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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 May 04. 2024

예?... 아, 아니, 잘 못 들었습니다?

병사 한 명의 몫을 해내기 위한 인내의 시간

영상이라던가 이런 것들을 보면 울음의 이별을 마친 훈련병들만 남았을 때 조교들이 엄격하게 대하고 바로 태세가 전환되는 것을 많이 봤을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일단 나의 경우는 완전히 그렇다고 보긴 어려웠다. 기본적으로 훈련병 생활은 신교대 및 훈련소에서 지낼 때 휴일이 얼마나 겹치냐에 따라서 길이가 길어지기도 하고 짧아지시도 하는데, 보통 30일 대(30~39일) 정도이며 나의 경우는 수료식까지 35일의 시간이 필요했다.




모든 행사를 마치고 교육관에서 생활관으로 내려오게 되었을 때, 모든 것이 어색하고 무엇보다 같은 생활관을 쓰는 사람들과도 초대면이다 보니 서로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모두가 경직되고 긴장된 상태에서 첫날에서 둘째 날 정도에는 군에서 필요한 것들을 배부받게 된다. '보급품'이라 하는 것들이다.


각 병사들의 사이즈를 직접 적어서 종이를 들고 해당 사이즈의 활동복, 모자 등을 일괄적으로 보급품을 보관하는 곳을 돌게 해서 배부하는 방식이었다. 대부분의 보급은 이 방식으로 받는데, 비유하자면 코로나 때에 신속항원검사를 하기 위해 앞에서 문진표를 작성하고 줄을 서서 이동하며 해당하는 부분에 맞게 가서 검사를 받는 방식과 유사하다. 그런 뒤에는 각 개인의 신상 확인을 위해 여러 가지의 서류를 작성하게 된다. 개인정보 작성부터 활용동의서, 인성검사지 및 기타 등등의 검사지와 서류를 쓰면서 거의 초반 이틀 정도는 지나간다고 봐도 무방하다. 시간이 부족해서 평일 중에 못한 것을 주말에 해결하기도 했으니, 그도 당연하다.




그런 밑작업들이 끝나면, 나는 그 뒤의 훈련소 생활을 삼중고(三重苦)라고 표현하고 싶다.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그리고 정서적으로 힘들어진다. 왜 그런지 하나하나 살펴보자면 이렇다:


먼저, 신체적인 고통은 기본적으로 훈련병이기에 겪는 것일 수밖에 없다. 이 얘기를 하면 "에이, 체력측정이나 체력단련 같은 것들은 체력이 약해서 힘든 것 아니에요?"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음...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팔 굽혀 펴기와 윗몸일으키기, 3km 뜀걸음의 세 과목은 진급의 기준도 잡혀 있는 '병 기본 평가 요소'기 때문에 기초체력이 부족하면 힘든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그것보다 다들 힘들어하는 것이 바로 '제식'이다. 처음부터 분명 걸음마를 아기 때 다 배웠음에도 걷는 방법과 각이 잡힌 경례와 인사, 모이는 방법 등을 배운다. 그러고서는 이제 총기로도 그런 각을 맞추라 그러고, 뭐가 안 맞으면 또 내렸다 올렸다, 서 있는 시간은 점점 길어진다. 나만 잘한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다. 한 사람이 잘못하면, 각과 대형이 틀어진다. 어디 그뿐인가? 포복전진, 행군 등 진짜 신체적으로 힘든 것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래도 다 돌아보고 나면 행군이나 각개전투, 전투부상자 운반 등 신체적인 고통을 주는 훈련은 많았지만 다들 제식을 배울 때가 가장 힘들다고 하더라. 기본적이지만, 가장 잘 안 맞고, 퇴소하는 그날까지 가장 많이 지적받는 요소이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둘째, 정신적인 고통은 대부분 '시간'이라는 요소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한다. 분명 밥을 먹으라고 시간을 줬지만 남들과 맞춰서 가야 하니 늦게 먹는 사람은 빨리 먹어야 하고, 빨리 먹는 사람은 늦는 사람을 기다려야 한다. 쉬는 시간을 준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다시 훈련을 하자고 하고, 얼마 못 잔 것 같은데 불침번을 서라고 깨우거나, 훈련이 밀렸다고 가뜩이나 부족한 잠을 줄여 아침 조기기상을 시킨다. 그뿐인가? 웬일로 TV를 보여주나 싶으면 얼마 안 되어 끄라 그러고, 도중에 작업 인원을 좀 차출해서 가면 분명 작업을 꽤 한 것 같고 힘든데 아직도 일과시간이 안 끝나있다. 나는 신병교육대대에서 일주일에 한 번 폰을 불출받았는데, 받고서 주는 그 짧은 시간은 부모님과 대화하기도 벅차다. 전화하고 나면 누구와 뭘 할지조차 고민하는 것도 사치. 바로 다른 어플을 켜야 한다. 시간의 소중함을 다시 느끼게 된다. '쉴 때는 빨리 가고, 일할 때는 느리게 간다'는 것을 느끼면, 그것이 군생활의 시작이 아닐까?




