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는 아무래도 선임과 후임, 그리고 동기가 구분되기 마련이다. 먼저 왔으면 선임인 거고, 늦게 왔으면 후임. 물론 n개월 동기제라고 해서 그 개월수대로 나눠서 그동안에 들어온 사람끼리는 선후임 분류가 없이 동기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물론 대부분은 1개월 동기제를 해서 같은 달에 입대한 경우만 동기로 보는 경우가 많다.
어찌 되었든 간에, 선임과 후임이라는 관계는 굉장히 단편적으로 보이기 쉽다. 군대가 아닌 다른 곳에서도 그건 비슷할 것이다. 예를 들면, 선배와 후배라던가, 사수와 부사수(당연히 군대에서의 사격 사수와 부사수가 아니다) 등이 그러할 것이다. 선후배라는 관계는 사실상 그렇게 딱딱하지 않다. 사수와 부사수의 관계는 반대로 완벽히 비즈니스적 관계가 되기 쉽고 거기에서 조금 더 가까워지냐 마느냐의 문제이다.
그런데 군대에서의 선임과 후임은... 형용하기 어렵지만, 그렇게 단편적인 관계는 아닌 것 같다. 군이라는 집단의 특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특히 복잡하게 느껴진다. 이번 회차에서는 그래서 선임과 후임이라는 관계에 대하여 이야기해보려 한다.
선후임 관계에서 가장 먼저 두각 되는 것은 아무래도 경험의 차이에 따른 지도편달이 아닐까. 한 달이 되었든 몇 달이 되었든 간에 먼저 와서 군이라는 곳에 적응을 한 것은 미묘하게라도 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다 보니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인수인계를 해주게 되는 것이 선후임 관계에서 부각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당장 훈련소나 신교대 정도만 겪고 자대에 배치되어 온 후임이 뭘 알겠는가. 선임이 알려주지 않으면 모든 인원을 간부 라인에서 커버할 수도 없는 것이다.
후임은 그러면 어떨까. 선임한테 그걸 배워서 써먹어야 한다. 기본적인 군대의 수직적 계급원리에 기반한 '상명하복'적 구조는 물론 지휘권을 가진 상관의 명에 하급자는 절대복종해야 한다는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선임자와 후임에게 완전히 적용되지 않는 것도 무리가 있다. 선임이 시키면 후임이 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부조리한 것을 시키지 아니하고 정당한 근거에 기반하였을 때라는 조건은 상관에게도 적용되니 당연하고, 그 상황에 지휘권을 가진 분대장이나 간부 대신 그 인원이 시켜야 할 마땅한 근거가 있는지까지도 봐야 할 것이다. 원칙상 명령권자를 제외한 병 상호 간의 지시는 옳지 않으나 그렇다고 후임이 선임의 말을 전혀 따르지 않는 집단이 되는 건 오히려 이상하지 않겠는가.
그러다 보니 선임과 후임은 한쪽이 알려주고 한쪽이 배운다는 일방적 관계로 보이는 게 문제이다. 하지만 그 반대가 되는 경우도 많다. 후임이 선임에게 알려줄 수도 있는 것이고, 선임의 부족한 면을 커버해 줄 수도 있는 것이다. 살짝 어휘의 의미에서 벗어나긴 하지만 교학상장과도 비슷한 면은 있기 때문이다. 당장 후임병이 분대장을 달고 선임병이 그 분대의 일원인 경우, 분대장들을 통해 전파하는 사항이나 교육훈련의 내용이 있다면 선임은 그 후임에게 배우게 되는 구조도 충분히 발생한다. 후임이 선임보다 더 잘하는 것도 있을 수 있다. 선임의 무능에 의한 것이 아니라, 후임이 신체적 조건이나 사회 경험 등으로 더 잘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교육의 면이 아니더라도 선임과 후임 간에 따르는 다양한 것들이 있다. 거기서 내가 가장 얘기하고 싶은 것 중 하나는 아무래도 친밀감이다. 선후임간에 존재하는 긴장감과 친밀감은 어느 한쪽도 물러날 수 없다. 그 어느 쪽도 다른 한쪽을 앞질러서는 안 된다. 왜 그렇겠는가?
당연한 얘기지만, 긴장감이 풀리면 선임을 만만하게 보거나 좁은 범위로는 생활관, 넓은 범위로는 대대가 통제되지 못하게 된다. 뭐 그렇게까지 말하냐고 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군기의 영역과도 연관이 되어 있고 다른 사람이 보기에 저렇게까지 선임한테 예의 없게 대하나 싶어 지면서 하극상의 영역으로 볼 가능성도 높다. 맞먹으려 한다는 표현을 사용하게 되기도 하는데, 그로 인해 사건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것도 보았다. 징계위원회에 회부되는 일도 꽤나 보았다.
