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관으로 온 중학생은 자기끼리 스파링을 하기도 한다. 몇달 동안 미트를 받은 경력은 있어서 자세가 나온다.
관장님의 노하우라고 할 수 있는데, 학생이 기본기를 마치면 꼭 기술 하나만 집중적으로 지도한다. 체육관을 나설 때까지 그것만 반복해서 연습을 시킨다.
이를 테면, 키가 작은 아이에게는 위빙으로 흔들면서 상대방에게 다가가 양훅을 치는 동작만 가르친다.
아마 부모님이나 학교 친구에게 그 동작을 보여주면 복싱을 잘한다는 칭찬을 받았을 것이다. 부모님은 뿌듯하게 여기면서 다음 달 관원비를 지불하기가 아깝지 않았을 것이고.
신정철 관장님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운동하는 아이를 보고 그에 맞는 기술을 적응시킬 줄 안다. 복싱 경력이 수십 년인 관장님은 한눈에 알아본다.
껄렁한 학생이 입관한다. 항상 붉은색 후드티를 입고 다닌다. 불을 뿜는 용이 등에 그려져 있다. 아마 강렬한 그림 때문에 체육관에 올 때마다 일부러 입는 것 같다. 강하게 보이려고.
연한 곱슬머리인데, 머리카락이 귀를 덮는다. 갈퀴손으로 머리카락을 넘기는 모습은 꼭 연예인 같다. 요즘 중학교는 두발 단속을 하지 않나?
하는 짓은 망나니다. 곱슬머리는 체육관으로 들어오면 우선 샌드백을 걷어찬다. 앞발차기가 먼저이고, 연속으로 돌려차기를 사정없이 넣는다. 샌드백을 차는 이유는 다른 게 없다. 그냥 재미있으니까.
주위에서 쳐다보건 말건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어른들이 뭐라고 나무라지 못한 채 눈치만 본다.
다른 친구들은 한코치에게 미트를 받는 동안 곱슬머리는 체육관을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낄낄거리며 놀다가 돌아간다. 글러브는 끼지도 않고, 손에 붕대조차 감지 않는다.
그와 항상 같이 어울리는 비슷한 부류의 친구가 있다. 얼굴이 곰보 자국이 심하게 난 녀석인데, 항상 두 녀석이 체육관의 물을 흐리면서 휘젓고 다닌다.
그런데 이 곰보가 물건이다.
“나랑 스파링 해볼까?”
곰보가 같은 학년에게 제안하면서 글러브를 끼기에 나는 호기심을 갖고 지켜본다.
파이팅벨이 울리는 동시에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다가간다. 상대방의 펀치를 잽싸게 피하더니 곧장 자기 주먹을 꽂는다. 번개다. 저런 순발력은 처음 봤다. 전후좌우 몸놀림이 용수철처럼 튄다. 절대로 일반인에게 없는 재능이다.
아이들끼리 20kg 원판 바벨을 등에 얹고 누가 팔굽혀펴기를 많이 하는가 시합한 적이 있다. 단연 곰보가 1등이다. 쉬지 않고 40회를 해낸다.
대부분 아이들이 억지로 20회 정도를 하고, 곱슬머리는 10회도 미치지 못한 채 엎어진다.
가만히 보면 운동 신경이 좋은 곰보가 옆에 있으면 곱슬머리가 더 까분다. 곱슬머리 혼자 있으면 심하게 나대지 않는다.
저 자식 운동 선수로 키우면 뭔가 될 것 같은데, 곰보에게 이런 기대를 거는 건 나만 아니다. 관장님도 관심을 갖지만 곰보는 흥미가 없다. 부모님이 보내줬으니 놀러 나오는 것이다.
제대로 운동을 하려면 미래의 꿈을 인식해야 하는데 아직 미숙한 시기이다. 분명히 재능이 있는데, 답답하기만 하다.
복싱으로 실업팀에 들어가면 연봉을 꽤 받는다. 만일 메달을 따면 그에 따른 상여금이 엄청나다.
은퇴 후 메달 타이틀 걸고 체육관을 차리면 먹고 살기에 지장은 없다.
하긴 운동해서 꼭 그렇게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때리는 방법을 타고 나는 녀석이 있다. 주먹을 밀면서 치는 게 아니라 순간적으로 타격 포인트가 빵빵 터진다. 과장되게 말하면 샌드백이 움푹 들어갈 정도로 친다.
아무래도 성장 과정에서 가족이나 친구 등 주위 환경이 폭력에 노출된 경우가 아닌가 싶어 안타깝기도 하다.
공격의 다른 요인은 배짱이 커야 한다. 대범한 성격, 이것도 타고난 경우가 많다.
곰보는 이런 요소를 충분히 갖고 있었다.
