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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엉이 아빠 Jun 04. 2022

다시 글쓰기를 시작합니다.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에 손가락을 올리고 멍하니 피만 흘리고 있습니다. 모니터 하얀 백지에는 낫 놓고 'ㄱ' 자 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네임펜으로 알량하게 소설 기획서라고 적어놓은 노트를 키보드 앞에 펼쳐 놨습니다. 노트에는 어지럽게 낙서된 뼈대들만 널브러져 머릿속의 어지러운 정신 상태를 대변합니다.


https://brunch.co.kr/@77578c98c1f34a8/60

위 링크와 같이 4월 25일 출정식에서 비장하게 공지하며, 중장편 소설을 써재껴 당당히 제출하고 돌아오겠노라 외쳐댔던 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습니다. 전쟁터에 제 발로 걸어 들어온 지 보름이 지나고 벌써 20일이 가까워지는데, 앞에서 들려오는 총성 소리에 겁먹고 후방 참호에 웅크린 체 필요없는 장전만 수도 없이 합니다. 괜히 왔나 싶어 뒤로 돌아 도망쳐보려 했지만, 너무 깊이 걸어 들어와 돌아가는 길조차 알 수 없습니다.


다시 한번 낙서들을 유심히 살펴봅니다. 잡념들을 다시 끄집어 올려 뼈대로 만들어 봅니다. 아직은 그저 선과 선의 연결일 뿐입니다. 동그랗게 머리를 만들고, 허리를 쭉 뽑고, 골반을 가져다 붙이고, 팔과 다리를 이어 봤습니다. 예전 과학실에서 봤던 토끼의 뼈대 같습니다.

휘휘 저어 모두 부숴 버리고, 다시 한번 정성스레 머리 모양을 만들고, 등줄기를 좀 더 곱게 펴서 세우고, 무게를 지탱해줄 골반을 아치형으로 강하게 만들고, 다리뼈를 굳건하게 붙였습니다. 손가락 마디마디를 만들고 이어 붙여서 쥐락 펴락은 되는 손뼈를 만들고, 어깨에서 허리춤까지 길이가 되도록 팔뼈를 이어 붙이고, 끝에  손뼈를 붙입니다. 어깨에 하나, 둘, 셋! 뜨드득, 윽!, 끼워 맞춥니다. 정형외과에서 볼 수 있는 뼈 해부도 모형이 얼추 나옵니다.

 

이제 참호에서 자세를 바로 잡고, 총구를 겨누고, 총알을 한발 쏴봅니다. 명중될 리 만무합니다. 가늠자를 조정해 영점을 맞춥니다. 또다시 한 발 쏘고 영점을 조정합니다. 몇 번을 그렇게 하니 이제야 조금씩 과녁에 맞기 시작합니다. 자신감이 조금 붙습니다. 에라 모르겠다, 앞으로 달려가서 급하게 다음 참호에 몸을 날립니다. 또 몸을 웅크리고 장전을 합니다.


만들어놓은 뼈대 옆에 찰흙을 곱게 빚어 놓고 얼굴부터 냅다 가져다 살을 붙입니다. 어느 정도 입체적으로 살이 붙으니 머리가 무거워 앞으로 쓰러집니다. 아하, 바보같이 순서를 반대로 했습니다. 얼굴에 붙었던 찰흙을 대충 뜯어내고, 다시 뼈대를 세우고 발바닥부터 차근차근 살을 붙여 쌓습니다. 살 붙이는 게 익숙해지니, 이제는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열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급한 마음에 덕지덕지 붙여 올라갑니다. 그랬더니...옴마야, 빌레도르프 비너스상 같이 엄청난 예술품이 됩니다.

2만 5천 년 전에나 이렇게 만든다면 대단한 예술품으로 인정받을 것인데, 지금 제가 요상하게 만들어낸 인간상은 혐오스럽기 까지 합니다.


다시 정신 차리고, 덕지덕지 붙여놨던 살을 도려내고 뜯어내니 이제 좀 태가 납니다. 그런데 큰일 났습니다. 마감일인 6월 1일 해가 벌써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여기저기 삐져나온 사족들을 걷어내야 합니다. 몸매 모양새에 맞춰 들어갈 곳은 들어가고, 나올 곳은 나오게 굴곡도 줘야 합니다. 눈, 코, 입도 다듬어야 하는데 시간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할 수 없이 아내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여보 지금 여기까지 대략적으로 훑었거든, 우선 시간이 없으니 오탈자는 무시하고 문장이 뒤틀렸거나, 내용이 이상한 건 바로 말해줘"

아내에게 전체의 반을 프린트하여 건넵니다. 그리고 저는 나머지 반을 향해 급하게 눈알을 굴립니다.

