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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엉이 아빠 Aug 06. 2022

EP12. 뭐? 2박 3일로 캠핑을 가자고??

해남 오시아노 캠핑장

연재하는 요 몇 주, 더운 여름에도 열심히 업무에 매진하시는 여러분들 앞에서 계속 놀고먹는 이야기만(영화 관람, 산행+뒤풀이, 독서) 해댄 것 같아서 송구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준비했던 시험을 7월 초에 치르고 나서부터는 백수생활의 백미인 한량 놀음에 빠져 있습니다. 글쎄요, 회사를 때려치우고 나서 제일 먼저 이런 유유자적한 일상을 먼저 즐겼어야 했던 건 아닌지, 팔자도 좋다는 비아냥에 이제서야 진정한 백수생활을 하고 있다고 맞받아 치며 핑계 아닌 핑계를 대봅니다. 이왕 이렇게 놀자판 된 거 오늘까지만 좀 놀고먹겠습니다.


때문에 이번 편도 다량의 느긋한 여유와 기름진 음식, 귀청 떨어지는 깔깔 거림이 있으니 못 견뎌하실 분들은 이쯤에서 읽기를 그만두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이전 글인 'EP11. 관악산 남북 종주기'때 처럼 쓸 때 없이 길고, 두서가 없는 글이 될 것 같습니다. 도망가실 분들은 미리미리 도망가세요~


남은 분들은 이 전편에서 처럼 저만 따라오시면 됩니다. 따로 준비물은 필요 없고 몸 만 오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동행자들이 좀 많습니다. 저의 식구들과 처형네 식구들이(세 자매) 모두 뭉치니까 조카들까지 합하면 열 명이 넘습니다.


걱정하지는 마세요. 모두 웃고 떠드느라 새로운 손님에게 눈치 줄 새도 없을 겁니다. 그리고 전라도 함평, 그 평화로운 땅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들이라 모난 곳이라곤 없습니다. 충분히 같이 즐길 수 있으실 겁니다. 어디로 가냐고요? 아, 잠시만요. 아직 행선지가 정해진 것 같지는 않거든요. (소곤소곤, 처갓집 식구들은 계획적이기보다는 좀 즉흥적입니다)


여보! 우리 이번에 캠핑 갈 곳 정해졌어요?

"응, 해남"

뭐? 해남? 여기서 천리 길인데? 우리나라 끝에서 끝인데요?

"응, 형부가 거기가 좋데, 이미 캠핑장 예약해놨데"


(헉, 갈 길이 좀 멀겠습니다. 편도만 400km가 넘으니 자동차 멀미하시면 멀미약도 좀 챙겨 오세요).


근데 그렇게 멀리 가면 자고 와야 하는 거 아니야?

"응, 2박 3일로 갔다 올 거야."

뭐? 2박 3일로 캠핑을 가자고?? 우린 한 번도 텐트 치고 자본 적 없잖아. 그리고 당신 그런 데서 못 자잖아?

"응, 이제 애들도 다 컸고, 우리도 한번 도전해보자. 모기는 어떻게든 막아보고."


사실 저희는 다른 가족들을 따라 캠핑을 해보긴 했지만 아이들이 어리다는 핑계로, 등이 배겨서 못 잔다는 핑계로, 모기에 취약하다는 핑계로 밖에서 자는 캠핑은 해본 적이 없습니다. 저녁식사까지만 캠핑장에서 먹고 돌아오는 정도였습니다.


캠핑 숙박에 진저리 치던 집사람이 저렇게 적극적이니 저 또한 이번에는 작정하고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아, 텐트 용품이 좀 있으니 가지고 오시겠다고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갈아입을 옷만 좀 챙겨 오시면 되겠습니다. 다행히 저희 첫째 처형네가 캠핑 마니아라 장비가 충분히 있다고 합니다.


그럼 저는 지금부터 짐을 싸도록 하겠습니다. 저희는 숙박을 하려면 여성이 네 명이나 되기 때문에 거의 피난민 수준으로 짐을 싸야 해서 미리미리 준비해야 하거든요.

(사실은 네 명의 짐은 집사람이 거의 다 쌉니다. 저는 제 짐만 싸면 되고요. 차에 짐을 실을 때 테트리스만 잘하면 됩니다)

역시나 이번에도 룸미러의 시야는 포기해야겠습니다. 저희한테 배정된 캠핑 음식까지 준비해서 쌌더니 차에 루프 박스까지 꽉 차 버렸습니다. 여성이 네 명이라 그런 게 아니라 제 욕심이 한가득 인 게 아닌지 조금 반성해봅니다. 룸미러의 시야는 포기했지만 운전 중에는 사이드 미러로 후방을 주시하며 안전 운전하겠으니 너무 떨지 마세요.