복싱 기술을 가르쳐주면 빨리 배우고, 심지어는 안 알려준 기술도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기가 고민해서 알아낸다. 거기에 더해서 가르쳐 준 이상을 개발한다.
관장님이 탐내지 않을 수 없다.
곱슬머리가 샌드백을 걷어차자, 곰보는 마치 무술 고수처럼 공중 회전차기를 한다.
약 3m 거리에서 붕 뜨더니 정확하게 돌려차기를 성공시킨다. 대단한 운동 신경이다.
이에 자극을 받은 곱슬머리가 따라 한다. 공중에서 회전도 못 마친 채 헛발질이다.
곰보는 한번 더 성공시킨다. 또 자극을 받은 곱슬머리가 따라 하지만 발은 허공에서 돈 채 자빠진다.
그렇지 않아도 체육관이 좁은데, 그들의 장난으로 인해 눈썹을 찡그리는 관원이 내 눈에 들어온다.
결국 참다못한 내가 소리친다.
“야! 너희 이리로 와 봐.”
뭐라고 야단을 치려는데, 곰보가 금방 반응한다.
“죄송합니다. 가자!”
곧장 링을 획 돌아가더니 나에게서 멀어진다. 아예 상대하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헛웃음만 터진다. 싸가지가 없는 게 보통이 아니다.
요즘 아이들이 그렇지 뭐 나는 쓴맛을 삼킨다.
운동을 마친 뒤 사물함에 글러브와 신발을 넣는데 문득 묘한 시선을 느낀다.
돌아보니 곱슬머리가 지켜보다가 황급히 돌아서서 체육관 구석으로 간다. 거기에는 곰보가 기다리고 있다. 꺼림칙하다.
혹시 내 사물함에 죽은 쥐나 개구리는 넣는 건 아니겠지, 요즘 일진이 그런 식으로 찐따를 괴롭힌다던데, 요망한 추측이 자꾸 떠오른다. 아이가 잘못을 저질러도 보복이 두려워서 함부로 야단칠 수 없는 사회, 언젠가 뉴스 앵커가 한 말이 떠오른다.
하긴 체육관에 CCTV가 설치되어 그런 짓을 저지르지는 않겠지만.
드디어 황당한 일이 벌어진다.
운동하는 도중에 어떤 연락이 올지 모른다. 나는 항상 휴대폰을 주위에 둔다.
샌드백을 칠 때 아령 거치대 위에 올려놓는데, 문득 돌아보니 그게 없어졌다. 분명히 항상 두던 그 자리인데, 누군가 갖고 갔고, 나는 범인을 쉽게 짐작한다.
출입문을 나서는 곱슬머리가 내 눈에 걸린다. 등에 용그림이 선명해진다.
“너, 거기 잠깐만 서!”
곱슬머리가 후다닥 나서려는데 마침 체육관으로 들어오는 관원에 밀려서 지체된다.
그 행동에서 나는 범행을 확신한다. 얼른 달려가서 그 녀석의 어깨를 잡는다. 체육관을 나가 계단으로 뛰어 내려가면 잡을 수 없다. 그 사실을 떠올리면 아찔하다.
지갑 겸용 휴대폰 케이스라 카드도 들어 있다. 골치 아픈 문제로 번질 수 있다.
한코치가 무슨 일이냐는 듯 다가온다.
내 손을 뿌리치는 곱슬머리를 벽으로 밀어붙인다. 힘으로는 내가 몇단계 위다. 단단히 고정시킨 뒤 주머니를 더듬는다. 후드티 주머니에서 내 휴대폰이 나온다.
“이게 왜 네 주머니에 있어?”
“누가 잃어버린 줄 알고 주인 찾아주려고요.”
“왜 밖으로 나가려고 했어?”
“오줌이 급해서 화장실 갔다가 코치님한테 말하려고 했어요.”
곧장곧장 대답이 나온다. 도대체 이런 놈들의 머리에는 뭐가 들어 있는 걸까.
욱, 가슴으로 뭔가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른다. 내가 애들이랑 스파링을 해주며 편하게 대하니까 만만하게 보이나.
“이게 어른을 바보로 알아?”
나는 멱살을 잡고 흔든다. 곱슬머리의 등이 벽에 쾅쾅 부딪친다.
곱슬머리는 내 눈을 피한다. 대신 어딘가 똑바로 응시하면서 입술을 실룩거리며 비튼다. 기분이 나쁘다는 반응이다.
더 열받는다. 허리를 잡고 역도 선수처럼 번쩍 들어 올렸다가 바닥에 패대기를 칠 수 없다. 가능하면 그렇게 하고 싶다, 진심으로.
한코치가 중간이 끼어들어서 말린다.
“체육관에서 일어난 일이니 제가 해결할게요.”
해결은 무슨……, 곱슬머리는 계속 주인을 찾아주려고 했다고 우긴다.
