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코치

by 은빛바다

관장님과 상담할 때는 체육관을 오전 9시에 오픈하고, 저녁 11시에 문을 닫으며, 주말도 체육관을 운영한다고 했다. 전부 거짓말이다.


점심 식사를 마친 관장님은 느긋하게 오후 1시경에 문을 연다. 만일 관원이 오전 운동을 하려면 관장님한테 도어록 비밀번호를 받는다.


텅 빈 체육관에서 조명을 켜고 러닝머신 전원을 올린 뒤 운동하고 나가면 된다. 이제까지 그렇게 혼자 운동한 관원은 없다.


참고로 올스타 복싱클럽에서는 오전 10시부터 관원이 운동할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마친다.


한코치는 오후 4시에 출근한다. 그 즈음에 하교를 마친 유년부가 모인다. 지시를 제대로 따르지 않는 아이들과 투닥거리다가 김밥으로 저녁을 때운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바빠진다. 퇴근한 뒤 체육관으로 오는 직장인의 미트를 받아줘야 하기 때문이다. 하루 동안 미트를 받아주는 인원은 많은 경우에 20명 정도다. 집으로 돌아가면 어깨와 등이 엄청 쑤신다.


관장님은 9시가 되기도 전에 퇴근한다.


“마무리 잘 해라. 나 먼저 간다.”


한코치는 먼저 체육관을 나서는 관장님에게 웃는 얼굴을 보인 적이 없다. 시원하게 잘 들어가시라는 인사를 한 적도 없다. 관원의 미트를 나눠서 받아주면 편할 텐데, 관장님은 여성이나 마음에 드는 관원의 미트만 받아줄 뿐이다.


급여는 70만 원 정도, 식대나 차비는 지원되지 않는다.


KakaoTalk_20250907_185743273_05.jpg


당연히 한코치는 체육관에 애정이 없다. 일할 의지도 없다. 군대에 가기 전까지만 대충 시간을 때우는 것이다.


저녁 10시에 조명을 끄고, 주말에는 아예 체육관에 얼씬거리지 않는다. 만일 관원이 주말에 운동하고 싶으면 역시 도어록 비밀번호를 받으면 된다.


나야 혼자 운동하는 방법을 아니까 그리 상관은 없다.


링에서 스텝을 밟으면서 쉐도우 복싱을 하면 운동복이 땀에 젖는다. 가끔 2kg 아령을 쥐고 쉐도우 복싱을 하는데, 다음 날 어깨가 빠질 것 같다. 기본적인 펀치나, 유튜브에서 보거나 올스타 코치들이 가르쳐 준 연타를 몸이 익도록 반복한다.



항상 발을 뛰고 있어야 한다. 줄넘기를 뛰는 이유가 이것이다. 복싱은 경기 내내 발이 땅에 붙어 있으면 안 된다.


다음으로 샌드백을 치면서 펀치력을 강화한다. 팔힘으로만 치는 게 아니다. 몸을 비틀면서 빠르게 체중을 실어야 한다. 샌드백 반대쪽까지 구멍을 뚫을 기세로 쳐야 시합에서 KO가 나온다. 그러다가 충격을 받은 손목 인대가 늘어나는 경우도 있다.


구석에 놓인 헬스기구로 근력을 강화한다. 고작 4개뿐이다. 무릎 어깨 등 복부, 아마 구색을 맞추기 위해 들여놓은 것 같다.


이제 헬스기구가 없는 복싱 체육관은 없다. 관장님은 예전 복싱 체육관은 링과 샌드백만 있었다며 헬스 기구의 설치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 확실히 꼰대다.


이렇게 운동하는 도중에 한코치가 주걱 미트를 들고 온다.


“미트 잡아 드릴 게요.”


원투 스트레이트 양훅 양바디 어퍼컷 위빙 쓱빡 턴, 한코치의 지시로 주먹을 휘두르면 단숨에 63빌딩 옥상까지 뛰어오른 것처럼 숨이 찬다.


2라운드 동안 쉬지 않고 펀치를 날린 뒤 항상 연타로 마무리한다. 원투원투 양훅 양어퍼 쓱 카운터, 이걸 10회 반복한다. 만일 자세가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처음부터 다시 10회를 시작한다. 지쳐도 이를 악물어야 한다.


미트를 다 치면 한코치와 힘껏 하이 하이브를 한다. 글러브와 미트가 머리 위에서 퍽 소리를 내며 부딪친다.


나는 글러브를 벗고 정수기의 물을 벌컥거린다.


“관장님이 체육관에 신경을 안 쓰는 것 같아.”


이미 관장님은 슬슬 눈치를 보다가 빠져나갔다. 또 1층 카페 사장님과 수다를 떠는 모양이다.


관원 서너 명이 러닝 머신을 뛰고 있는데 이들의 미트도 전부 한코치가 받아야 한다.


“네, 관심 없어요.”


“운영이 제대로 되겠어?”


“가게 문을 열어놓으면 어떻게든 손님은 오니까요.”


“관원 줄어서 조만간 닫을지도 모르겠네.”


“저는 상관없어요.”


항상 우울한 얼굴이다. 고등학생까지는 선수 생활을 했는데 허리 디스크가 상하는 바람에 그만뒀다.

