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시간, 영수는 한 허름한 집 앞에 서 있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근방에서 가장 유명한 흉가’라는 정보를 보고 미리 답사를 온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흉가라고 하면 깊은 산속, 혹은 폐광이나 접근이 불가능한 장소를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이 집은 의외로 도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온 흉가의 모습은 의외로 그리 낯설지 않았다. 평소에도 공포영화나 관련된 콘텐츠를 좋아하다 보니 익숙한 것일까. 영수가 마주한 폐가는 벽돌로 지어진 2층짜리 오래된 주택이었다. 붉은 벽돌로 마감된 1층 외벽은 시간이 흐르며 군데군데 색이 바래 있었고, 집의 정면 중앙엔 창문 대신 창백한 녹빛의 철문 하나가 덜렁 붙어 있다. 그 철문 위로는 거칠게 자란 가느다란 잡초가 벽을 타고 자라나 마치 누군가 안에서 기어 나오려는 손길처럼 뻗어 있었다.
그는 조심스레 철문을 넘어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흔히 흉가라고 하면 관리를 하지 않은 채 버려진 집이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그런 곳들일수록 사유지로서 관리가 철저한 곳들이 많다고 들었다. 괜히 실수를 했다가 사건이 커지면 지금보다 곤란해질 수 있기에 영수가 방문한 이 흉가도 그런 면에서 나름대로 철저히 조사 후 안심할 수 있다고 판단한 장소였다.
철문을 통과해 본 집의 모습은 더욱 가관이었다. 왼편의 창문은 유리가 모조리 깨져 있었고, 그 틈새로 보이는 내부는 칠이 벗겨진 흰 벽과 뒤엉킨 커튼 자락뿐이었다. 반면 오른편 창은 알루미늄 셔터가 굳게 내려와 있었지만, 그마저도 녹이 슬어 군데군데 벗겨진 자국이 불규칙하게 번져 있었다. 영수는 조심스레 2층으로 올라가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여기저기 부서진 곳들, 빈 물통과 다 먹은 과자 봉지, 반쯤 깨진 소주병 등 종종 흉가체험단이나 노숙자들이 머물다 간 흔적들도 보였다. 발코니 유리문은 대부분 깨지거나 열려 있어, 밤이 되면 마치 누군가 그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것만 같은 기분도 들었다. 그래도 평소 공포영화나 관련된 콘텐츠들을 즐겨보는 편이라 그런지, '무섭다'라는 생각보단 마치 잘 지어진 세트장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런 데를 무섭다고 해야 하나...’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휴대폰을 꺼내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접속해 본다. 댓글창은 여전히 ‘조작이다’, ‘내용이 어디서 본 것 같다’는 말들로 가득하다. 그때 문득, 주변이 유난히 조용하다는 걸 알아챘다. 개 짖는 소리도, 고양이 우는 소리도 없다. 그 순간, 오래전 커뮤니티에서 보았던 글 하나가 스쳐 지나간다. '진짜 흉가 근처엔 동물도 얼씬하지 않는다.' 영수는 자신도 모르게 닭살이 돋는 걸 느꼈다. 뒷목이 싸늘해진다. “어쩔 수 없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그는 천천히 그 자리를 떠난다.
한편, 같은 시각 희수는 방 안에 앉아 영수가 건넨 대본을 읽고 있었다. 처음엔 별생각 없이 받아들였지만, 그가 간다고 했던 장소가 마음에 걸렸다. 평소 이런 데 관심이 없었던 희수는 생소한 키워드를 하나하나 검색해 본다. 결과는 의외로 많았다. 단순한 괴담을 넘어서, 그 집에 다녀온 후 이상한 일을 겪었다는 후기들, 심지어 흉가 체험을 하러 갔던 사람이 사망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출처가 명확하진 않았지만, 그런 내용을 보고 나자 묘한 불안이 가슴속에 스며들었다.
결국 희수는 영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도 같이 갈까? 혼자 가기엔 좀 불안하지 않냐?” 그러나 영수는 단호했다. “아니. 같이 가면 오히려 조작 의심만 더 받을 수도 있어. 이건 내가 혼자 해야 돼.” 그 말에 희수는 더 말하지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시 대본으로 시선을 돌리려던 그때, 밖에서 아이의 비명소리가 울린다. 깜짝 놀라 창문을 열어보니, 어린 여자아이가 엄마와 장난을 치고 있을 뿐이었다. 순간적인 긴장감은 풀렸지만, 그 이상하게 쿡쿡 찌르는 불안감은 가시질 않았다.
해가 진 뒤, 영수는 가방을 멘 채 다시 그 집 앞에 서 있었다. 낮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달빛도 흐릿했고, 안개가 엷게 깔린 탓에 시야가 흐려졌다. 도로에서 멀지 않지만 마치 고립된 섬처럼, 이곳엔 가로등 불빛조차 닿지 않았다. 한 걸음, 두 걸음 다가설수록 정적이 귀를 압박했다. 바람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상하리만큼 고요한 그 공간은 무너진 집이 아니라 무언가가 조용히 깨어나는 입구처럼 느껴졌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손전등을 켜고, 다른 한 손으론 희수에게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응. 나 도착했어. 지금 리허설 한 번 해볼게.” 영수는 희수가 준 대본을 들고 간단한 리허설을 시작한다. 전화 너머로 들리는 희수의 목소리는 또렷했지만, 묘하게 조심스러웠다.
“그럼 방송 5분 전이네. 조심해.”
희수가 마지막 말을 마치기도 전에 영수는 전화를 끊었다. 추워서 그런 건지, 아니면 두려움 때문인지 몸이 자꾸만 떨렸다.
“후…”
그는 숨을 고르고, 유튜브 앱을 열어 라이브 방송을 시작한다. 한 손엔 손전등, 다른 한 손엔 방송용 카메라를 든 채 영수는 천천히, 흉가 안으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