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재능을 가진 운동 선수가 있기는 있다. 노력하지 않는 천재, 신정철 관장님이 그런 경우다.
WBA 플라이급 세계 랭킹 1위. 프로전적이 17승 1패, 1패가 WBA 세계 타이틀전이다. 그후 선수 생활을 더 할 수 있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다시 글러브를 끼지 않는다.
“주먹이 무서워지더라. 그걸 극복하지 못 했어.”
그 이유 중에 하나다.
어린 시절부터 동네 아이만 아니라 형들까지 패고 다닐 정도로 적수가 없었다.
중학교 시절에 복싱을 시작해서 3년 만에 태능선수촌으로 들어간다. 당시 선수 중에서 가장 어린 나이다. 다들 그의 펀치력과 복싱 감각에 소름이 끼친다고 입을 모은다.
복싱 하나만으로 주위에서 하늘처럼 떠받들어 준다.
오만해진다. 훈련에 게으름을 피운다. 새벽 러닝 도중에 빠져나오고, 훈련장에서 무단으로 이탈한다. 아시안 게임에 출전하지만 메달은 따지 못하고, 다시 국가대표로 선발되지 않는다.
그래도 기고만장, 자기 주먹만 믿는다. 관장님이 가장 후회하는 시절이다.
프로로 전향한다. 고등학교 시절에 국가를 빛내기 위해 세계 대회에 나갔으니 대학 복싱부로 특별 전형이다.
대학교 재학 중에 동양 챔피언 타이틀을 딴다. 1980년대에 복싱은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다. 동양 타이틀전도 KBS에서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현지 생중계를 한다.
학교에서 여대생이 신정철을 만나려고 줄을 선다. 술집에서 자신을 알아보는 취객을 꽤 만난다. 사인을 해주고 술을 공짜로 얻어먹는다.
대학 졸업 후 늦은 나에게 군대를 간다. 훈련 기간이 끝나자마자 사단장이 호출한다. 복싱 마니아다.
“정철이는 복싱만 하도록 해.”
내무 생활을 하지 않는다. 동양 타이틀 방어전이 잡히면 사단장이 적극적으로 훈련 지원을 해준다.
타이틀을 방어하는 날에 먼저 사단장실에 들려 신고한다.
“충성! 대한민국의 명예를 걸고 타이틀을 방어하고 오겠습니다.”
사단장이 그와 악수를 나누며 군인답게 격려한다. 사실 협박이다.
“지고 돌아오면 영창에 갈 줄 알아.”
시합을 마친 뒤 동양 챔피언 벨트를 어깨에 걸고 다시 사단장실로 들어간다.
“충성! 이기고 돌아왔습니다.”
사단장은 특별 휴가 30일을 준다. 같이 챔피언 벨트를 들고 사진을 찍는다. 그 사진을 사단장실에서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걸어 놓는다.
패싸움에 걸려 재판을 받을 때에도 관장님은 유리한 판결을 받는다. 복싱협회에서 아마추어 기록을 보낸 준 자료를 바탕으로 판사는 이런 내용을 첨부한다.
“복싱인으로 국가 위상을 높인 점을 감안해서 형량을 감한다.”
지금이라면 말도 안 되는데 당시에는 그랬다고 한다.
인터넷으로 ‘복싱선수 신정철’을 검색한다. 선수 시절의 사진이 뜬다. 세계 타이틀전에 대한 기사가 나오고, 홍수환 유명우 박종팔과 어울리며 찍은 사진도 있다.
유튜브에 세계 타이틀전 동영상도 나온다. 특집 KBS 권투, 40년 전, 관장님의 앳된 얼굴을 보니 웃음만 나온다.
시합 전 애국가가 울린다. 오른손을 가슴에 올리며 태극기를 바라본다. 트렁크에도 태극기가 붙어 있다. 저 순간에 기분이 어땠을까?
태국 선수와 시합하면서 날렵하게 주먹을 휘두른다. 난타전 도중에 라이트 훅이 상대의 턱에 꽂힌다. 다운이다. 일어서서 주먹을 흔드는 관객들은 거의 광적이다. 이게 링 코너에서 기다리는 선수가 신정철 관장님이 맞는가 싶다. 아쉬울 게 없는, 가장 화려했던 시절이다.
