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양아치

by 은빛바다

벽거울을 보며 스트레칭을 하는데, 러닝머신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은 학생이 나에게 묻는다.


“아저씨…… 복싱 잘 해요?”


상당히 목소리가 조심스럽다. 이를 테면, ‘엄마…… 안방 화장대 거울을 내가 실수로 깨뜨렸어…….’ 이런 말투다.


요즘 학생 발육 상태를 보면 중학생인지 고등학생인지 짐작할 수 없다. 키는 나와 비슷한데 몸매가 호리호리

하다. 아마 페더급 정도 될 것 같다.


이것도 습관인지 복싱을 오래 하니까 첫인상을 체급으로 구분한다.


“아니, 잘 못해. 왜 그러니?”


“저랑 스파링 할 수 있어요?”


대놓고 도전이다.


이건 어떤 의도지? 내가 만만하게 보이나?


학생의 얼굴을 바라보니 무척 진지하다.


이를 테면, ‘엄마, 이번 달부터 용돈 올려주기로 했잖아요,’ 이런 표정이다.


딱 봐도 초보다. 패기는 인정하지만 성질 더러운 놈 만나면 링에서 뻗어버리기 딱 좋다.


격투기에서 체급은 깡패다. 내 절반밖에 안 되는 덩치로 시비를 거는 깡패는 못 봤다.


일단 관장님에게 허락을 받는다. 스파링을 하다가 안 좋은 결과가 난 적이 종종 있다. 맞고 아예 뻗어버리던가, 다음 날부터 체육관에 나오지 않던가.


내가 살살 봐주며 아이들에게 지도 스파링을 해주면서 관장님의 호감을 많이 얻었다. 나도 그런 식으로 운동하는 게 나쁘지는 않다.


다른 관원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모르지만 고등학생과 스파링 하다가 잔주먹을 맞아주는 거 부끄러운 일은 아니라고 본다.


“저기 친구가 스파링을 하자는데 괜찮을 까요?”


안내 데스크에서 유튜브 검색을 하던 관장님이 고개를 든다.


“아, 주엽이 착한 애야. 운동 신경도 좋고. 눈이 빨라. 만일 제대로 운동하면 챔피언까지 할 수 있을 거야.”


이럴 때 관장님은 실력이 아니라 주둥아리로 세계 1위까지 오른 것 같다.


옛날 체육관에서는 이런 식으로 띄워주면서 순진한 관원을 끌어들인 것 같다. 살살 똥꼬를 긁어주면서 말이다.


그제야 이 주엽이라는 아이가 무모한 스파링을 제안한 이유를 짐작한다. 관장님에게 입바른 소리를 듣고 자기 실력을 검증하려는 것이다.


체육관에서 공용으로 사용하는 헤드기어를 쓰면서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고민한다. 중학생이라고 하니 또 초짜니 가볍게 받아주는 정도로 대할 것이다.


그것도 상대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다르다. 치고 받다가 서로 흥분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까.


“세게 치지는 말고요. 툭툭 건드리는 정도로 때려야 해요. 이 정도로요.”


주엽이 글로브 낀 손으로 내 어깨를 지그시 누른다. 맞는 건 겁나는 모양이다.


항상 링으로 올라가면 내 코너에서 상대방을 보며 한쪽 무릎을 꿇는다. 파이팅 벨이 울리면 주먹으로 바닥을 퉁 치면서 달려 나간다. 내 루틴이다.


이런 행동이 상대에게 위압감을 준다. 멋있게 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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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주엽이 링으로 올라오지 않는다. 링 아래에서 관장님과 뭐라고 티격태격한다. 무슨 말인가 들어보니 마우스피스를 착용하지 않았다. 다시 복장을 훑으니 슬리퍼 차림이다.


마우스피스를 착용하지 않으면 스파링 도중에 이빨이 나갈 수 있다.


가격은 2만 원, 주엽은 그 비용이 없다. 그대로 싸우겠다고 우기는 것이다. 운동화도 없단다. 이대로는 스파링을 할 수 없다.


나는 글러브를 벗는다. 스파링을 걸었다가 시작도 않고 멈춘 경우는 처음이다. 변기에 앉았는데 내부 수리 중이라는 안내문을 본 경우라고 할까. 하여간 요즘 애들이란.


한참 실랑이를 벌이던 관장님이 주엽을 링으로 올린다. 더불어 나에게 부탁한다.


“고집이 좀 쎄네. 살살 해.”


슬리퍼를 신고 마우스피스를 끼지도 않은 상대와 스파링을 하기도 처음이다. 주먹을 휘두르기가 부담스럽다.