처음 계획은 일주일 정도의 수정 작업을 거쳐 탈고하는 계획이었으나, 그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의 허황된 꿈이었던 것입니다.


육퇴(육아 퇴근)한 아내가 계속 왔다 갔다 합니다.

"왜 이렇게 틀린 글자가 많아?, 신발을 싣는다가 아니라 신는다지, 그리고 앞박이 아니라 압박"

"어어, 10분 남았다"

응모 페이지에 채워야 하는 요약 사항을 모두 채우고 나니 23:55분입니다. 저장시켜놓은 원본을 업로드하고, 제대로 된 파일이 맞는지 확인하고, 재차 확인하고 제출하기를 클릭합니다.

-응모가 완료되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와!! 끝났다!!!!!"


몇수십 번을 읽어보고 수정해도 모자랄 판에 한 번을 제대로 수정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어쨌든간, 이렇게 해서라도, 제출은! 했으니 마음이 너무 홀가분합니다.

더 이상 피를 흘리지 않아도 됩니다!

방금 전까지 피폐해진 몸과 마음은 긴급 수혈을 받아야 할 정도로 위태 위해 했지만, 제출이 끝나는 순간 온몸에 에너지가 넘칩니다.


"야식 시키자, 오늘은 픽업하지 말고 배달시켜!, 파뤼 타임이야!!"

"여보, 요즘 12시 넘어서 배달하는데 없어"

아, 마감 이틀 전부터는 거의 밤새우다 시피 해서 그런지 시간 개념 자체를 상실했습니다. 파티는 조촐하게 편의점 즉석 음식과 소, 맥으로 대신했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는 아내는 옆에서 컵라면으로 자리를 함께 해줬습니다.

편의점 곰탕과 편육, 곰탕은 건더기가 하나도 들어있지 않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공모전 소설을 처음 써보면서, 아니 소설 자체를 처음 써보면서(과거에 그저 끄적였던, 단편 일화는 제외)

아래와 같이 느낀 점이 많습니다.

- 아래 -

1. 책을 많이 봐야 한다.

2.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3. 꾸준히 써야 한다.(벼락치기하듯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4. 하찮은 소재라도 모아 놔야 한다.

5. 뼈대(기획)를 튼튼히 만들어야 한다.

6. 생각했던 것보다 나는 글로 잘 표현하지 못하고, 쓴다 해도 문장력이 떨어지고, 글의 깊이가 얇고, 산만하다고 깨닫는다.

7. 하지만 "누구나 쓸 수 있다, 우선 한 글자라도 적으면 된다"라고 느낀다.

8. 탈고를 하고 나면 그 쾌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공모전 주최 측은 8월 말에 예심 통과자들에게 개별 통보를 한다고 합니다. 저는 참가하는데 의의만 뒀으므로 연락이 올리 만무합니다. 아마도 저의 첫 소설은 9월 즈음 브런치에 공개할 것 같습니다. 모든 연령대가 보기에는 힘든 내용들이 있으므로 각색은 하겠습니다. 이것으로 저의 첫 소설 집필 후기를 마칩니다.




소설은 피 흘리 듯 쓰지 않고, 꾸준히 매일 써보려고 합니다.

이제는 글을 쓰겠습니다.

여기 브런치에는 편안한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기존처럼 아래 방식으로 글을 발행하겠습니다.

1. 부엉이 아빠 날다: 매주 토요일 12시(정오) 발행.

2. 부엉이 아빠 독후감: 7월 중순부터 일주일에 책 한 권씩 읽고 발행.

(7월 초에 중요한 시험이 하나 있습니다, 6월은 공부와 좀 친해지겠습니다)

3. 부엉이 아빠 글스타그램: 수시 발행. (사진과 함께 글을 담고 싶을 때)

4. 부엉이 아빠 보다: 수시 발행. (영화를 봤는데 재미있을 때나 혹은 누가 추천해준 영화를 봤을 때)


모두 행복한 현충일 연휴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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