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의심과 불안과 함께 걸어가는 오늘
오랜만에 퇴근을 하고 나서 카페로 '재출근'을 했습니다.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도서관에 먼저 들러 책을 빌리고, 도서관 맞은편에 있는 카페로 들어갑니다. 새삼스럽지만, 막상 카페에 앉으면 집중이 잘 됩니다. 문제는 '카페까지 오는 길'입니다. 피곤하니까 오늘 하루는 쉬어도 되지 않을까. 일하는 도중엔 그렇게나 강력했던 의지가 퇴근길엔 어느새 먼지가 되어 사라져 버리곤 합니다.
생각해 보면 하고자 하는 것을 이룬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 중 하나는 ‘일단 해보는 것’인 것 같습니다. 요즘 화제인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2>에 나오는 인기 셰프들도 처음부터 요리에 흥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손종원 셰프는 공대를 다니던 중 공부가 재미있지 않음을 느꼈고, 뉴욕에서 요리학교 학생들이 요리하는 모습을 우연히 본 뒤 ‘행복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어 다니던 대학을 중퇴하고 요리 공부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최강록 셰프는 청소년기에는 음악에 관심이 있었지만 제대 후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만화 <미스터 초밥왕>을 보고 흥미를 느껴 요리에 입문했으며, 안성재 셰프는 원래 자동차 정비공을 하려고 했으나 우연히 요리학교를 구경하고 요리에 매료되어 진로를 급선회했다고 합니다.
지금이야 그들의 선택이 옳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선택을 내리던 당시로 돌아갔을 때 그들의 결정을 선뜻 응원해 준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었을까요. 자신이 선택한 길이지만 불확실한 미래와 당장 극복해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들은 분명 버거웠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현실을 이유로 말렸을 것이고, 누군가는 가능성을 계산하며 고개를 갸웃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그 길이 ‘확실해서’가 아니라 '직접 걸어보기로 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살아가는 삶’을 부러워합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분명 행복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일상이 마냥 좋다고만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가 필요하고, 그 결과를 얻기 위해 자발적인 노력을 끊임없이 계속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노력은 항상 보상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매번 원하는 걸 얻을 수도 없고, 오히려 노력 대비 실패하는 횟수가 잦아질수록 자신의 선택을 곱씹는 순간들도 많아집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오래 걸어간 사람들 중 일부만이 마침내 ‘좋아하는 걸 하며 살아가는 삶’이라는 영광을 얻습니다. 많은 이들이 부러워하는 장면 뒤에는, 남들이 보지 못한 수많은 고뇌와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이 쌓여 있을 것입니다.
어떤 날은 이대로만 하면 잘 될 것 같다는 자신감이 넘치기도 합니다. 반대로 어떤 날엔 ‘이렇게 해서 가능할까’라는 자기 의심이 끝없이 치솟곤 합니다. 자기 의심이 밀려오고 부족함이 더 크게 느껴질 때마다, 학창 시절 읽었던 어느 책의 한 구절을 떠올립니다. “용기 있는 사람이란 한 번도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과거에 자신이 저지른 실수와 비슷한 환경에 처했을 때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사람이다.”
결국 자신이 선택한 길을 계속 걸을 수 있게 만드는 건 ‘내가 그 길을 계속 걷기로 결정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기대거나 조언을 구하는 것도 분명 도움이 되지만,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것입니다. 몇 년이 지난 후에도 제가 지금처럼 글을 계속 쓰고 있을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확실한 건, 오늘 하루 내가 원하는 삶을 사는 데 아주 약간이라도 시간을 쓰는 것. 그것이야말로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 아닐까요.
원하는 삶은 거창한 결심보다 생각보다 아주 사소한 것들로부터 시작되곤 합니다. 퇴근 후 집에서 나와 책을 빌리고, 카페에 앉고, 노트북을 열어 한 문장을 쓰는 것처럼 말입니다. 결국 삶이란 큰 결심보다, 매일의 작은 결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