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인 군번이라는 표현이 있다. 군번이라는 표현은 통상 두 가지로 나누는데, 들어온 연도에 대해 23군번 / 24군번 식으로 부르는 것과 월에 대해 8월 군번 / 9월 군번과 같이 부르는 방식이 있다. 여기에서 꼬인 군번이라 하면 주로 후자에 속하는데, 결론적으로 꼬인 군번이란 입대 혹은 자대에 전입 온 것이 시기상 애매해서 어떤 이유로든 힘들게 보낼 수밖에 없는 사람을 의미한다.
나도 어찌 보면 그런 느낌이다. 당장 내가 왔을 때 생활관은 한 명의 병장을 제외하면 동기 한 명과 나머지는 모두 일병 선임이었으니까. 지금 와서 다시 느끼는 것이지만, 정말 선임들이 한 번에 와서 한 번에 나가고 있다. 이 정도로 빠지게 되면 나중에는 인원이 정말 채워지기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그런데 내가 꼬인 군번인 이유는 비단 선임 관계뿐만은 아니다. 바로 이번 이야기의 주제인 '후임' 관계 문제이다.
내가 처음 이 대대에 전입을 오게 되었을 때, 나는 막내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내가 전입을 가장 늦게 온 것이니 막내가 맞고 그 와중에 동기가 한 명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내가 전입 온 시기에 꽤 여럿 전입을 왔고 그 덕분에 동기는 적진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별 느낌 없었다고나 해야 할까? 막내로 지내는 경우가 꽤 길어질 수 있다고는 선임들도 계속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그 당시 나한테는 나름대로 이런저런 것을 배우고 대대에서의 생활에 적응하며 지내기에 급급했고그러다 보니 별 생각도 안 든 것 같다.
그런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다 보니 동기들에게 후임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나둘씩 후임들이 생기고 그 후임들이 나에게도 선임으로서 대해주는 것이 당연하다 보니 그렇게 할 뿐이지만 나는 그걸 보고서 굉장히 새로웠다. 아직 막내인 나지만 누군가는 내가 선임이구나, 이 후임한테는 내가 선임이니까 나도 이제 완전 대대 막내는 아니게 됐구나 하는 그런 생각들이 들어서 나름 신기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시간도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아직 짬이 낮은 막내였던 나에게도 선임이라는 잣대를 내밀며, '네가 그렇게 행동하면 다른 중대 후임이 뭘 배우냐'는 등의 이야기가 돌았다. 그 말인 즉 너도 누군가의 선임이면서 그렇게 실수하고 자기 할 몫을 해내지 못하는 짬찌처럼 있으면 어떡하냐는 이야기였다. 선후임 관계란 그런 것이니까 말이다 - 후임은 배우는 위치고 선임은 후임에게 알려주고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타 중대긴 했어도 그런 위치에서 후임에게 인수인계도 하고 챙겨주는 모습이 내 동기들에게서 보이니 나도 언젠가는 저런 시기가 오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통신병 편제보다 인원이 많이 넘치는 상황이었고 그래서 나는 막내를 되게 오래 할 것이라고 상각 했다. 하지만 그 생각조차 틀렸다 생각하게 된 일이 일어나 버렸다. 후임이 들어온 것이다!
당장 맞선임이 된 나부터도 당황스러웠지만 내 선임들도, 중대장님도 당황스럽게 통신병이 들어오게 된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뿐이고 나는 그 상황에 순응하고 후임에게 인수인계를 해주며 이런저런 것들을 챙겨주게 되었다. 선임들이 나에게 해준 것들을 생각해 보고, 이런 부분은 나도 어려웠으니 더 알려줘야 하고, 이런 부분은 도움이 되었으니 나도 똑같이 해줘야겠다 하는 생각들을 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막내로 생활한 시간이 있었다 보니 후임의 감정을 더 이해할 수 있었달까.