관장님은 이런 상황을 만들어 놓고 다시 유튜브로 들어간다.


역시 초짜다. 주먹이 다 보인다. 미리 약속한 대로 툭툭 건드리는 정도로 스파링을 진행한다. 경량급이라 그런지 빠르기는 하다. 관장님이 언급한 것처럼 눈도 좋다.


나는 빠르지도 않고 눈도 좋지 않다. 묵직하게 파고 들어가 주먹을 날리는 스타일이다.


가드를 바싹 올리고 더킹으로 흔들어준다. 잔펀치를 맞아주면서 코너로 몬다.


빈틈을 보고 슬쩍 훅을 날린다. 파리가 앉아갈 정도로 느린데 어쩌다가 주엽의 턱을 건드린다.


“으아아악~~~~~! 악! 악! 악!”


마치 맹견에게 물린 것 같다. 주엽은 그 자리에서 익살스럽게 자지러진다. 다운인데, 다운이라고 할 수도 없다. 다음이 더 가관이다.


“살살하자고 했잖아요.”


오히려 나한테 따진다. 이게 뭔가 싶다. 하여간 요즘 애들이 다 이런가.


스파링을 할수록 펀치의 강도가 쎄진다.


상대의 주먹을 맞으면 자기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중간에 코치나 다른 회원이 개입해서 낮추라는 조언을 하며 진정시킨다.


서서히 주엽의 펀치가 강해진다.


그에 맞춰 내 펀치의 강도도 올려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마우스피스를 끼지 않은 얼굴을 힘껏 칠 수는 없다.


더욱이 내가 코너로 몰면 으아아악! 바싹 움츠린 채 로프를 따라 뛰어나간다. 슬리퍼를 신은 채 잘도 달린다.


거침없는 비명에 줄넘기를 하던 관원이 링을 돌아본다. 내가 창피할 지경이다. 제대로 시합을 할 수 없다.


슬슬 봐주면서 하기도 했지만 굉장한 손해를 보는 기분이다. 하긴 한참 어린 중학생이니까.


스파링이 끝난 뒤 나는 헤드기어를 벗는다. 주엽을 불러 링에서 마주 앉는다. 충고의 시간이다.


“왜 스파링을 그런 식으로 하니?”


주엽의 대답은 당연하다.


“맞기 싫어서요.”


“예의가 아니야. 복싱은 맞으면서 배우는 거야.”


“알겠습니다. 저…… 아저씨 다음에 또 해요.”


경력자가 초짜를 받아주는 건 일종의 의무다. 나도 그렇게 배웠으니까. 대신 초짜는 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


만일 무하마드 알리와 취미로 복싱을 배우는 고등학생이 링에서 붙으면, 이변이 없는 한 무하마드 알리의 승리다. 그렇다고 무하마드 알리가 한 대도 맞지 않을 수 없다.


복싱은 서로 맞는 과정에서 많이 때리는 선수가 이기는 거다. 당연히 맷집이 중요하다.


다음에 또 하자는 제안에,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허락한다. 앞으로 체육관 나오기에 심심하지는 않을 거라고 여긴다.


일주일 뒤에 만난 주엽은 샌드백을 치는 게 달라진다. 사이드로 빠지면서 올려치는 어퍼가 날카롭다. 복싱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구나 흐뭇하게 여기는데, 왠지 녀석이 날카로운 표정이 눈에 걸린다.


뭐라고 할까? 샌드백을 치는데 표적이 있다. 그게 나인지도 모르고, 학교의 라이벌이거나, 아니면 성장하려는 자기 자신인지 모른다.


아니나 다를까 주엽이 스파링을 제안한다.


“혹시 너 복싱으로 학교에서 일진놀이 하는 거 아니지?”


“아니에요. 저 그런 거 안 해요.”


하긴 어디에서 분위기 잡고 휘두르는 성격은 아닌 것 같다.


여전히 마우스피스도 없이 슬리퍼 차림이다. 어쩔 수 없다. 여성과 스파링을 할 때처럼 방어 훈련으로 여기면서 단단히 가드를 굳힌다.


주먹이 더 빨라졌다. 왼쪽 오른쪽으로 빠지면서 올려치는 어퍼는 의외로 날카롭다. 계속 받아주다가 상대의 기세를 죽이기 위해 펀치를 뻗어 견제한다.


내 잽이 주엽의 헤드기어로 닿자마자 또 시작이다.


“으아아악! 악! 악!”


그 자리에서 자지러진다.


“살살해야죠. 아파요.”


도대체 이게 뭔가 싶다. 고등학생 정도만 돼도 속 시원하게 패버리고 싶다.


