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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흠 Nov 13. 2024

연세?? 집 상태가 이게 맞아?!

제주도엔 특별한(?) 임대 문화가 있다. 바로 연세이다. 연세는 쉽게 얘기하면 일 년 치 월세를 한 번에 내고 계약하는 것이다. 처음 제주도에 내려오기로 마음먹었을 때 유튜브를 찾아보며 연세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전까진 여행으로만 왔기에 집 구할 일이 없어 연세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다. 

2023년 10월 본격적으로 제주도에 살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동안 얻은 정보에 의하면 '오일장' 홈페이지와 당근에 가장 활발하게 매물이 올라온다고 했다. 10월에 제주도에 방문하여 당근에서 주소 설정을 제주도로 바꿔놓고 틈틈이 올라오는 매물을 봤다. 처음 제주도로 이주해 살기로 마음먹었을 땐 무조건 서귀포로 생각했었다. 왜냐면 한국에서 가장 파도 컨디션이 좋은 중문 색달해변이 있고 도심에 살 거면 뭐 하러 제주도에 사냐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원하는 집과 밥벌이는 구하려고 하니 서귀포에서는 쉽지 않았다.

제주에 살고 있는, 살았던 지인들(대부분 서퍼)에게 조언을 구해보니 일 년에 정작 서핑을 할 수 있는 날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서귀포에서 확실한 돈벌이가 있으면 좋지만 그렇지 않으면 추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제주로 이주 자체를 말리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 시기엔 집을 알아보기 위해 매주 제주도를 왔다 갔다 했다. 이때 든 생각이 '이렇게 쉽게 올 수 있는 곳을 그동안 왜 그렇게 고민하고 망설이며 힘들게 왔지??'였다. 역시 너무 많은 생각은 내게 주어지는 기회를 스스로 차버리게 한다. 

제주시에 살고 지인의 집에서 신세를 많이 졌다. 동문시장 근처였는데 그동안 몰랐던 제주도의 모습들을 많이 볼 수가 있었다. 특히 가장 놀랐던 것은 주차 문화와 클린하우스였다. 내가 살던 인천은 주차하기가 정말 힘든 곳 중 하나였다. 대로변은 당연하고 공영 주차장도 별로 없는 오래된 주택가에서도 주차구역이 아닌 곳에 주차하면 주말에도 단속에 걸렸다. 집 건물에 주차장이 없는 사람들은 미칠 노릇이었다. 특히 나처럼 늦은 시간에 퇴근하는 사람들은 이미 주차가능한 자리는 다 주차가 되어 있어 자리가 없었다. 동네를 몇 바퀴씩 돌다가 아주 멀리 떨어진 주차장에 주차하고 걸어간 적도 있다. 한 번은 집에서 짐을 내리기 위해 잠시 집 앞에 비상등을 켜놓고 트렁크를 열고 잠시 정차한 적이 있는데 그 사이에 주차딱지를 떼고 갔다. 너무 억울해서 의견서를 제출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그래도 주차구역에 주차하고 하셨어야죠. 차에 사람이 타고 있지 않으면 무조건 벌금입니다"였다. 이땐 정말 속에서 쌍욕이 올라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이랬던 인천과는 다르게 제주도는 주차에 대해 한없이 너그러운 편이다. 신제주 도심가만 아니라면 거의 아무 데나 주차를 해도 될 정도다. 이게 어느 정도냐면 지금 제주도에서 운영하는 체육관이 1층인데 체육관 문 앞에 딱 한대 주차할 수 있는 주차라인이 있다. 그 라인을 막아서 주차하는 얌체 운전자들 때문에 가끔 주차를 하지 못하거나 문 앞을 막아버려 곤란한 상황들이 발생되는데 시청이나 도로교통과에 전화해도 서로 본인들 관할이 아니라며 떠넘긴다. 쉽게 말해 주차관리를 하는 곳이 아무 곳도 없다는 것이다. 주차관련해서 피해를 입어도 해결해 줄 곳이 아무 곳도 없다. (만약 있다면 알려주세요)

다음으로 클린하우스다. 육지에도 요즘엔 동네에 재활용 쓰레기장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여전히 재활용이나 쓰레기봉투를 집 앞에 내놓으면 환경미화차량과 폐지를 줍는 할머님들께서 주워 가신다. 