캠핑 1일 차

밀리지 않는다면 다섯 시간 안에는 땅끝 해남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캠핑 마니아라고 해도 독박으로 많은 인원의 텐트를 치려면 형님 내외가 힘들 것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일손을 돕기 위해 서둘러 출발해야겠습니다. 우리는 오전 일찍 출발하니 오후 두 시쯤 도착하는 형님 내외랑 시간이 딱 맞을 것 같습니다. 자, 출발입니다.


차 안이 좀 부산스럽습니다. 옆과 뒤에 앉은 여인네들 네 명은 워낙 시끄럽기는 하지만 곧 잠들 겁니다. 조금만 참으시고, 너무 못 견디겠으면 이어폰으로 귀를 막아도 됩니다. 저는 내성이 생겨서 이제 저 소음이 없다면 좀 허전하기도 합니다.


역시 서해안 고속도로의 평택 분기점부터 서해대교, 당진 분기점까지는 차도 한숨을 연거푸 내뱉을 정도로 마의 구간입니다. 저 밀린 차들 좀 보세요... 이런 답답함을 좀처럼 견뎌하지 못하는 저로서는 가장 곤욕스러운 구간입니다. 집사람과 잠시 운전 교대 좀 하겠습니다. 여기 싸온 간식 좀 드세요. 지루함에는 씹는 게 최고지요. 근데 큰일입니다. 이렇게 많이 막히다가는 제시간에 도착 못하겠습니다. 오늘 날도 더운데 형님 내외가 고생하지 않을지...


이제 삼십 분 정도 남았습니다. 예상 시간보다 한 시간이 늦었습니다. 긴 시간 군소리 없이 여태 껏 잘 참아준 아이들도 얼마나 남았냐고 계속 물어보며 징징 폭발 직전임을 암시합니다. 집사람은 전화를 하며 안절부절못하네요.

"더운데 다 덜 고생했씨야"

이미 첫째 처형 내외가 트를 다 쳤고, 둘째 처형 네도 좀 전에 도착했다고 하네요.  


저기 드디어 간판이 보입니다. 오시아노 관광단지입니다. 네 맞습니다. 우리가 2박 3일간 머물 캠핑장은 해남 오시아노 관광단지 내에 있습니다.

http://www.oceanoresort.co.kr/

이 관광단지 전체를 한국관광공사에서 운영을 하다가 캠핑장은 관리가 잘 되지 않아 민간 기업에 위탁을 줘서 운영하고 있다고 하네요. 부지가 굉장히 넓고 바다가 바로 앞에 있는, 경치가 매우 수려한 캠핑장입니다.

먼 길 이동한 것이 전혀 아깝다고 느껴지지 않네요. 다행입니다.

 

이 땡볕 아래 텐트 세 동을 첫째 형님네가 다 쳐놨으니 두 분이 아주 땀이 범벅입니다. 차에 실린 잡동사니들 정리 전, 미안한 마음에 급하게 매점으로 뛰어가서 맥주를 사 왔습니다. 다하고 먹겠다는 걸 먼저 시원하게 한잔 하시라고 끄잡듯이 앉혔습니다. 땀은 온몸을 적시고 있지만 가족들이 넓게 마련된 텐트에 기뻐하니 그 힘든 게 뭐 대수냐며 시원하게 한 모금으로 털어버리시네요. 아이들은 오랜만에 재회했다고 벌써 자리 잡고 수다를 시작합니다. 저도 어렸을 때를 생각하면 명절 때 사촌 형들 만나 놀 생각에 설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참 즐거워 보입니다.


자, 이제 잡동사니도 다 정리했고, 해도 뉘었뉘었 떨어지고 있고, 본격적으로 캠핑의 꽃, 바베큐 파티를 할 시간입니다. 첫날부터 숯을 피우기에는 이미 반 녹초가 된 상태라 간단하게 버너로 고기를 굽습니다. 역시 형님네는 캠핑 마니아답게 무쇠 구이판을 가지고 계시네요.

역시 코리안 바베큐는 삼겹살입니다. 삼겹살 값이 너무 많이 올라서, 아니 모든 물가가 너무 올라서 장 보러 가기가 두려운 요즘이지만, 오늘만큼은 그런 거 생각하지 마시고 마음껏 드세요. 캠핑 마니아 첫째 형님께서 싸고 질 좋은 고기를 많이 구해 오셨습니다. 남기다면 오히려 폐를 끼치는 꼴이니 양껏, 아니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양보다는 조금 더 드세요.