스파링은 전과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흘러간다. 다만 주엽의 날카로운 어퍼를 막기 위해 가드가 뻑지근해진다.


다시 일주일 정도 지났을 무렵 주엽을 만난다. 출입문에서 들어오자마자 나를 발견하고는 곧장 달려와서 손을 모으고 폴더인사를 한다. 예의가 바른 것 같아 기분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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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백을 치는 실력이 또 달라졌다. 연속으로 잽을 치는 자세가 확실하게 잡혔다. 저 잽으로 상대의 눈을 가린 뒤 라이트를 넣으면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관장님의 말대로 재능이 있는 친구다.


또 스파링을 해달라고 부탁한다. 나는 확실히 경고한다.


“예전처럼 일부러 쓰러지면 안 된다.”


주엽이 알았다고 다짐하지만 미심쩍다.


역시 그 버릇 못 고친다. 내 주먹이 주엽의 근처만 가도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다.


마음에 걸리는 건 주엽의 표정이다. 분명한 표적이 있다. 엄청 진지하다. 그게 내가 아니라고 해도 이런 식의 태도는 버릇을 고칠 필요가 있다.


시합 도중에 팔을 올려 글러브로 내 정수리를 친다. 진지하게 각오할 때 사용하는 루틴이다. 주엽을 코너로 몬다.


주엽의 얼굴에서 장난기가 사라진다. 녀석은 빠르다. 순식간에 몸을 웅크리고 로프를 따라 달려 나간다. 한번 놓쳤다.


다시 몬다.


일반적으로 체육관의 링은 넓지 않다. 헬스기구를 놓거나 쉐도우 복싱을 할 공간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웃복서에게 불리하다. 반면 나 같은 덩치에게 유리하다.


어느새 주엽은 코너에 갇힌다.


위기를 느꼈는지 주엽은 상체를 숙이면서 날카롭게 어퍼를 올린다. 그런데 포인트가 내 얼굴이나 복부가 아닌 사타구니다. 허벅지 상단에 주먹이 꽂힌다.


이거 의도한 건지 아닌지 모르지만 상당히 열 받게 하는 짓이다. 주춤하는 사이에 주엽은 로프를 따라서 등을 보이고 도망친다.


두번 놓쳤다. 다시 코너로 몬다.


‘이게 아닌데, 나는 중학생밖에 안 되는데…….’


그런 목소리가 주엽의 표정에 고여 있다.


이미 주엽이 빠져나가는 길목은 알고 있다. 몸을 웅크릴 때 내 어퍼가 녀석의 턱에 작렬한다.


이건 진짜 다운이다. 비명을 지를 틈이 없다. 한동안 이빨이 흔들릴 것이다.


“끝!”


가슴 속이 후련해지는 고함을 터뜨리고 등을 돌린다. 나는 코너로 돌아가 글러브를 벗는다.


길게 누운 주엽은 천장만 멀뚱하게 바라보기만 한다. 그가 중얼거리던 말이 참 인상 깊다.


“이거 안 되는구나…….”


다행히 체육관에 관장님은 없다.


한코치가 다가와서 주엽의 상태를 살핀다. 이미 그 동안 주엽의 태도를 알기에 별 다른 말이 없다.


아무 일도 없는 듯 나는 수건으로 헤드기어 안쪽의 땀을 닦는다. 글러브도 링 사이드에 열을 맞춰 가지런히 놓는다.


그 동안 주엽은 엉거주춤 앉아 한코치와 뭐라고 대화를 나눈다. 아마 제대로 펀치를 맞은 적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일부러 한코치를 향해 크게 말한다.


“이 자식은 살살하자고 해놓고, 지가 칠 때는 죽을 힘을 다해서 펀치를 날려.”


고개를 푹 숙인 주엽을 보자 왠지 미안해진다. 아무래도 중학생인데.


“너는 맞는 법부터 배워. 안 맞고 실력이 느는 복서는 없어.”


대답은 없다. 나도 운동할 기분이 나지 않는다.


링 사이드에서 로프에 등을 기대고 앉아 쉬는데, 주엽이 헬스 기구 쪽으로 간다.


레그컬 익스텐션에 앉아 운동 중량을 가장 하단에 놓는다. 85kg이다. 무릎을 뻗으며 이를 악물고 들어 올린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묵직하게 철컹거리는 소리가 계속 이어진다. 나에게 시위라도 하는 걸까. 확실히 성질은 있는 녀석이다.


저런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난감하다. 바라보는 내 기분도 좋은 편은 아니다.


주엽은 다음에 스파링을 하자는 말도 없이 슬리퍼 끌면서 체육관을 나가버린다.


나는 씁쓸하게 손에 감은 핸드립을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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