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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엉이 아빠 Apr 21. 2022

[독후감]"직업으로서의 소설가"

"... 그래서 시험 삼아 사람들 앞에서 말을 건네는 듯한 문체로 써봤더니 비교적 술술 편하게 쓸 수 있다는(말할 수 있다는) 감촉이 있어서 그렇다면, 하고 강연 원고를 쓴다는 생각으로 전체 문장을 통일하기로 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중에서-


이 책의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는 책의 후기에서 위와 같이 평어체를 썼지만, 책 본문에서는 시종일관 존댓말로 겸손하고 부드럽게 이야기를 합니다. 예쁜 글씨체에 산들바람처럼 솔솔솔 담대히 풀어내는 그의 말솜씨에 푹 빠져들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담백하고 아름답게 글을 쓸 수 있는지... 경이로운 의문을 품었지만 후기의 설명을 들어보니 '아', 이해가 됩니다. 마치 그분이 내 앞에서 철제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 약간은 뒤로 기댄 채 운율에 손짓하며 한국어로 유창하게 말하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제가 이전에 쓴 글들을 보면 거의 대부분이 반말, 그러니까 평어체입니다. 읽는 분들이 조금 불편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손 치더라도 객관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주관적인 깨달음을 얻고 좀 더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함이랄까요? 꾹꾹 눌러썼었습니다. 하지만 저자의 필력에 반함과 동시에 고대로 따라 하고 싶은 마음에, 이번 독후감은 경어체로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글은 어쩌면 독후감이라기보다는 출정식에서 낭독하는 일종의 선언문이 될 것 같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이 책을 읽고 저는 '소설을 써보기'로 결심하게 됐습니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요? 네,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한 번도 소설을 써본 적이 없는 놈이 아래 링크된 교보문고 공모전에 소설을 써서 출품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실력도 없는 미천한 주제가 말도 안 되는 짓을 결심할 정도로 이 책은 제 마음에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추후 공지사항을 통해 자세히 안내드리겠습니다만, 아무래도 능력도 없는 놈이 소설을 쓰려면 모든 글쓰기를 중단하고 소설 쓰기에만 집중해야 할 것 같습니다.)

https://storynew.kyobobook.co.kr/story/cont/initStoryContStoryPros.ink


저는 사람들의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름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 중에서 -" 이런 식입니다. 아니, 사람들의 이름뿐만 아니라 기억력 자체가 좋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무라카미 하루키!"... 이 일본인 작가 이름 일곱 자는 제 전두엽에 정확히 적혀있습니다. 그가 썼던 소설 '노르웨이의 숲'에 빠져 대학시절 한 때 한참을 허우적거렸으니까요.(그 당시 한국에서는 '상실의 시대'로 재출간됐고, 지금은 노르웨이 숲 원제로 복귀하여 출판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 이후로도 그가 집필한 소설을 몇 편 더 읽기는 했지만 그것들은 고사하고, '노르웨이의 숲' 내용조차 거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느낌상 구름에 부웅 떠 있었다고 생각나는 정도? 이 정도로 기억력은 좋지 못하지만 그의 이름은 강렬하게 남아 있습니다.

대학시절 푹 빠져 봤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 숲. 책 표지 뒤 낙서도 참, ... 젊은 날에 초상답게 겉멋만 잔뜩 끄적여 놨습니다.(현시점의 저는 이불킥을 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 책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자전적 에세이라고 칭하지만 제가 봤을 때는 아니, 저에게만은 글쓰기의 교본 같은 느낌입니다. 글쓰기 중에서도 범위를 다소 좁혀서 소설이라고 친다면요. (소설도 그 범위가 매우 광대하니 범위를 좁힌다는 표현은 소설을 경시하는 느낌이 납니다만... ) 물론 저자의 노파심인지 특유의 배려심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후기에서 다양한 글쓰기 방법이 있으니 알아서 판단하라고 조언은 합니다. 하지만 몇 번이고 읽어 볼 저만의 교본으로 정했습니다.


그는 거장으로 칭송되지만 한없이 겸손하게 풀어냅니다. 소설을 대하는 자세, 독자들을 생각하는 마음, 주위 잡음에 의연히 대처하는 마음가짐(억울한 느낌으로 호소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꾸준히 소설을 쓸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들을 조용히 읊조리며, 가져가려면 가져가라 싫음 말고, 툭툭 던져 놓지만, 영화 슈렉의 고양이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저로선, 어디 놓친 거 없을까 두리번두리번 재빠르게 주워 주머니가 퉁퉁 붇도록 구겨 넣었습니다.

-출처: 영화 '슈렉', 2010년-

 

일전에 저의 독후감 글에서 일주일 동안 세 권을 읽는다고 다짐하고 두 권을 시간에 맞춰 독후감을 써 올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남겨뒀을 때 '아, 에세이 정도는 뭐 하루면 읽겠구나' 자만했더니, 딱 첫 장부터 넘기기 시작하는데 소름이 쫙... 한 글자 한 글자 놓치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속독을 위한 사선 읽기는 얼토당토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글쓰기, 특히 소설 쓰기에 관심이 없는 분들께는 곤욕일 수도 있겠지만, 저의 궁극적 목표인 소설 쓰기에 대해서, 그것도 소설계에서 대작가로 명성을 떨치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담백히 그 방법을 술술술 풀어놨으니 정독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와 이런 비기를 막 공개해도 되나? 참 맘씨 좋은 사람이다'

그게 아니라면 자신감이 대단한 겁니다.

"방법을 알려줄 테니 따라 해 볼 테면 해봐, 하지만 당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가능할까?" 일 수도 있겠습니다.(물론 대작가님께서 이런 좁은 속마음 일리는 없습니다)


쉽게 쉽게 방법들을 논하지만 아직 시작도 안 한 핏덩이로서는 넘지 못할 거대한 벽을 올려다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한번 완독으로는 부족했고, 일본 교육시스템을 꼬집는 다던지 해외 출판에 열정을 쏟아부었다는 내용은 제외하고 한번 더 정독했습니다. 물론 시간은 무한대로 흘러버렸지요.

(기존에 읽었던 책이 두 번씩이나 읽기에는 부족해서 재독 안 한 거냐고 생각하시는 분은 없겠지요? 이 책의 내용이 제가 너무 갈망하던 비기가 담겼기 때문에 씹어먹고 싶었을 뿐입니다.)


소설을 쓰겠다고 다짐했을 때 과연 어느 시점으로 쓸까 고민했습니다. 그래도 감정 묘사가 어려운 1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보다는 행동이나 말투로 간단히 묘사할 수 있는 3인칭으로 써보겠다 계획했었습니다. 하지만 여기 계시는 대작가님께서는 3인칭 시점으로 소설을 쓰기까지 20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팔랑귀인지 줏대가 없는 건지 모르겠지만 제 소설 기획서에 시점도, 살포시 1인칭 시점으로 변경합니다.


이 책... 솔직히 저만 보고 싶습니다.

욕심이 과하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독후감은 예고하지 않겠습니다.

(제 독후감을 기다리실 분들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 아주 혹시 기다리시는 분께는 양해의 말씀을 드립니다.)


추후 공지사항에서 향후 계획을 자세히 안내드리겠습니다.

정기 발행되는 부엉이 아빠 날다 코너의 'EP6.'는 이번 주 토요일 정상적으로 발행하겠습니다.

모두 편안한 목요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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