리고 있었다.
"개민폐 유튜버네"
"뭐 함?"
"흉가에서 물건 함부로 건드리는 거 아니랬는데 ㅉㅉ"
삽시간에 달라진 채팅 분위기에 영수가 거듭 사과를 하며 '좀 더 조심하겠다'라고 말했다. 방금 방송에 들어온 시청자들에게 기존 시청자들이 영수에 대한 욕을 하자, 그들 또한 영수에게 '한심하다', '제정신이냐'며 함께 욕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계속해서 시청자들에게 사과를 하던 영수가, 돌연 말하던 입을 닫았다. 정확히 말하면 입뿐만 아니라 얼굴의 모든 근육이 일시에 굳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모든 게 굳은 상태에서 그의 눈동자만이 아주 천천히 왼쪽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향했다.
"얘 뭐 함?"
"갑자기 급 연기하네"
"이런다고 우리가 속아 넘어갈 것 같음?"
순간, 잡음이 섞인 듯한 소리가 이어폰을 타고 흘러들었다. 기계음인지 사람 소린지 분간도 어려운 날카로운 마찰음이었다. 희수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렸다. 이게 무슨 소리지? 흡사 칠판을 날카로운 무언가로 천천히 긁을 때 나는, 귓구멍을 기분 나쁘게 자극하는 불쾌한 소리였다. 다른 시청자들도 같은 소리를 들었는지 채팅창의 주제도 방금 난 원인 모를 소리에 대해 너도나도 한 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영수는 여전히 얼굴이 굳어있었고, 희수는 결국 영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때 전화를 걸라고?"
"그래."
"방송 중에 전화를 받게? 그럼 사람들이 더 의심하지 않을까?"
"아니, 누가 전화를 받는대? 어차피 한 손엔 손전등 있고, 다른 쪽엔 카메라라 받지도 못해."
"그럼 전화를 해도 의미가 없잖아."
"팔 안쪽에다 진동모드로 휴대폰을 묶어둘 거야. 그러면 전화를 해도 진동으로 알아챌 수 있으니까. 겨울이니까 옷 안쪽에 휴대폰 정도는 넣어놔도 티도 안 나지. 어쨌든 진동이 느껴지면 나도 바로 채팅창을 볼 거고, 그럼 다시 대본대로 할 수 있을 거야."
"오케이. 정리하면 방송을 보다가 네가 많이 당황하거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것처럼 느껴지면 바로 전화를 걸고, 채팅창에 그다음 행동에 대해 말을 해달라?"
"그렇지."
"그런데 그렇게까지 해야 할 일들이 있을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대비는 해두면 좋지."
몇 시간 전, 영수와 대본 점검을 하다가 그가 빠뜨렸던 게 있다며 자신에게 했던 말이었다. 설마 했었는데 이런 일이 정말로 생길 줄이야. 다행히 진동을 느꼈는지 화면 속 그가 살짝 놀라는 모습이 보였다. 멍해 보이는 눈빛에 다시 생기가 돌아오는 것을 보자, 희수는 계속 전화를 건 상태로 채팅창에 괜찮냐는 물음과 함께 다음 그가 해야 할 행동에 대해 살짝 언급하는 채팅을 남겼다. 두어 번 가쁜 숨을 몰아쉬던 그는 아까보다 정신이 조금 돌아온 듯 채팅창을 다시 확인했다.
"아... 여러분 죄송합니다. 제가... 방금... 아, 이상한 소리가 났다구요...? 아하, 그러셨구나. 음, 어. 연기요? 아, 네. 연기... 하하, 조금 티 났나요? 지금까진 너무 별일이 없어서 한 번 해봤습니다. 방금 소리는... 음... 뭐 바람소리인가 보죠... 네, 그러면 이제... 다음 방으로 한 번... 가볼게요."
희수는 영수의 목소리가 훨씬 더 떨리고 있음을 느꼈다. 지금껏 그와 친하게 지내면서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떨림이었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그것이 무엇 때문인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예전에 유튜브에서 딱 한 번, 이것과 같은 부류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었다. 어딜 가나 꼭 한 명씩 있는 짓궂은 친구들의 권유로 본 영상에 나온 사람의 목소리였다. 그 영상은 다름 아닌 전쟁의 포로로 잡힌 사람이 눈가리개로 눈을 가린 채, 자신의 국가와 가족들에게 살려달라고 말하는 목소리였다. 그것이 그가 생전 마지막으로 낼 수 있는 순간의 목소리였다. 생존과 직결된 공포와 마주한 인간이 내는 목소리의 떨림. 방금 영수의 목소리에서 그것과 똑같은 떨림이 느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