하지만 무슨 드라마도 이렇게 계속 꼬일 것 같지 않은데 그것보다 더한 일이 일어났다. 후임이 다른 보직으로 이동하게 된 것이다. 대략 상황은, 대대 내에 인원이 갑자기 부족하게 된 보직이 생겼는데 넘치는 쪽이 통신을 제외하면 없고 신병이 들어오기까지도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내 후임이 이동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더 오래 함께 통신 일을 했고 알려준 것도 많은데 헛수고가 되어버린다는 느낌이었어서 솔직히 그 당시에는 유독 더 힘들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다시 통신 막내가 되었다. 선임들은 벌써 병장을 달고 어느 순간 전역을 앞두고 있는데 나는 아직 막내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내 동기들의 후임들마저 후임을 받는 마당에 나는 아직 막내였다. 참 쉽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차기 분대장이랍시고 분대장을 시키니 대부분이 선임인 상황에 내가 뭐라 하면 되기나 할까 싶은 느낌이었다.
근데 여기에서 조금 이야기를 더하자면, 이게 생각보다 드문 일은 아니라고 한다. 저 시기가 상병 꺾이는(상병 4호봉 정도) 시기였는데, 상병이 끝날 때까지 막내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꽤나 발생하는 편이라고 하더라. 인스타를 하다 보면 군 관련 밈 영상을 제작하는 사람들 것들이 보이는데 릴스에 이 내용 관련된 영상이 떴을 때는 정말 남 얘기처럼 안 느껴지고 실제로 내 얘기가 되었다는 생각에 헛웃음만 나왔다.
그리고 이 대대에서 통신보다 더 심한 경우도 있었는데, 정보/작전과가 그렇다. 전임자는 올해 초순 언저리에 전역했는데 내 동기가 첫 후임이었고 그 동기는 이미 대대에 없다. 선천적 질환이 심해져 입원했다가 결국 현역부적격심사로 전역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다음 후임을 맞이했는데, 그 후임은 운동을 하는 인원이어서 건강상의 문제는 없으려니 싶었다. 하지만 겉모습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고 했던가... 통풍 증상이 심해져 결국 현역부적격심사를 또 겪어 후임이 두 번 사라진 결과 통신병 중 내 선임 한 명이 지금까지도 정작병으로 일하고 있다. 어찌 보면 나 정도면 괜찮은 걸 지도...?
그래서 지금은 어떻게 되어 있냐,라고 한다면 지금은 후임이 있다. 병장을 정말 코앞에 두고 후임을 받았고 지금 이병인 후임이 있다. 하지만 사실상 후임한테는 미안하지만 나는 잘 챙겨주는 선임은 못 되는 느낌인 것 같다. 잘 챙겨준다고 생각하면 고맙지만, 이제 대대 내에서 맡은 것들도 있고 당장 분대장에 통신에서도 일을 가장 많이 하고 이런저런 것들이 나에게 맡겨지다 보니 이전 후임만큼 잘 챙겨주고 있냐고 묻는다면... 글쎄, '시간을 들이는 부분'에 있어서는 굉장히 불합격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시간은 지나간다고, 처음에는 불안해 보이던 신병들이 점점 일과에 익숙해져서 나중에는 안정화가 되는 것처럼 지금 내 후임도 그런 느낌이다. 내 복무일수도 이제 두 자리를 눈앞에 두고 있고. 그래서 더 나은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적어도 인수인계를 하면서 나도 모르는 부분이 있진 않으니까. 겪어볼 것 다 겪었고 훈련도 한 사이클(*1년의 훈련 사이클은 거의 매년 비슷하니까) 돌았다 보니 이제 뭘 해도 처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의 나에게 나는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그냥 이 후임에게 알려줄 수 있는 걸 잘 알려주면서 챙겨주고, 선임들을 잘 보내고 남은 휴가들을 정기적으로 잘 나가며 멘탈을 관리하고 전역이라는 피니시라인에 안전하게 골인하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 자체가 요즘은 많이 힘에 부치고 지치는 날들이다. 하지만 그래도 정말 눈앞이라고 생각하면 힘이 나는 것 같다. 이 글도 사실상 정말 마지막을 눈앞에 두고 있다. 나에게 전역이라는 마지막과 이 글의 마지막은 어떻게 찾아올지 궁금해지기에 나는 더 앞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