제주도는 클린하우스라는 쓰레기처리 시설에만 쓰레기봉투와 재활용 쓰레기를 버릴 수 있다. 재활용도 쓰레기도 요일별로 버리는 날짜가 정해져 있다. 음식물 쓰레기도 교통카드 기능이 있는(처음엔 교통카드 기능이 없는 카드를 들고 갔다가 기계가 고장 난 줄 알았다) 카드를 통해 결제하고 버리는 시스템으로 되어 있다. 클린하우스도 몇몇 항상 열려있는 곳을 빼곤 오후 3시부터 새벽 4시까지만 오픈되어 있다. 외출한 김에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쓰레기를 잔뜩 들고나가 차 트렁크에 싣고 다니고 클린하우스 열리는 시간에 맞춰 버리는 경우가 일상이 되어버렸다. 이 처럼 제주도에 내려와 새롭게 익히게 된 제주만의 문화와 환경들이 여럿 있다. 

다시 각설하고 나는 지금 제주시 화북이라는 동네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화북이라는 동네는 아주 오래된 동네인데 제주도민들을 만나서 얘기해도 "화북??"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꽤 있을 정도로 모르는 사람이 많은 동네이다. 오히려 바로 옆동네 삼양해변으로 얘기하는 게 이해가 빠를 때가 많다. 나는 이 화북이라는 동네를 어떻게 오게 되었을까. 나도 집을 계약할 때까지도 화북이라는 동네를 전혀 알지 못했다. 보통 살고 싶은 동네를 정하고 그곳에서 집을 찾아보는 게 일반적이지만 나는 반대였다. 집을 먼저 알아보고 계약하고 그 후에 동네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제주도에서 집을 구해본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제주도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게 안 되는 집들이 정말 많다. 부동산에 들어가 방을 물어볼 때면

"집 알아보러 왔습니다" 

"몇 분이 사세요??"

"성인 둘에 강아지 한 마리입니다"

"그럼 방 없습니다"

라며 더 들어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당근이랑 오일장에서 찾은 집을 보러 가도 집주인들이 "집 안에서 개를 키워요?!"라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 '반려동물 가능'으로 체크하고 집을 찾으면 선택지가 확 줄어버린다. 그렇게 나는 동네가 중요한 게 아니고 25kg이 나가는 내 반려견을 받아주는 곳을 찾는 게 급선무였다. 그렇게 애월부터 함덕까지 제주도를 가로지르며 집을 알아보았다. 그중 정말 재미난(?) 컨디션의 집들이 많았는데 기억에 남는 집들을 몇 군데 얘기해 보겠다.

첫 번째로 애월에 어느 조용한 지극히 제주스러운 시골 마을에 있는 단독주택 집이었다. 방 하나에 거실, 다락방 구조로 되어있는 집이었는데 거실 가운데 하울에 움직이는 성에 나올 법한 장작으로 불을 때는 난로가 있었다. 마당엔 창고로 사용할 수 있는 컨테이너 박스가 하나 있었다. 나는 사실 이 집이 내 감성과 낭만을 자극했기에 마음에 들었었다. 아마 혼자 살 집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당장 계약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동거인은 이 동네에 살면 너무 고립될 것 같다며 반대했다... 지금 생각해도 조금 아쉬움이 남는 집이다... 쩝...

두 번째는 애월에 있는 외벽이 모두 딸기우유 같은 핑크색으로 되어 있는 단독주택이었다. 앞 뒤 작은 마당이 있고 실내 천고가 아주 높아 평수보다 훨씬 넓어 보이는 집이었다. 큰 도로에서 빠져나오면 바로 위치해 있어 교통편도 좋은 편이었다. 하지만 실내 컨디션이 영 좋지가 않았다. 싱크대 장이나 신발장 문을 열면 언제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벽에는 구석구석 곰팡이가 올라오고 있었다. 매매였다면 고쳐서 이쁘게 꾸며보고 싶어지는 그런 집이었다. 이 집도 패스...

