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주말 근무하는 경우에는 평일에 쉴 수 있다.
그런 날에는 일부러 오후 4시 즈음에 체육관으로 향한다. 공간을 넓게 사용할 수 있지만 이것도 마음이 편하지 않은 게 그 시간에는 초등학교 아이들이 훈련하고 있다.
아니, 훈련이라고 하기는 그렇고 지들끼리 신나게 뛰어다니며 놀고 있다. 링에서 레슬링을 해도, 샌드백을 걷어 차도, 깔깔거리며 체육관을 사방으로 뛰어다녀도 아무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링에서 눈 가리고 술래잡기까지 한다.
관장님은 여전히 1층 카페 사장과 어울리고 있고, 한코치 역시 이 체육관에 의무가 없다.
아이들끼리 떠들면서 무슨 희한한 욕을 그렇게 지저분하게 해 대는지, 서로 킥킥거리며 조롱하는 대화를 들으면 기가 찰 노릇이다.
“응, 알았어. 너희 엄마 가슴 A컵.”
“그래 나도 알았어, 너희 아빠 거시기 3cm.”
내가 평소에 인식하는 초등학생의 마인드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도대체 학교에서 선생님이 집에서 부모님이 어떻게 교육을 시키는지 대한민국의 미래가 한없이 불안하다.
김종수. 20대 초반. 정신지체아다. 110kg, 마주 서면 저절로 위압감이 든다.
엄마가 데리고 와서 부탁한다.
“제발 살 좀 빼게 해 주세요. 더 이상 받아주는 곳이 없어요.”
관장님이야 나름 의무감으로 받아 줬겠지만, 이것으로 인해 체육관에 미치는 영향은 고려하지 않았다.
종수는 할 줄 아는 게 없다. 하지만 시키는 건 한다.
“종수, 30분 뛰어.”
관장님이 지시하면, 종수는 러닝 머신으로 올라가 어기적어기적 걷는다.
“종수, 속도 높여서 빨리 뛰어.”
또 관장님이 지시하면, 종수는 거슴츠레한 눈빛으로 돌아본다.
“힘들어요…….”
어쩔 수 없이 관장님이 러닝 머신 속도를 직접 조정하면서 훈련시킨다. 종수 엄마를 직접 만나 상담했기에 책임감이 있는 것 같다.
“종수, 샌드백 5라운드 쳐.”
관장님이 지시하면, 종수는 글러브를 끼고 안마를 하듯 툭툭 두드리기만 한다. 핸드립을 감을 줄도 모른다.
“종수, 주먹을 쥐고 쭉 뻗으면서 힘껏 쳐.”
또 관장님이 지시하면, 또 종수는 거슴츠레한 눈빛으로 돌아본다.
“관장님, 저 지쳤어요…….”
어쩔 수 없이 관장님이 샌드백을 잡아주면서 닦달한다.
원! 투! 양훅! 양어퍼! 종수도 숨이 찰 때까지 연속으로 주먹을 날린다. 유니폼이 땀으로 젖어야 관장님은 풀어 준다. 스파링은 꿈도 꿀 수 없다.
만일 올스타 복싱클럽이면 종수는 글러브를 낄 수 없다. 아예 신입관원 면담하면서 노관장이 확실하게 종수의 부모님에게 거절 의사를 밝혔을 것이다.
이런 부분에 대해 관장님은 애틋하다. 그래도 종수 같은 애를 받아서 운동을 시켜야지…….
다른 관원이 불편하게 여기는 걸 모르면서 말이다.
문제는 그렇게만 운동만 하면 좋은데 종수는 자꾸 신경에 거슬리는 행동을 한다.
러닝 머신에서 걷는 동안 나는 쉐도우 복싱을 한다. 스트레이트와 훅은 번갈아 날리며 자세를 잡는다. 그것을 본 종수가 따라 한다. 내 옆에서 러닝머신을 타며 쉐도우 복싱을 하는데 꼭 오징어 춤을 추듯 팔이 허우적거린다.
이게 혹시 나를 비아냥거리는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들 정도다. 만일 정상적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였으면 시비가 걸릴 수도 있다.
샌드백을 치면 꼭 종수는 반대편에서 따라서 친다. 의도치 않게 출렁거려서 나는 곧장 다른 샌드백으로 옮긴다. 개의치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어느 날부터 종수는 주변 관원마다 돌아다니며 말을 붙인다. 나도 이상한 질문을 받는다.
링 사이드에 앉아 핸드립을 감는데 갑자기 종수가 큰 얼굴을 바싹 들이댄다. 이게 뭔가 싶어서 깜짝 놀란다. 마치 곰이 습격하는 것 같다.
종수는 어눌한 발음으로 이상한 질문을 던진다. 입가에 침이 튄다.