들어보면 다른 문제도 꽤 있는 것 같다.


선수 생활을 지속하려면 빽이 있거나 말을 고분고분 잘 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위에서 끌어주지 않는다.


최코치의 말을 빌리면 머슴이나 다를 바 없고, 선배들이 당하는 부당한 판정도 많이 봤다.


“더러워요……,”


혼자 속삭이는 것처럼 말한다. 나는 조용하게 호응을 해준다.


“어딜 가나…….”


간혹 관장남과 최코치 사이에 사소한 다툼이 일어난다. 관장님이 퇴근하기 전 러닝머신과 헬스기구의 먼지를 싹 닦으라고 지시했는데, 다음 날 점심 나절에 출근하니 그대로다.


“어제 퇴근하기 전에 걸레질하라고 했어? 안 했어?”


한코치가 출근하자 관장님은 야단친다. 그 동안 참은 게 있는지 한코치가 반발한다.


“관장님이 좀 하면 안 돼요? 오늘 나오셔서 뭐 하셨어요? 아무것도 안 하셨죠?”


뻔하다. 조명만 켜놓은 채 이 건물의 다른 사장님과 수다를 떨러 갔을 것이다. 요즘에는 길 건너 세탁소 사장님과 어울리는 광경을 목격된다.


체육관 정문에는 항상 관장님의 전화번호가 적힌 메모지가 붙어 있다. 급한 용무가 있으면 연락 주세요. 신정철 관장. 010-○○○○-○○○○.


만일 등록하러 온 신입회원이 체육관에 아무도 없는 걸 알면 어떤 반응을 할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마지못해 걸래를 든 한코치가 러닝머신을 닦는 동안 관장님은 시큰둥하게 바라본다. 헬스 기구에 앉은 나에게 다가와서 불만을 드러낸다.


KakaoTalk_20250907_185743273_17.jpg


“하여간 지독스럽게 말을 안 들어. 백선아, 어떻게 하면 되냐?”


다른 관원에 비해 내 나이가 많다. 그래서 관장님은 편하게 백선아, 백선아, 하면서 이름을 부른다.


직원을 존중하지 않는 고용주나, 고용주에게 대드는 직원이나 어느 쪽이 더 잘났다고 할 수 없다. 이 둘의 관계가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다.


얼핏 따로 대화를 나눠보니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군대 영장만 나오면…….


“20대 초반이면 아직 어리잖아요. 잘 달래야죠.”


“그래도 저 자식이 너무 철이 없어.”


하긴 월급을 주고 고용하는 입장인데, 관장님도 불만이 없을 리가 없다. 이런 체육관에 1년이나 등록한 나도 마찬가지다.


운동을 마치고 나오는데 한코치가 지하 주차장 입구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잠깐 쉬러 나온 줄 알고 나는 편의점을 가리키며 제안한다.


“음료수 마실래?”


담배를 허리춤으로 감추면서 한코치가 고개를 젓는다.


“아니에요. 차 빼러 나왔어요.”


손가락으로 주차장 입구를 가리킨다.


주차권은 두 시간만 무료다. 주차장에서 승용차를 뺐다가 거리를 돌고 다시 들어가면 주차 시간이 연장된다. 그렇게 체육관에서 미트를 받다가도 두 시간마다 나와 주차 시간을 리셋한다.


“관장님 차야?”


“아니에요. 체 차예요.”


어라? 월급 70만 원에 승용차를 몰고 다니기가 쉽지 않을 텐데?


“아버지 차를 끌고 다니니?”


“아니에요. 제 차라니까요.”


한코치는 목소리에 힘을 주면서 대답한다. 자기 차를 갖고 있는 자부심이라고 할까?


뭐 그럴 수도 있겠다고 여긴다. 버스 요금이랑 기름값을 따지면 거기에서 거기니까.


그런데 한코치는 이 체육관 말고 다른 곳에서 근무한 적이 없는 걸로 아는데 돈이 어디에서 났지?


담뱃불을 끈 한코치가 서둘러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간다.


자전거 보관대는 빽빽하다. 핸들이 서로 얽혀 끼워져 있다.

나는 속옷과 붕대가 든 멜빵 가방을 어깨에 건다. 글러브나 운동화는 사물함에 넣고 다니기에 가방은 가볍다.


다른 자전거를 약간씩 밀치면서 내 자전거를 꺼낸다. 그러는 동안 뒷바퀴에 허벅지가 스치기도 한다.


자물쇠 비밀번호를 맞추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나를 부른다.


“형님, 들어가세요. 내일 뵐 게요.”


고개를 드니 한코치가 검은 세단 운전석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이 주위를 한바퀴 돌고 다시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


나도 엉겁결에 손을 흔드는데, 트렁크에 붙은 마크가 그랜져다.


선입견인지는 몰라도 뭔가 이해되지 않는다.


그때 관장님이 한 말이 다시 떠오른다. 저 자식이 너무 철이 없어…….


나는 자전거 핸들을 잡은 채 한참 동안 헛웃음을 터뜨린다.



keyword
월, 수, 금, 토, 일 연재
이전 17화진정한 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