반대로 친밀감이 사라지는 것 역시 꽤나 큰 문제이다. 부대원 결합과 결속 역시 군인의 중요한 요소인데, 긴장감만이 도는 부대에서는 결과가 좋지 않다. 군기라는 요소가 중요한 것은 알겠지만, 위험한 훈련이나 활동, 작업이 도사리는 군부대에서 친밀감이 결여되면 서로에 대한 신뢰감도 부족해지기 마련이다. 친밀감과 유대는 신뢰로도 직결되는 중요한 요소이다. 당장 그게 아니더라도 그냥 간단히 생각해서, 550일이라는 복무일수(사람마다 며칠 정도 차이는 있지만) 내에서 못해도 100일 정도는 보게 될 사람들과 친하지 않은 채로 버틸 수 있을 것 같은가? 심지어 매일 봐야 하고, 잠도 같이 자고, 밥도 같이 먹고, 같이 씻고, 힘든 훈련에서는 서로 의지하기까지 해야 한다.
물론 안다. 말이 쉽지 이게 양립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냐는 이야기. 나도 그걸 요즘 특히 느끼고 있다. 일반적이라면 선임 라인으로 불리는 상병 말로 넘어왔지만 병장이 구조상 많아져버린 이 대대에서 나는 이제야 중간 정도의 위치를 차지했다. 그러다 보니 후임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해야 할지에 대한 의문도 아직 남아있다.
최근 조금 친하게 지내는 후임이 있다. 대화도 잘 통하고, 물론 후임이 선임 대우를 잘해주는 것도 고맙지만 나로서도 후임에게 챙겨주고 싶은 게 많고 그래서 많이 이야기도 나누게 되고 PX도 사주기도 하고 그러는 후임이다. 하지만 한 번 트러블이 크게 작용했다. 한두 번 정도 있었던 실수를 이번에 또 반복하고, 몇 번 강조했고 지적했음에도 까먹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실수를 반복해서 중대장님과 행정보급관님이 중요히 여기는 행사 같은 과업을 정시에 오지 않은 것이다. 심지어 그 당시 중대의 분위기가 썩 좋지 않아서 이리저리 내가 불려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내 기분은 더욱 좋지 않았고, 난 이미 준비를 마치고 위치로 가고 있는데 얼마 시간이 남지 않았음에도 미비한 준비상태로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확 나빠졌다.
지금은 전역했지만 그전의 최고 선임자가 나에게 한 말이 있다. 다른 사람에 비해 너는 강하게 말하거나 휘어잡는 카리스마라고 흔히 말할 수 있는 요소가 부족해서, 물론 너만의 방법으로 후임들을 잘 통솔하고 지내면 문제없겠지만 그럼에도 어느 정도는 그런 요소도 필요하다는 것. 하필이면 그 말이 그때 떠올랐다. 아, 내가 그래서 너무 서글서글 웃어주고 밝게 대해주고 친근하게 해 주니 후임들이 벌써 나를 만만하게 여기고 있는 건 아닌가? 한순간에 기분이 더 팍 상해버렸고, 심한 말을 한다거나 하면 오히려 내가 폭언/욕설 등의 이유로 일이 커질 수도 있음에도 욕설은 안 하겠다는 생각만 가지고 감정을 분출해 버렸다. 그럼에도 화를 확 낼 수는 없으니 거의 돌려 까는 말투로 빙빙 에둘러서 까내린 것 같다.
지금은 물론 대화를 통해 해결은 했고 다시 무난히 지내고 있지만, 아직 그때의 긴장감이 유지되는 탓인지 후임이 나를 조심스레 대하는 모습이 보이긴 한다. 하지만 다른 선임분은 말한다. 아무리 가깝게 지내고 친하게 허물없이 지내는 게 좋다지만, 선후임 간에 어느 정도의 긴장감이 존재하는 것은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고 그게 후임에게 있어서 더 예의 바르고 좋은 모습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비칠 수 있다고.
생각해 보면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아직까지도 생활관에 맞후임은 없지만(편제 인원이 적어서), 그런 탓에 막내 생활을 계속 지속하고 있음에도 선임들과 친해지기도 했으면서 어느 정도의 텐션도 분명히 존재하는 것 같다. 어디까지 봐줘야 할지, 친해져야 할지, 지적해야 할지, 잡아줘야 할지 그 무엇도 정해진 가이드라인이 없기 때문에 일반적인 인간관계처럼 따지기 어렵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자신의 위치를 고려하고 그 환경을 따져보면서 합리적인 판단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지금은 어느샌가 선임라인이 확 빠지는 타이밍이 되어서 중대 최고 선임분대장이 되어버렸는데, 지금도 아직 나는 여전히 후임들을 대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도 일종의 사회생활의 연장선인 인간관계에 대한 문제 해결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해본다. 후임은 후임 나름대로 선임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지, 선임은 선임 나름대로 후임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이 지나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 말이다. 그래도 그런 고민이 았기에 군대라는 집단에서 선후임이라는 관계가 유지되고 잘 굴러갈 수 있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