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스파링

by 은빛바다

관장님이 손짓으로 나를 부른다. 옆에 선 여자를 소개한다. 뽀글머리 파마에 펑퍼짐한 몸매, 칙칙한 피부를 감추려는 진한 화장, 전형적인 아주머니다.


“지난 주에 등록했는데 너랑 동갑이야. 친구처럼 지내면 되겠네.”


동갑이라 그런지 아무 대화도 나누지 않았는데 공감이 형성되는 것 같다. 나도 역시 배 나오고 정수리가 벗겨지는 전형적인 아저씨이니까.


같이 벽거울을 바라보는데 왠지 칙칙하다. 체육관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아저씨랑 아줌마니까.


첫날은 서로 인사만 나눈다. 천천히 친해지면 될 것이다.


문제는 몇주 뒤에 일어난다. 트레이닝복을 입은 아주머니가 체육관에 들어왔는데 관장님이 없다. 또 어딘가에서 농담 따먹기나 하는 것 같다.


“형님, 저 여성 회원님이랑 인사를 나눴다면서요. 훈련 좀 시켜주세요. 제가 좀 바빠서요.”


한코치가 슬쩍 떠넘긴다.


별로 내키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거절할 수 없다.


이 체육관에 흥해봐야 나에게 돌아오는 거 전혀 없는데 참 쓸데없는 오지랖이다.


나는 그녀에게 묻는다.


“혹시 미트 받은 적 있어요?”


“네, 중간에 그만 뒀어요. 너무 힘들어서요.”


곧장 성향을 파악한다. 여성은 운동시키는 방법이 다르다. 지시를 내리면 안 따라온다. 같이 해줘야 간신히 따라 한다.


“글러브 끼고 이쪽으로 오세요. 이제부터 샌드백을 칠 거예요. 길게 벨이 울리면 3분 동안 죽을 힘을 다해서 치세요. 짧게 벨이 울리면 30초 동안 쉽니다. 그렇게 3세트를 할 거예요. 제가 반대쪽에서 같이 칠 텐데 만일 샌드백에 그쪽으로 계속 기울어지면 1세트를 더 연장합니다.”


아주머니는 벨소리에 맞춰 샌드백을 치지만 펀치력이 약하다. 샌드백은 꼼짝도 않는다.


2분이 되기도 전에 지친다. 예상했던 일이다. 아주머니의 팔이 늘어지려고 하자 나는 반대쪽에서 치던 샌드백에 강력한 펀치를 넣는다.


천장에 걸린 쇠사슬에서 끼익 소리를 내며 하단이 기울어진다.


“샌드백 기울어지면 안 돼요. 빨리 치세요. 더 넘어가면 1세트 연장합니다. 발! 발을 떼면서 치세요. 그래야 운동이 됩니다.”


아직 스텝을 배우지 않은 터라 아주머니는 깡충깡충 뛰면서 주먹을 휘두른다. 주먹이 턱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야구 투수 와인드업을 하듯 어깨에 걸쳐 나온다. 그것도 직선이 아니라 변화구다.


나는 잔펀치를 치면서 계속 지켜본다. 아주머니의 힘이 떨어지면 강한 펀치로 샌드백을 치면서 기울어지게 한다.


2세트 도중에 아주머니는 포기 선언을 한다. 나는 들은 척 않고 계속 샌드백을 친다.


“이거 그쪽으로 기울어지면 안 된다니까요. 빨리 치라니까요.”


급기야 아주머니는 두손으로 샌드백을 민다. 트레이닝복 때문에 이마에 송골송골 이슬이 맺히다가 턱을 따라서 흐른다. 체중은 꽤 빠질 것이다.


“아이고, 더 못하겠어요.”


아주머니가 털퍼덕 주저앉는다. 거친 숨소리를 멈추지 않는다.


“이래야 운동이 되죠. 일어서세요. 1세트 더 남았어요.”


그때 나는 묘한 시선을 느낀다.


벽거울을 보며 아령 운동을 하는 30대 청년이다. 체육관 운동복이 아니라 파란색 나시티를 입고 있다. 밝은 색이라 시원하게 보인다.


요즘 눈에 띄기 시작한 신입이다. 정말 의외인 것이 곁눈질로 보면서 웃고 있다. 한쪽 입끝이 살짝 올라간다.


‘설마 비웃음인가?’


예민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 신입이 감히 나를 비웃으리라,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출입문이 열리면서 중학생들이 우르르 들어온다. 가장 나중에 관장님이 뒤따라온다. 승강기에서 만난 모양이다.


