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함께할 것만 같았던 선임분이 떠났습니다
인생은 만남과 이별의 연속이기에
필자는 생각보다 막내 생활을 오래 했다. 남들이 말하는 '꼬인 군번'의 상병에 해당한다. 말 그대로 내 군번이 정황상 일을 이리저리 많이 해야 한다고 한다거나, 동기가 적거나 후임이 잘 생기지 않거나, 선임이 먼저 다 가버린다거나 하는 안 좋은 일들이 많은 경우 우리는 그걸 군번이 꼬였다고 표현한다. 특히 상병이라는 포지션은 달 때는 기분이 좋다. 병장 바로 아래 계급이니 누가 좋지 아니하겠는가. 월급도 꽤 오르니 기분 하나만큼은 좋다.
그러나 상병은 사실상 그렇게 짬이 찬 것도 아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상병을 달 시기에도 아직 복무 진행도 50%를 찍지 못하기도 하고, 상병 역시 일병과 마찬가지로 6호봉의 시기를 지나야 다음 계급인 병장으로 올라가기 때문에 상병 때에 운이 좋으면 생활관 내에서 가장 선임병이 되어 실세의 맛을 보기도 하고 운이 나쁘면 상병임에도 막내 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다. 필자의 경우는 매우 운이 나쁘게도 도중에 들어왔던 후임이 대대 인원수 부족으로 인하여 중대 내에서 다른 편제로 인원을 이동시키는 바람에 후임이 도중에 사라졌고, 그 있었던 후임조차 그렇게 길게 있어 주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상 상병 4호봉까지 막내 생활을 한 셈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래도 짬이 차도 막내여서 그런지 선임들의 도움도 많이 받았고, 분대장도 얼떨결에 달았기 때문에 사실상 완전히 무시당하는 포지션도 아니었다. 우리 생활관은 특히 전역자가 길게 없었는데, 마지막 전역자가 내가 이 대대로 전입해 오고 한 달 정도 뒤에 전역한 사람이니 굳이 말이 필요하지 않을 수준일 것이다. 그 당시에만 해도 시간이 가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내 복무 일수도 어느샌가 약 300일 중후반대에 진입했고, 어느샌가 나는 생활관의 최고 선임자가 집에 가야 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아무래도 긴 기간 동안 함께 지내왔고 그 사람이 특히나 분대장을 달고 있었고 내가 그다음 차기 분대장이 되어야 했기 때문인지 생활관 선임이 가게 되는 것이 더 크게 다가온 것 같다.
물론, 다른 중대라던가 같은 중대지만 다른 생활관인 사람들이 전역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내가 지내온 와중에도 아무래도 본부중대에 해당하는 통신병으로서 본부중대 내의 운전병, 취사병, 탄약병, 복지병 등 여러 사람을 보내왔지만, 결과적으로 같은 생활관의 '통신병'의 전역자가 없었기 때문에 사실상 크게 나에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봐야 같은 중대 사람 중에서 많이 이야기를 나누고 도움도 많이 받았던 이들의 전역 정도만이 "아, 결국 이 사람도 가게 되는구나"라는 생각 정도를 안겨준 것 같다.
취사병이었던 한 선임분과는 평소에도 많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었다. 기본적으로 사람도 착하고 내가 개인적으로 이런 사람과는 친해지고 싶다고 생각하는 선한 인상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에 더욱 나는 그 사람과 거리를 가깝게 유지하고 싶었다. 그 선임도 나에 대해서 괜찮게 생각해 준 것 같고, 동원훈련 때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던 선임분에게 내가 도움을 주기도 했다. 전우애 같은 건 모르겠고, 이런 식으로 군대에서 사람과 친해지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가장 크게 든 선임병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마지막까지 중대 전원에게 짧게나마 편지를 쓰고 가 준 그였기에 더욱 기억에 남는 게 아닐까.
전역식 행사가 찾아온 날에는 모두가 그에게 밝은 미소와 박수갈채를 주며 그의 전역을 환대해 주었다.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이 열심히 해냈고, 좋은 모습을 보이는 멋진 선임이었음이 틀림없었으리라. 대부분의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전역식을 거치지만 유독 몇몇 사람들은 더욱 모든 사람에게 전역을 축하받으며 밝게 잘 나가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 중 한 명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물론 내가 본 사람 중에서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전역식이 되었을 때 환대받으면서 잘 간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 사람의 행실과도 연관된 사실이지만,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형식적으로 박수 몇 번 받고 나가는 사람도 많다. 전역식 행사가 끝나면 중대나 대대에서 원하는 인원들이 전역자에게 가서 사진도 같이 찍는데, 그 사진조차 찍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들의 대부분은 아무래도 타 대대에서 전출 온 사람이기도 하지만, 또 그렇다고 해서 '전출 온 사람 = 평판이 나쁜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에 전출을 오고 나서 사람들과 잘 지낸 덕에 좋게 나가는 사람도 있다.