관장님이 주먹을 쥐면 손목 부위가 약간 솟아있다. 무거운 샌드백과 단단한 이마를 때려서 정권의 뼈가 뒤로 밀린 것이다. 그것도 KO 시키기 위해 죽일 각오로 휘둘렀을 테고. 글러브를 껴도 그 충격을 완전히 누그러뜨릴 수 없었다.
그의 복싱 인생이 얼마나 고된 시간이었을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시합은 판정패를 당한다. 만일 태국 원정이 아니라 한국에서 벌어진 시합이라면 이겼을 거라며, 관장님은 아직도 아쉬워한다. 당시 해외 원정 시합은 KO로 이기지 않는 한 승산이 없다.
은퇴 후 한동안 중학교 복싱 감독으로 일한다. 하지만 게으른 성격은 어쩔 수 없다.
전날 술 마시고 아침 운동을 지도하지 못하는 날이 많아진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지도자로는 어울리지 않다. 다른 선생님의 입방아에 오르다가 성질을 부리면서 사표를 내버린다.
먹고 살아야 하는데 복싱 글러브는 쳐다보기도 싫다. 고민하다가 매니저였던 지인과 사업체를 꾸려나가기로 한다. 무슨 사업인지 끝까지 언급하지 않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동업자에게 배신을 당하고 쫄딱 말아먹는다.
지인은 일본으로 도망친다. 세상 물정 모르는 운동 선수가 사업가로 변신하려다가 맞이하는 흔한 결말이다.
결혼과 성격 차이로 인한 이혼, 자녀들은 엄마를 따라가고, 다시 복싱으로 돌아와 체육관을 차리기까지 그의 인생이 파란만장하다.
빚쟁이를 피하느라 서울역에서 노숙까지 해봤다는 관장님의 서글픈 과거다.
운동하다가 쉬고 있으면 내 곁에 붙어서 쉬지 않고 나불거린다. 아마 가슴에 응어리가 많아서 그런 거라고 여긴다.
도중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올스타의 노관장은 복싱 선수 출신이 아니었다.
“그 자식, 많이 컸지. 원래 여관에서 일한 놈이었어. 하여간 관장이 되고 나서도 양아치 짓은 그대로야. 어찌 생활인 체육대회 등록비를 30만 원이나 받냐? 전부 합해서 20만 원이면 충분한데.”
올스타에서 생활인 복싱대회 출전할 때마다 관원에게 30만 원을 받았다.
출전비, 차비, 한끼 식대, 인솔하는 코치의 수고비까지 포함한 금액이었다. 관장님의 말을 듣고 보니 노관장이 폭리를 취하지 않은가 의구심이 든다.
노관장은 예전에 신정철 복싱 체육관 관원이었다. 열심히 운동하고 재능도 있어서 코치로 채용했다. 무엇보다 관원을 대하는 립 서비스가 좋다. 미트를 받아주면서 관원의 기분을 좋게 해주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 전에는 모텔 카운터에서 손님 받고 이불 나르면서 지냈다. 때문에 운동 시간도 꼭 오후에 나왔다가 일찍 들어갔다.
갑자기 코치를 그만두더니 어디에서 대출을 받았는지 엄청나게 큰 규모의 올스타 체육관을 차렸다. 원래 체육관을 운영하려면 생활 스포츠 지도자 자격증이 있어야 하는데, 노관장에게는 그게 없다. 박코치 같은 선수 출신을 유독 잘해준 이유가 그것이었다.
나는 의외의 사실을 알고 어이가 없다. 프로 선수 출신이라고 어깨를 세우면서 다니더니, 모텔에 들어온 연인에게 카운터 창문으로 세면 도구를 건네는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법무 사무소에서 체육관으로 공문이 온다. 제목부터 까다롭다.
‘(주) 유담 소프트 서체 프로그램에 관한 저작권 침해 관련 법적 진행 착수 통보의 건’
관장님이 이거 무슨 내용인지 설명을 해달라고 나에게 부탁한다. 도서관에 오래 근무했으니 아는 게 많을 거라고 하면서.