금방 체육관이 어수선해진다. 사방에서 던지는 인사를 받으면서 관장님이 다가온다.


“운동 많이 했어요? 어때요? 이 친구가 잘 지도를 해주던가요?”


그제야 나는 아주머니에게서 벗어난다. 남을 도와주는 건 여기까지다. 내 운동을 마쳐야 한다.


중학생들은 변함이 없다. 각자 편한 자리에 누워 스마트폰과 면접을 본다.


먼저 인사하는 녀석은 드물다. 간혹 스파링을 해주는 녀석이 쪼르르 달려와 꾸벅거린다.


올스타 복싱클럽의 서코치라면 다 집합시켜서 체력훈련이라는 구실로 기합을 줬을 것이다.


정수기에서 물을 마시는데 관장님이 부른다. 아마 아주머니가 덕분에 운동 열심히 했다고 나에 대하여 칭찬을 한 모양이다.


기분이 좋아진 관장님이 파란색 나시를 입은 청년을 가리킨다.


“쟤 신입인데 스파링 좀 해 봐.”


이게 바둑으로 치면 패착으로 유도하는 악수가 된다.


복싱 체육관에서 지도 스파링은 흔히 있는 일이다. 경력자는 당연히 해줘야 한다. 나도 이 체육관으로 넘어와서 학생을 상대로 많이 해줬다.


그때까지만 해도 파란색 나시가 어떤 인간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나는 체육관에서 공용으로 사용하는 헤드기어와 글러브를 챙겨준다.


“혹시 마우스피스는 있어요?”


“없는데요.”


“곤란한데……. 이빨이 나갈 수 있거든요.”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파란색 나시를 초보자로 인식하고 있었다.


“턱 가리개 말고, 안면 가리개 헤드기어를 쓰죠. 3라운드 하고요.”


이 순간, 상대를 파악했어야 한다. 의외로 전문용어를 쓰는데 경력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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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장 착용을 마치자 가볍게 펀치를 던지기로 하고, 파이팅 벨에 맞춰 글러브 터치를 한다.


파란색 나시는 주먹이 잘 나오지 않는다. 팔을 뻗어야 하는데 중간에서 멈추고 돌아간다. 완전히 초보라고 여긴 나는 지도까지 해준다.


“팔을 쭉 뻗으세요. 헤드기어에 살짝 닿는 느낌으로 치세요. 자신감 갖고 툭툭 건드리세요.”


1라운드가 끝났는데 파란색 나시는 말이 없다. 다른 곳을 바라보면서 외면한다. 왠지 싸하다.


2라운드에 들어서면서 내 기술을 연습한다. 위빙으로 좌우를 흔들어주고 바디를 넣거나, 파란색 나시가 주먹을 던질 때 피하고 치는 쓱박을 시험해 본다.


일부러 주먹을 느리게 휘두르지만 이외로 파란색 나시는 잘 막아낸다. 뭐, 운동 신경이 좋구나, 그 정도로 여겼을 뿐이다.


그런데 파란색 나시는 내 주먹을 똑같이 따라 한다. 안면에 원투를 넣으면 똑같이 내 안면에 원투를 넣고, 바디를 치면 똑같이 내 바디를 친다. 당황스럽다. 주먹이 빠르다. 이거 초보자가 아닌 것 같다.


요즘 내가 개발하는 기술이 있다. 잽을 넣으면서 상대의 손목을 잡고 끌어내린다. 그 빈틈으로 라이트 스트레이트를 찌르는 것이다. 슈퍼 미들급 챔피언 카넬로 알바레스가 잘 쓰는 기술이다. 유튜브에서 봤다.


연속으로 잽을 넣다가 파란색 나시의 가드를 끌어내리고 라이트 스트레이트를 넣는다. 물론 얼굴까지는 닿지 않는다. 만일 닿았으면 완벽한 클린이다.


“에이 씨!”


분명히 들었다. 욕설은 아니지만 심한 짜증을 내며 파란색 나시는 이번에도 나와 똑같은 기술을 사용하려고 한다. 왼손으로 내 팔을 끌어내리려고 하지만 나는 단단한 완력으로 버틴다. 그제야 뭔가 감지한다.


2라운드를 마치고 쉬는 시간, 서로 돌아보지 않는다. 서서히 불이 타오르는 중이다. 남자의 자존심이 걸렸다. 이제 누가 먼저 그만두자고 할 수도 없다.