세 번째는 건입동이라는 동네에 있는 집이었다. 대문에 있는 도어록 비밀번호를 치고 문을 열면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바로 나왔다. 계단을 올라가자 옛날 시골동네 쌀집에 달려있는 문이 우릴 맞이해 줬다. 그 문이 현관문이었다. 심지어 문을 자물쇠로 잠그도록 되어 있었다. 아까 그 대문이 현관문 역할을 한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2층엔 난간에 벽이 하나도 없었다. 발을 잘 못 디디면 바로 추락이었다... 과한 음주를 절제하게 해주는 그런 집이었다. 이 집도 패스...

네 번째는 어느 동네인지 기억이 안나는 곳에 있는 단독 주택이었다. 집을 둘러보며 문을 열어보려고 하자

"거긴 여시면 안 돼요!!" 

"왜요??"

"미용실 문이에요"

"네?????"

집주인이 운영하는 미용실과 연결된 문이었다. 열고 들어오진 않겠지만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열고 들어올 수 있는 그런 집이었다. 이 집도 패스...

다섯 번째는 화북동에 있는 3,4층을 같이 사용하는 집이었다. 상가건물 위층에 있는 집이었는데 1층에서 장사를 하는 집주인분 가족분들이 살다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여 내놓은 집이었다. 실내도 리모델링을 깨끗하게 해 놔서 컨디션이 정말 좋았다. 특히 집이 정말 넓었다. 3층에 방 두 개, 거실, 주방, 화장실이 있었고 실내로 연결된 4층으로 올라가면 방 세 개, 주방, 거실, 화장실이 있었다. 집이 두 개라고 보는 게 이해가 빠를 것이다.

4층은 복도 계단으로도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나중에 에어비엔비로 사용해도 좋을 것 같았다. 거실에서 창문을 열면 한라산이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경치도 정말 좋은 집이었다.

여섯 번째는 화북 포구 앞에 위치한 집이다. 복층 구조에 위아래층에 모두 화장실이 있었고 복층에 창고 공간, 앞뒤에 널찍한 야외 베란다가 있었다. 앞으로 나가면 바다가 보이고 뒤로 나가면 한라산이 보였다. 특히 지금까지 본 집들 중에 컨디션이 제일 좋았다. 집주인 분들이 관리를 아주 잘한다는 게 느껴질 정도로 현관부터 아주 깔끔한 집이다.

우린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집 중에 고민을 했다. 집을 보기 위해 시간을 빼고 당일로 제주도에 내려왔던 탓에 육지로 돌아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었다. 동네 카페에 앉아 두 집의 장단점을 적어가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결국 우린 여섯 번째 집으로 결정했다. 결정이 된 순간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다섯 번째 집이 우리 다음으로 보러 온 분들한테 계약이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여섯 번째 집이 우리의 운명이었던 것이다. 우린 계약서를 작성하고 계약금을 지불한 뒤 비행기에 올라탔다. 

두 달 동안 매주 당일치기로 제주도에 내려와 집을 알아봤고, 어렵게 구한 지금의 집은 너무나 만족하며 잘 살고 있다. 특히 아무런 정보가 없이 집만 보고 살게 된 우리 동네 화북은 알아갈수록 너무나 한적하고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이다.

문화재로 지정된 옛 성벽으로 사용했던 돌담들과 몇 백 년 된 나무들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러닝 코스인 올레길 18코스를 따라 3km 정도 달리면 검은 모레해변으로 유명한 삼양해변이 나온다. 그 옆엔 한라산에서 내려오는 시원한 용천수가 모이는 샛도리물이라는 수영스폿이 있다. 집에서 5분 정도 걸으면 동네의 작은 오름이지만 뷰가 정말 멋진 별도봉이 있다. 집에서 조금 걸어 대로변 쪽으로 나가면 여러 맛집들과 24시 대형마트, 다이소 등이 있어 인프라도 잘 갖추어져 있다. 제주의 예스러움과 현대적인 모습이 잘 조화를 이룬 동네이다.

제주에 살기 전엔 오직 중문 색달해변에만 파도가 잘 들어오는 줄 알았는데 12개월을 봤을 때 북쪽이 파도가 들어오는 빈도수가 더 많았다. 물론 여름철 색달해변의 파도 컨디션에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재밌는 파도들이 꽤 많이 들어온다. 

그렇게 우리는 제주시에 둥지를 틀고 이곳만의 아름다움 들을 찾아가고 있다. 서귀포는 쉬는 날 바람 쐬러 떠나는 관광지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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