가끔 거리에서 체육관 홍보용 전단지를 나눠 준다. 한코치와 구역을 나누거나 혹은 학생들의 도움으로 진행하는데, 거기에 쓴 글씨체가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연락이 온 것이다.
신영철 복싱체육관, 개인라커, 주차장, 샤워시설 완비, 왕따 방지 등 전단지에 이렇게 쓴 글씨체는 ‘유담 소프트’라는 회사에서 특허를 낸 건데 왜 함부로 사용하느냐는 억지다.
서체를 특허 냈다는 주장은 처음 들어보고. 많은 서체 중에서 어느 게 특허를 낸 서체인지도 모르고. 이런 서체를 사용하는 곳이 한두 군데도 아니고. 이거 모르면 당한다.
거리를 지나가다가 복싱 도장 팸플릿을 받았을 테고, 아무래도 법무법인 간판을 이용해서 합의금을 뜯어내려는 수작으로 보인다.
순진한 개인 사업자에게 이런 공문을 보내서 압박하는 법무법인이 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관공서에는 무슨 글씨체를 사용하든지 절대로 이런 공문을 보내지 않는다.
“신경 쓰지 마세요. 전화 걸면 오히려 엮이니까 아예 무시하세요.”
나는 충고하지만, 관장님은 속이 타는지 인쇄소 담당자와 계속 통화한다. 옛날 사람이라 그런지 법을 들이대면 괜히 겁을 먹고 민감해진다. 사업하다가 재판까지 간 경험이 있어서 더 그런지도 모른다.
주먹은 잘 쓰지만 하는 행동을 보면 어리숙하기 그지없다. 사기를 당해 사업을 다 말아먹은 이유가 있기는 있다.
올스타에서도 이런 공문을 받은 적이 있다.
노관장은 우편물을 뜯고 세세하게 내용을 훑는다. 곧장 법무법인 회사로 전화를 건다. 처음에는 공손하게 대하는 척하다가 나중에는 반말과 욕설로 일관한다.
“그러니까 당신네들이 이 서체가 특허를 받았다는 공문을 먼저 보내란 말이야. 워드 프로세서 글꼴이 수십개인데 그중에서 어느 서체가 특허를 받았는지 어떻게 알아? 이거 어디에서 개수작이야. 당신 지금 어디야?”
한바탕 떠들썩하게 언쟁을 벌인 노관장은 콧방귀를 뀌면서 서류를 북북 찢는다. 휴지통에 버리면서 한마디 덧붙인다.
“이거 자원 낭비고 환경오염이야.”
신정철 관장님에게는 이렇게 단호한 맛이 없다.
중학교 복싱 감독으로 지내는 동안 지역 청소년 선도위원으로 맡았다. 강연도 꽤 나갔다고 하는데 어떻게 아이들 앞에서 떠들었는지 모르겠다.
학교 폭력 예방, 왕따 방지 차원에서 남자 여자 할 거 없이 학생들을 전부 운동장으로 끌어낸 뒤 가드를 올리고 원투 치는 법을 가르쳤다. 그게 말로 떠드는 강연보다 자기에게 잘 맞는 거라고 덧붙인다.
그가 아이들을 가르칠 때 꼭 언급하는 말이 있다. 진정한 재능은 뭔가 하나 더 극복하는 과정에서 증명되는 거야.
아무래도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면서 얻은 경험이 아닌가 싶다.
환갑이 지난 관장님의 마지막 바람이 있다. 자기 체육관에서 세계 챔피언을 만들고 싶다.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 나는 은근히 짜증이 난다. 자기가 못 이룬 꿈을 이루고 싶은 건가? 차라리 영화를 찍는다고 하지.
꼭 챔피언은 아니더라도 그만큼 후진 양성에 힘을 쏟고 싶다는 의도다. 소방관에게 공을 들이는 이유가 그것이다.
몇달 신정철 체육관에 다니는 동안 나는 그를 형님이라고 부르게 된다.
왠지 밉지가 않다.
체육관 시설이 형편없는 거 불만이지만 운동하는데 큰 지장만 없으면 되는 거 아닌가.
남자끼리는 이런 식으로 친해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