마지막, 정서적인 고통이다. 정서적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아마 '고립감'일 것이다. 그 내용부터 생각해 보면, 물론 가장 최고의 정서적 고통이 맞다. 바깥세상의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을지 상상이 가면서 나는 왜 여기에 있나, 난 왜 여기서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소통과 만남이 잦은 사회와는 달리, 고정된 공간과 위치에서 보는 소수의 사람들.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겪는 수많은 일들은 새로운 일임에도 그 고립감을 더 강화시켜 준다. 초반에 아무렇지 않은 척했던 부모님과의 이별도, 적응될 듯 적응되지 않으며 전화를 받아서 그들의 목소리를 핸드폰 너머로 들을 때 북받치는 감정이란... 그 언제도 느껴본 적 없는 뭉클한 감정에 모두가 눈물을 훔치거나 울기도 한다. 것은 그리움이었을까, 외로움이었을까, 안도감이었을까. 그 어떤 감정이든 상관없었을 것 같다. 그 당시의 나였든, 지금의 나이 든 간에 말이다.


하지만 내가 중간에 언급한 것이 있다. '새로운 일임에도 고립감을 강화'시키는 것. 익숙함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들이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찾아오고, 그것이 익숙해질 때쯤 더 무언가를 요구하는, 그것이 가장 최악의 요소이다. 무엇이 되었든 다 새롭다. 무슨 행동을 할 때도 전우조라는 명목 하에 두 명 이상 함께 다니고, 군복도 다 처음 입어보고, 실탄으로 총도 처음 쏴 보고, 훈련도 매일매일 새롭고 다양해진다. 우리 삶에서는 익숙함보다 새로움을 추구해야 한다고 하지만, 이곳에서의 새로움은 더욱 우리를 괴롭고 고통스럽게 한다. 지나고 나면 다 한 번쯤은 겪어봐야 했을 것들이고 지금의 군생활에 있어서 그때의 도움이 아예 안 된다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의 우리들은, 새로운 것이 우리에게 있어서 '부담감' 내지는 '불안함'으로 작용했기 때문에 그 새로움에 선뜻 다가서지 못했을 것이다. 육군규정과 규칙이라는 정해진 틀 내에서 쳇바퀴 굴리는 듯이 돌아가는 속에서 새로움이 우리를 더 힘겹게 하기 때문에 그런 방식의 고립감이 더 강화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런 삼중고 속에서도 국방부의 시계는 멈추지 않았다. 우리가 아무리 느리게 느끼든, 빠르게 느끼든 간에 결국 시간은 흘렀다. 그렇게 한 주, 두 주... 훈련소의 시간은 지나간다. 수료식을 마치고 가족들을 볼 그날만을 기다리며 생활관의 달력에 X표시를 해 나간다. 누군가는 그걸 하니까 더 시간이 안 가는 것 같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저렇게 보니까 꽤 많이 했다며 감격한다. 사람들 각각의 사고방식이 다르기에 우리는 서로의 방식으로 인내의 시간을 견뎌다. '한 사람 몫'은 해내는 병사가 되어 자대에 이동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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