우리 중대에, 도중에 전출 왔던 한 사람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성향이나 평판도 좋지 않았고 굳이 말하자면 말년 다 되어가는 상황에 전출 왔으니 "난 너희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생각이 없다"는 것처럼 근무가 없으면 일과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사이버지식정보방이나 휴식 공간에서 독단적으로 공부를 하며 다른 사람과 크게 어울리지도 않았다. 어느 정도 친분이 있는 것 같은 후임 정도를 제외했을 때 오죽하면 간부들조차도 그를 딱히 챙길 정도가 아니었으니 그 이상의 설명은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던 중에 이제 생활관의 직속 선임이 전역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가 되었을 때 이런저런 생각들이 몰려온 것 같다. 이 사람이 가면 내가 이제 분대장을 잡아야 하는데 잘 할 수 있을까, 선임병이 가고 나서 내가 후임인데 분대장을 잡아도 되는 걸까, 이 사람이 있어서 생활관이 잘 돌아갔는데 과연 이 사람이 가고도 문제 없이 지낼 수 있을까 하는 등의 여러 고민이나 걱정 때문이었을까, 전역자였던 그가 보기에도 내가 평소에 그렇게 기분을 바깥으로 내비추는 사람이 아닌데 걱정스러워하는 모습이 겉으로 드러난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내가 전입 온 이래로 약 1년 가까이를 그와 함께했고, 그는 생활관 내에서 군기반장의 역할이기도 했으나 오히려 생활관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형성해주는 사람이기도 했다. 물론 지금에 와서 생활관 내의 인원들과 이야기를 나눈다면 그가 완전히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며 어떤 부분에서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그 사람이 업보가 많고 문제점이 있었다고 해도 결국 후임이었던 우리들에게 있어 리더였고 도움도 많이 주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미운 정도 정이라고 한다는 게 이런 의미일까 싶었다.
그는 가기 전에도 우리와 마찰이 있었고 그래서 생각한 것보다 좋게 보내주지는 못한 것 같다. 그도 아마 그 사실을 의식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생각보다 우리에게 거리를 두고 형식적인 느낌으로 전역 멘트에 우리를 살짝 언급하는 정도에 그쳤다. 그럼에도 결국 같이 자고 생활하며 정이 들었던 사람을 떠나보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며칠 전에도 나는 또 생활관의 선임병을 떠나보냈다. 그는 위에서 얘기한 사람의 동기였고, 생활관 내에서는 어찌보면 유한 인상을 가졌으며 할 때는 제대로 하고 아닐 때는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마인드로 후임병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던 위의 선임과 반대되는 성향이었다. 물론, 그가 말하기로는 위에 언급했던 선임이 너무 군기를 잡고 분위기를 좌지우지하며 무겁게 가는 느낌인데 본인조차도 그렇게 간다면 생활관이 너무 칙칙하고 어두울 것 같다고 표현은 했다. 그러나 내가 봤을 때 그렇게 생각도 했겠지만 천성이 좋은 심성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생활관 내의 인원들이 얼떨결에 모두 같은 나이였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 더 가까워지기 편했는데, 이 사람은 특히 더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 같다. 관심사도 그렇게 멀지 않았고 때로는 진로나 미래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도 할 수 있었으며, 장난도 스스럼없이 칠 수 있었다. 물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인물이 좋아서 후임이 치는 장난도 잘 받아준 게 아닐까 싶다. 그런 그였기에 다른 중대 인원들을 포함한 모두에게도 (모종의 이유로 예전부터 좋은 평판이지는 않았으나) 마지막에는 좋은 인상을 남기며 축하받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아직 내가 전역하기 전까지 보내야 할 선임병들이 많기 때문에 이별은 나에게 계속 찾아올 수밖에 없다. 사람의 삶에 있어서 이별이라는 존재는 만남이라는 이벤트가 남긴 숙제다. 누군가와의 만남이 존재한다면 그 끝은 이별로 정의되기 마련이다. 그 이별의 방식이 어떠하고 분위기나 결말을 어떻게 풀어 나갈지는 만남이라는 존재가 우리에게 던진 숙제고, 만남 이후에 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숙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지 고민하고 당면하게 되었을 때 해결해야 하는 것은 우리들 자신이다.
이별이 존재한다면 새로운 만남 역시 늘 존재할 수밖에 없다. 특히 인원수가 유지되어야 하는 군대라는 이 집단에서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별이라는 것에 너무 매달려서 우울해하거나 아쉬움을 가져서는 안 되며, 그렇다고 만남에 집착해서 이별에 무뎌져서도 안 된다. 서로 상반된 개념이지만 만남과 이별이라는 존재는 결국 이어져 있고, 별개로 보여지나 결코 별개의 무언가라고 상정할 수 없다. 그렇게 누군가와의 만남과 이별에 대해 적응해나가며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노하우를 얻는 것이, 인간관계에 대한 개개인의 가치관을 확립하고 ‘나잇값을 한다’는 의미로서 어른스럽게 대처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언젠가 다른 어딘가에서 만날 기회가 있다면, ‘선임병’으로서의 누군가가 아닌,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으로서 좋은 모습으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나는 오늘도 군에서 선임병들을 배웅하고 있다. 그리고 나 역시도 전역할 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