자매들은 늦게까지 수다를 떨 생각인가 봅니다. 남자들은 노동의 대가로 피로가 몰려옵니다.(실제로는 바베큐 때문에 달리게 된 음주의 결과 겠지요) 저는 어린아이들을 재운다는 핑계로 자리에서 먼저 일어납니다. 잠잘 텐트는 빈틈도 없이 문을 닫아 놓고 모기약을 몇 번을 뿌려서 거의 살균실 마냥 준비를 해놨습니다.  특히 저희 둘째 녀석이 모기 알레르기가 있어 모기에 물리면 퉁퉁 부어오르는 탓에 병적으로 모기 퇴치에 집착하는 편입니다. 모기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거예요.

텐트 안이 그렇게 좋은 지 둘째와 셋째 녀석이 한참을 장난칩니다. 같이 놀아 주고는 있지만 순간적으로 스르륵 잠들지도 모르겠습니다. 미리 인사드립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캠핑 2일 차

멀리 파도소리가 찰싹찰싹, 이제는 조금 더 가깝게 찰싹찰싹... 그리고 눈이 떠집니다. 벌써 여명이 엷게 깔리고 있는 아침입니다. 멀리서 운전하고 오느라 고생했다는 말에 괜찮다 괜찮다 했지만 역시 예전만 하지 못한 체력으로 피곤함에 절어 텐트 자리가 불편한데도 불구하고 숙면을 취했습니다. 해무에 굉장히 습한지 비가 내리지도 않았는데 텐트 겉면이 비가 내린 것처럼 물기가 가득합니다. 플라이(텐드 바깥쪽에서 비, 눈 등으로부터 안쪽 텐트를 보호하는 외피)를 치지 않았다면 낭패를 볼 뻔했습니다. 이제 보니 첫째 형님께서 바닥도 방수포를 다 깔아 놓으셨네요.


가족들은 모두 자고 있고, 저는 너무 일찍 일어났습니다. 해변을 한번 걸으니 해가 떠올라 밝은 오늘을 예상해 줍니다. 이 청량감을 잊지 않기 위해 꾸려왔던 노트북을 얼른 가져와서 비치 의자에 앉아 브런치에 글자 몇개 끄적이고 서랍에 넣어 둡니다. 파도에 부서져서 사라지기 전에, 눈으로 찍고 글로 옮겨서 맘속에 저장시키는 것과 비슷합니다.


더 이상 텐트가 어둠을 잡지 못하고 밝은 햇살을 받아들이니 가족들이 하나둘씩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아이들은 오늘 있을 물놀이에 들떠서 벌써부터 수영복을 찾고 있습니다.


"아빠, 나 잠깐 해변에 갔다 와도 돼?"

응, 근데 어른들이 안 보고 있으니까 절대 물에 들어가지 말고 그냥 보기만 해, 발도 담그지 마, 알았지?

"응, 알았어."


셋째 녀석이 바구니를 들고 해변가로 뛰어갑니다. 모래사장에서 조개 줍는 걸 좋아하거든요.


어른들이 아침식사를 간단하게 준비합니다. 만둣국에 즉석밥입니다. 사온 육수에 냉동만두를 몇 봉지 털어 넣고 썰어온 파를 투척해서 한솥 끓입니다. 오늘 열심히 놀려면 든든하게 먹어놔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만두 네 알, 어른들은 다섯 알씩 할당입니다. 물론 남은 만두는 남자들의 몫이고요. 배가 터질 것 같습니다.


언니들을 따라 한다며 앞머리 롤을 말은 막내를 놀렸더니 삐졌습니다. 언니들이 하는 건 뭐든지 따라 하려는 막내 때문에 항상 웃음꽃이 만발합니다. 뭐, 가끔은 자매들끼리 싸움으로 번지기도 하지만, 이 험난한 세상에 인간관계의 내성을 미리 키운다는 생각으로 꼭 잘잘못을 따지게 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다자녀의 장점이기도 하고요. 그래도 한 껏 삐져있는 막내를 달래야겠습니다.


자, 이제 아침밥도 다 먹었으니 해변으로 출발하자!  

"와아~!, 아빠 아까 보니까 게들 엄청 많더라, 오늘 게 많이 잡을 꺼~다~"

방금 전까지 삐졌던 아이가 맞는지 해맑게 재잘거립니다.


