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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에 다니는 명문대 졸업생의 배려심은 어떨까

배려는 외로움의 반대편에 있다

by Quat


오늘은 아내와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기름이 부족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주유소에 들르기로 했습니다. 마침 저희 차 앞에 있던 차도 기름이 부족했는지 저희가 가기로 한 주유소 안으로 들어가더군요. 기름을 넣을 수 있는 자리는 총 네 곳이었고, 맨 앞 한 자리만 다른 차량이 사용 중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앞쪽부터 채워지겠거니 생각했는데, 앞차가 느닷없이 바로 앞의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멈춰버렸습니다.



"무슨 사정이 있는 건가?" "그러게. 갑자기 왜 저기서 멈추지?" 대화가 끝나기도 전에 멈춘 차의 운전석에서 5~60대 정도로 되어 보이는 중년 남성이 천천히 차에서 내리는 게 보였습니다. 그는 저희 쪽을 잠깐 쳐다보고는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리더니, 주유를 하기 위해 화면을 몇 번 터치하고는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분명 앞쪽에 빈자리가 있고 저희가 뒤따라오는 걸 못 볼 리가 없었을 텐데 말입니다. 물론 저희가 앞쪽으로 갈 수 없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분이 조금만 더 앞쪽으로 차를 당겨주었다면 아주 간단하게 끝났을 일이었죠.



사실 이런 일은 일상에서 꽤나 자주 발생하곤 합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한 번쯤은 이런 경험이 있을 겁니다. 상대가 조금만 배려해 주면 서로가 편해질 수 있는데도, 작은 배려심의 부재로 인해 겪지 않아도 될 사소한 불편함을 경험한 적 말입니다. 저는 종종 이런 경험을 겪을 때 당사자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 '저 사람은 참 외롭겠구나' 비록 차 안에서 잠깐 본 것뿐이지만 주유소에서 잠깐 마주쳤던 그분의 눈 또한, 공허함과 피로감이 가득 찬 그런 눈이었습니다.






저는 배려가 '경험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어렸을 땐 마음에 들어 보이면 그것이 내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죠. 그리고 그 본능에 따라 충실히 행동합니다. "이건 내 거야!" 하지만 우리는 곧바로 가족이나 친구, 연장자를 통해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배우게 됩니다. "그건 네 것이 아니야. 다른 사람의 것이지." 이처럼 우리는 나이를 먹으면서 본능을 제어하고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법을 하나씩 알게 됩니다.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소리를 지르거나 운다고 해서 모든 게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도, 결과가 내 마음엔 들지 않더라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만족한다면 나름의 방식으로 납득을 하게 되는 것도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벌이 좋고, 지능이 높고, 다니는 직장이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상대를 위한 배려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 사람의 인생에서 '누군가를 배려한 경험'이 부족하다면, 누가 봐도 성공한 삶을 살더라도 배려심이 아주 낮거나 아예 없을 수도 있겠죠. 그런데 성인이 되어서도 누군가를 배려한 경험이 부족하다는 건, 결국 그 사람이 한 행동에 대해 아무도 잘못되었다고 말해준 적이 없다는 겁니다. 필연적으로 누군가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의 삶에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에 대해 지적하거나 잘못이라고 알려주지 않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그 사람은 외로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도 그 사람 곁에 오랫동안 머무르지 않을 테니까요.






배려심이 부족하지만 외로운 이들은 자신이 가진 것들 중 남들보다 좋아 보이는 것들로 타인의 환심을 사려고 합니다. 저 또한 그런 사람들을 본 적이 있습니다. 때로는 돈으로, 좋은 직업으로, 멋진 외모로, 심지어는 몸으로. 그러나 그런 것들은 임시방편일 뿐, 시간이 흐르면 결국 사람들은 떠나가게 되어있습니다. 오히려 질이 좋지 않은 이들이 그들이 가진 것을 노리고 접근해 실컷 단물을 빨아낸 뒤 매몰차게 떠나버리기도 하죠. 이렇듯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만 생각한 행동들은 사람마다 시기를 다르겠지만, 언젠간 돌려받게 됩니다.



이렇게 말하는 저도 지치거나 힘들 땐 이기적으로 행동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꼭 그런 행동을 하고 나면, 다른 사람에게 비슷하게 돌려받곤 합니다. 바로 오늘처럼 말이죠. 우리는 타인의 배려 없는 모습을 보며 화부터 내곤 합니다. "저 사람은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하지만 그러한 분노에 힘입어 자신 또한 그런 행동을 죄책감 없이 저지르기도 하죠. 그리고선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저 사람도 그러는데 나는 왜 그러면 안돼?' 오늘 주유소에서의 일도 어쩌면 그런 메시지였는지도 모릅니다. 배려는 책으로 배우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입장이 되어본 경험에서 비롯됩니다. 결국 우리를 사람답게 만드는 건 이해받은 경험이 아니라, 이해해 본 경험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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