“남의 이야기를 함부로 하면 안 되죠? 그렇죠?”
마치 자기 얼굴을 나에게 씌워버릴 것 같다. 나를 뚫어버릴 것처럼 눈동자가 강렬하다. 아마 누군가 체육관
에서 종수에 대해 언급을 한 것 같다. 범인을 잡으려는 노력이다.
“그렇죠. 남 이야기를 하면 안 되죠.”
종수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는다. 마치 내가 범인이 아니라는 듯, 기분 좋게 싱글거리며 관장님에게 걸어간다.
이런 식으로 종수는 이상한 질문을 많이 던진다.
“아무 이유 없이 짜증을 내는 거 잘못된 거죠? 그렇죠?”
누군가 다가오는 종수에게 짜증을 냈던 것 같다.
“발로 샌드백을 걷어차는 거 안 좋은 거죠? 그렇죠?”
또 누군가 관장님 몰래 샌드백에 미들킥 연습을 한 모양이다.
“지히철에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은 건 잘못된 거죠? 그렇죠?”
항상 종수는 그런 태도다. 질문을 통해 옳고 그른 것을 구분하고, 자신은 옳은 쪽으로 행동하려고 노력한다.
딱 그 정도다. 종수가 다른 관원에게 피해를 준 것이라면.
자신과 친하지도 않은 관원에게도 계속 그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여성 관원은 그런 종수를 무척 꺼린다. 아니, 심하게 표현하면 징그럽게 여긴다. 그게 체육관을 떠나는 계기가 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사실 나도 운동을 마치고 샤워실로 들어가려다 종수가 씻고 있으면, 그냥 옷만 갈아입은 채 나온다. 찜찜한 몸을 추스르며 집에서 샤워한다.
그는 벌거벗은 채 한참 동안 거울 안의 자신을 바라보며 뭐라고 중얼거린다. 볼록 튀어나온 배는 그 안에 항아리가 든 것 같다. 이유는 모르겠고, 물어봐야 대답을 들을 수도 없다.
더 부담스러운 건 그 웃음으로 그대로 샤워하는 나를 바라본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그와 벌거벗은 채 같이 샤워실에 들어가기가 어렵다.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평일 오후에 체육관으로 들어선다.
문을 열자마자 아이들이 깔깔대면서 자지러지는 목소리가 들린다. 링에서 대여섯명의 아이들이 핸드립으로 눈 가리고 술래 잡기를 하고 있다. 욕설은 그들의 놀이에 자연스럽게 동반된다. 그냥 쳐다보기만 해도 피곤하다.
탈의실로 들어가는데, 링에서 뛰어다니는 종수가 눈에 들어온다.
스무 살 넘은 청년이 초등학생과 술래잡기를 하며 신나게 놀고 있다. 그게 종수에게 어울리는 풍경 같다. 얼마나 재미있게 노는지 함박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침이 흘러나오자 팔뚝으로 쓱 문지른다.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나오자 한코치가 아이들을 정렬시키고 있다. 아무리 어려도 체육관에서 놀기만 할 수 없다. 미트 치기라도 해야 매달 부모님이 내는 회비에 불만이 생기지 않는다.
미트 치기는 양손으로 2명까지만 받아줄 수 있기에 다른 아이들은 소파에 깊숙이 앉아 휴대폰을 바라본다. 내가 지나가도 인사 따위는 없다. 한코치의 지시를 받은 종수는 러닝 머신에서 느릿느릿 걷고 있다.
“너희들 휴대폰으로 뭘 보니?”
먼저 아는 척한다. 내가 아이들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
“동영상이요.”
쳐다보지도 않는다. 예의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거 안다.
“저기 러닝 머신에서 걷는 형아 있잖아.”
“네, 듣고 있어요.”
“너희들하고 잘 노냐?”
“네, 잘 놀아요.”
꼭 동전 넣으면 곧장 대답을 해주는 자판기 같다.
“불편하지 않니?”
“뭐가요?”
“좀 다르잖아.”
“어때서요? 저 형도 우리랑 똑같은 회비 내면서 들어왔는데?”
의외의 대답에 나는 아이들을 번갈아가면서 바라본다. 같은 회비를 냈으니 차별없이 대한다는 의미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똑같은 회비를 냈으니 이들에게 나이 대접은 바라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
아이들은 여전히 자기 휴대폰만 바라보고 있다. 자기만 보는 동영상을 슬쩍 옆에 아이에게 비출 때 여전히 쌍스러운 욕을 주고받는다. 저 욕이 정말 듣기 싫다. 그런데 종수와 잘 어울리고 있어서 왠지 그게 착하게 보인다.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이 아이들의 머리가 굵어지면 종수를 지금처럼 똑같이 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하지만 지금 이 체육관에서 아이들에게 차별이 없는 세상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