경찰을 부를 거야, 학교에 연락한다, CCTV도 있어, 너 계속 이러면 교도소 간다, 협박까지 해보지만 곱슬머리는 자기가 억울하니 오히려 신고 하라고 큰소리 친다. 관장님은 이미 퇴근한 상황이다.
결국 남의 물건을 함부로 만진 것에 대한 잘못은 인정하면서 나에게 사과하고 마무리 된다. 더 이상 방법은 없다. 정말 경찰을 불러서 소년원에 보낼 수도 없고.
곱슬머리와 곰보가 나란히 체육관을 나서면서 자기끼리 시시덕거린다. 이거 정말 미칠 노릇이다.
더 황당한 일은 그후 벌어진다.
샤워하는데 밖이 소란스럽다. 아주머니가 고함을 지른다. 무슨 일인지 가만히 들어보니 자기 아들을 도둑놈으로 몰아붙이는 체육관에 더 이상 자식을 보내고 싶지 않다고 한다. 내 얘기다.
곱슬머리 엄마가 온 것이다. 나는 얼른 옷을 입고 탈의실에서 나온다.
가관이다. 한코치가 어쩔 줄 모르고 서 있다. 젊은 아주머니가 뭔가 달라는 듯 손을 내밀고, 곱슬머리는 그것 보라는 태도로 당당하다.
“남은 비용 환불해주세요.”
“규정상 이미 내신 관원비는 환불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남은 기간을 팔든지 하셔야 해요.”
한코치의 변명은 궁색하다.
“애를 도둑 취급하는 이따위 체육관에 내 아들 보내고 싶지 않으니까 빨리 돌려주세요. 저기 문 앞에 붙은 관장님 전화번호로 연락하면 되나요?”
내가 휴대폰 주인이라고 나선다. 그때 아주머니의 기세가 주춤거리는 것을 느낀다.
“아주머니 아들이요. 내 휴대폰을 도둑질하려다가 걸렸어요. 그래서 내가 멱살을 잡고 밀었어요.”
“도둑질이라뇨. 잃어버린 휴대폰을 찾아주려고 했다는데요.”
“그런 애가 왜 남의 휴대폰을 들고 밖으로 나가려고 합니까?”
“화장실 갔다가 코치한테 주려고 그랬다잖아요.”
“그게 말이 된다고 보세요?”
아주머니가 고개를 돌리더니 곱슬머리를 똑바로 바라본다.
“너 휴대폰 주인 찾아주려고 그랬어? 안 그랬어?”
“주인 찾아주려고 그랬어요.”
갈퀴손으로 여유있게 머리카락을 넘기는 모습이 너무 얄밉다.
“봐요. 얘가 주인 찾아주려고 그랬다잖아요.”
아주머니는 성질을 울컥 내다가 뒷말은 나에게만 들리도록 조용하게 얼버무린다.
“그깟 휴대폰이 얼마나 된다고 애를 밀어?”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저런 어머니 밑에서 컸으니…… 제대로 인성 교육이 될 리가 없다.
아주머니는 나와 대화를 더 확대시키지 않는다. 자기도 아들이 도둑질을 시도한 걸 안다. 내가 경찰서나 학교에 이 사건을 알리면 난처해진다.
나를 외면한 채 관원비 돌려달라고 한코치만 볶는다. 자식이 도둑놈으로 낙인이 찍혔으니 체육관에서 얼굴 들고 다닐 수 없는 것이고, 미리 낸 관원비나 건져보자고 달려온 것 같다.
사건의 발단이 된 내가 한코치를 대하기가 민망할 정도다.
결국 관장님이 체육관에 있을 때 다시 찾아오기로 하고, 아주머니는 곱슬머리의 손을 잡고 나간다. 저런 집구석이니, 저런 애가 나오지.
관원비를 돌려받았는지 모르지만 곱슬머리는 체육관에 나오지 않는다.
나는 잘 된 일이라고 후련하게 여긴다. 그런 자식이 운동을 해봐야 남에게 피해만 줄 것이다.
물론 관장님이나 한 코치에게는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어쨌거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관원이 체육관에서 나갔으니 내 책임도 아예 없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후 관장님과 인사를 나눌 때마다 은근히 눈치가 보인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곱슬머리와 같이 다니던 곰보도 발길을 끊는다.
관장님이 따로 전화를 걸어 부모님께 운동을 권하지만 아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절을 당한다.
“좋은 선수로 만들 수 있었는데…….”
관장님이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이다. 건성으로 체육관에 나오기는 했어도 어떤 계기로 복싱에 맛을 들이면 분명히 성취할 수 있을 텐데.
복싱 세계 챔피언이 나올 수 있고, 이종 격투기로 넘어가 UFC에 진출할 수 있고. 정말 탐나는 재능이 피워보지도 못한 채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어쩌면 이게 나의 복싱 생활 중에서 가장 큰 아쉬움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