캠핑 온 사람들은 많지만 아침부터 해변가로 나오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넓은 해변, 자세히 보면 무수한 생명체들이 꿈틀대는 갯벌, 지금은 온전히 아이들의 것이 됩니다.


"아빠, 내 말이 맞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잡아온 조그마한 게를 보여줍니다. 큰 놈들도 준비를 끝내고 갯벌에 합류합니다. 도시에서 잠시 바닷가에 나간 거라면, 뻘 묻지 않게 조심해라, 들어가지 마라, 잔소리 투성이 일 텐데 작정하고 갯벌에 들어온 거니 맘대로 만지고 느껴보라고 멀리서 지켜만 봅니다. 스펀지처럼 모든지 받아들이는 아이들에게 너무 곧은길만으로 인도하는 건 아닌지 반성해봅니다.


"언니, 저기 좀 더 멀리 놔줘, 다시 사람들한테 잡히지 않게"

"여기?"

"아니 조금 더 멀리, 저기쯤"

지금껏 잡은 게며 망둥어며 새우가 담긴 플라스틱 바구니를 둘째가 첫째한테 건네며 다 풀어주라고 요구합니다. 저도 미물은 잘 죽이지 못합니다. 요 몇 달 전 전원주택에 사시는 셋째 외삼촌 댁에 갔다 왔는데 외삼촌이 자꾸 잠자리채를 집안에서 들고 다니시더라고요. 전원주택이라서 집에 벌레가 많이 들어오는데 그것들을 일일이 잡아서 죽이지 않고 밖에 내주고 계섰던 겁니다. 비가 오고 난  보도블록에서 꿈틀대는 지렁이를 숲으로 던저주는 저희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셋째 외삼촌이 페이드 인 되면서  참 이런 것도 유전이구나 합니다.


뻘을 깨끗이 씻어내고 이동해야겠습니다. 다음 행선지는 물놀이용 분수대입니다. 이용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때를 잘 맞춰야 합니다. 40분 운영, 20분 휴식이라서 시간을 잘못 맞추면 20분을 심심하게 있어야 하거든요.

쫙쫙 땅에서 솟구치는 물줄기에 아이들이 아주 좋아 죽습니다. 아이들은 왜 저렇게 물을 좋아하는 걸까요? 분수대는 곧 왁자지껄 해집니다. 저희 가족뿐만 아니라 다른 가족들의 아이들까지 합세해서 까르륵까르륵 행복을 분수처럼 분출하고 있습니다. 수영장에서 물장난이라도 치면 옆에 튄다고 조심시켰는데, 지금은 괜찮을 것 같습니다. 여기는 물을 튀기며 노는 곳이니까요.

 

역시 물놀이 후에는 분식이지요. 샤워를 하고 텐트로 복귀하니 빠알간 자태를 뽐내며 침샘을 자극하는 떡볶이가 떡 하니 준비되어 있습니다. 첫째 형님이 캠핑 마니아라는 것이 이렇게 저희를 행복하게 합니다. 적재적소에서 음식이 나옵니다. 아이들이 달라붙으니 금세 바닥을 보입니다. 저희 첫째는 밥보다 떡볶이를 좋아하기 때문에 연신 맛있다는 따봉으로 이모부를 뿌듯하게 해 줍니다.


샤워를 모두 마쳤고(샤워시설이 정말 잘 되어 있죠?), 떡볶이로 배도 채웠겠다, 텐트에서 뒹굴 사람은 뒹굴고, 수다 떨 사람들은 수다 떨고, 책 볼 사람은 책 보고, 핸드폰 볼 사람들은 너무 많이 보지는 말고, 잠시 시간을 허무하게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저기 저 여성들은 여기가 해넘이 맛집이라며 한참을 해변가에서 기다리더니 기어코 예술 사진 몇 장을 남기네요. 매일매일 세계 곳곳에서 장관을 연출해주는 해님이지만, 지금 이 순간은 저희 마음속에만 아름다운 노을을 아로새겨 줍니다.

 

여기서의 마지막 저녁 식사입니다. 숯불로 초벌구이 돼지고기 항정살과 부대찌개로 아쉬움을 열렬히 달랩니다. 언제 또 밖에서 이런 여유와 음식을 즐겨 볼 것이냐라며 면죄부를 줍니다. 양심의 가책을 뒤로한 채 저의 손은 빠르게 왔다 갔다, 저의 입은 위아래로 오물조물하며 기쁨에 동참합니다. 가족들 모두 이렇게 멀리 왔지만 좋은 경치에, 좋은 시설에, 좋은 음식에 캠핑을 만끽하고 있다며 서로를 칭찬해 줍니다. 그리고 타오르는 장작 앞에서, 또 언제 시간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음에 또 캠핑을 오자며 손도장으로 꾸욱 약속을 합니다.


캠핑 3일 차

일어나세요, 정해진 시간까지 자리를 비워야 해서 지금부터 텐트를 걷어야 합니다. 정리하는데만 한두 시간 이상 걸릴 것 같아요. 텐트를 치는 것도 일이지만 걷는 것도 힘든 일입니다. 분리수거도 해야 하고, 저희 자리에 작은 쓰레기도 모두 줏어야 합니다. 벌써 땀이 흘러 상의를 모두 적십니다. 음식물은 국물을 따로 잘 분리해서 버려야 하고요. 요즘 캠핑장들은 잘 돼있어서 쓰레기장도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자, 텐트도 다 걷어서 첫째 형님 차에 정리했고, 짐도 다 정리해서 차에 실었고, 반납 물품(선풍기, 멀티탭)도 모두 제출했고... 빠뜨린 것 없지요? 따로 꺼내놓은 갈아입을 옷 들고 오세요. 정리하느라 땀을 많이 흘렸으니 마지막으로 샤워하고 출발하겠습니다.


"제부, 일미정이라고 내비게이션에 찍고 오세요. 해남에 왔는데 닭코스 요리로 마무리 짓고 가야제."

제 친구 녀석도 해남 간다고 했더니 바로 닭코스 요리는 무조건 먹으라고 하던데 해남에서는 닭코스 요리가 유명한가 보네요. 얼른 가시죠. 정리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기와가 다홍색으로 깔끔하게 정렬되어있어 음식은 보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입맛이 돕니다. 여기는 닭요리 거리인 것 같습니다. 저기 앞으로 닭집이 쭉 늘어서 있네요. 저희 처형네가 또 미식가들이라 맛집을 잘 알고 있으니, 여기 음식점들이 다 비슷하겠지만 그중에서 가족들에게 적극 추천할 만한 식당인 것은 분명합니다. 믿고 들어가셔도 되겠습니다.


닭 주물럭과 소금구이

해남 대표 음식답게 주물럭은 쫀득쫀득 하게 쌉싸름하면서도 매울 듯 맵지 않게 착 달라붙고, 소금구이는 날개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먹는 치킨의 세배 정도는 돼서 한참을 뜯어먹습니다.

"제부, 원래 여기가 닭 육회가 일품인데, 지금은 날씨가 너무 더워서 코스요리에 안 들어간다고 하네. 아쉽지만 주물럭 하고 소금구이라도 맛있게 드셔. 그리고 좀 있다 백숙도 나오니께 너무 반찬으로 배 채우지 말고."

처형의 말대로 반찬은 최대한 자제했는데도 주물럭과 소금 구이양이 많아 이미 배가 찼는데 백숙이 또 나오네요. 같이 나온 녹두죽에 백숙을 찢어서 넣어 먹어보세요. 맛이 정말 일품입니다.


이 더운 날 믹스커피까지 다 마시고서야 이제 일정이 마무리된다는 걸 체감합니다. 저희 아이들과 조카들도 아쉬움에 진한 작별인사를 합니다. 거의 맨날이다시피 통화하는 자매들은 멀리 떨어지는 냥 작별인사를 몇 번씩 합니다. 남자들은 잘 가라며 묵묵히 악수합니다. 이제 모든 일정이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리고 든든히 채워진 배만큼 저의 몸무게는 늘어났겠지만, 2박 3일간의 즐거움은 저를 붕뜨게 합니다.


만약 제가 이전 직장을 계속 다니고 있는 상태였다면, 이 2박 3일 동안 집중하지 못했을 겁니다. 수시로 오는 전화에, 수시로 뜨는 이메일에, 수시로 울려대는 메신저에... 정작 진짜로 집중해야 할 것에 집중하지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 얽매임 없는 백수로서 온전히 2박 3일을 캠핑에, 여유에, 행복에, 가족에 집중했습니다. 앞으로 이 소중한 백수의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또 하나의 소중한 추억을 간직한 채, 의 세 아이를 뒤에 태우고, 의 아내를 옆에 앉히고 집으로 출발합니다.


2박 3일 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캠핑 기념 영상

캠핑의 음식들과 캠핑을 밝게 빛내준 첫째 녀석의 방송댄스를 콜라보해봤습니다. 딸의 댄스를 따라 하는 엄마의 익살도 버무려 봤으니 많이 웃으셔도 됩니다.(첫째와 아내에게 영상 사용 허락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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