3라운드, 스파링이 과격해질 것 같다. 나는 양손을 내밀고 진정하자는 사인을 보내려다 그만둔다. 먼저 약하게 보이기가 싫다.


파란색 나시는 압박을 시도한다. 내가 거리를 벌리려고 그의 글러브에 원투를 넣는다. 그러자 마치 약을 올리듯 똑같이 내 가드에 원투를 꽂는다.


나는 페인팅을 준 뒤 연속으로 양훅을 넣는다. 파란색 나시도 똑같이 양훅을 넣는다. 분명히 다른 체육관에 다닌 경력자다.


거기에서 꼭지가 돈다. 1라운드에서 이렇게 저렇게 치라고 지도하는 나를 얼마나 같잖게 봤을까. 이 자식이 그렇게 방심을 시키면서 나를 기만했구나.


급발진이 일어난다. 갑자기 앞이 하얗게 보이더니 내가 무조건 주먹을 휘두르고 있다. 방어는 없다. 파란색 나시도 똑같이 대응한다. 개싸움이다. 서로 이성을 놓은 것이다. 제대로 주먹이 맞을 리가 없다.


아주머니에게 헬스를 지도해주던 관장님이 후다닥 달려온다. 놀란 아주머니의 얼굴이 선명해진다.


그 와중에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낀다. 링 주위에서 중학생이 바라보는 중이다. 거의 내가 지도 스파링을 해 준 아이들이다. 내 나이가 시궁창에 던져진 것을 깨닫는다.


“야, 그만해!”


관장님의 고함에 나는 휘두르던 주먹을 멈추고 팔을 내린다. 링 주변에서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가 부담스럽다. 더 이상 수치스럽고 싶지 않다.


체육관에서 관장님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아무리 중학생이 장난을 치더라도 결국 그의 지시를 따른다.


순간, 방어 태세를 갖추지 않은 나에게, 관장님의 명령을 어긴 파란색 나시의 원투가 꽂힌다.


턱은 급소다. 제대로 맞으면 정신을 잃는다. 정확하게 노린 것이다. 이건 미친 짓이다. 아무 방어 자세도 갖추지 않는 상대를, 자기 성질 이기지 못해서 죽일 기세로 주먹을 날린 것이다.


나는 길거리에서 칼 들고 돈을 갈취하는 깡패가 아니다. 그런 상황이라면 자기 방어를 위해서라도 폭력을 쓸 수 있지만, 링에서 무방비 상대에게 주먹을 날릴 수 없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눈동자가 커지고 입을 벌린 채 놀라는 관장님이 슬로비디오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는 뒷걸음질을 두 번만 했을 뿐 허리를 세우고 버틴다. 역시 맷집은 복싱 체육관에서 최고다. 진짜 영화의 한 장면이라면 풀린 눈으로 다운을 당해야 한다.


파란색 나시는 60kg~70kg로 예상하는데, 나는 90kg가 넘는다. 체급부터 맞지 않는 스파링이다.


통증보다는 이 많은 관원 앞에서 맞았다는 사실이 창피하다.


더 이상 자존심을 세우며 투닥거리고 싶지 않다. 만일 이 중학생들이 자기 아버지나 삼촌이 이렇게 싸우는 걸 봤으면 어떻게 여길까.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다.


관장님이 뭐라고 야단을 치는데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죄송하다고, 스파링을 하다 보면 과열되는 경우가 있으니 이해해 달라는 식으로 변명한다.


하긴 자기가 주선한 스파링이니 관장님도 할 말이 없다.


파란색 나시가 다가오자 내가 먼저 손을 내민다. 무엇보다 관원이 지켜보는데 화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우선이다. 거기에서 관장님이 누그러진다.


“운동 해봤죠?”


내가 묻자, 파란색 나시가 잠시 뜸을 들인다.


“무에타이 2년 했어요.”


미리 밝히지 않은 이유를 모르겠다. 오히려 잘못은 아니지 않느냐는 태도다. 어차피 개싸움이 될 스파링이었다.


그 대답을 듣고 처음 든 생각은, 무에타이 배운 인간은 전부 성격이 이 모양인가?


관장님도 말문이 막힌다.


“어쩐지…… 치는 방법을 알더라. 왜……?”


나는 더 묻지 않는다.


아주머니와 장난스럽게 샌드백을 치는 나를 하찮게 봤을 테고, 그래서 마우스피스도 필요 없을 거라고 여겼으며, 마치 만화처럼 초보자 흉내를 내며 덩치 큰 경력자를 KO 시키거나 압도하는 장면을 연출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마지막에 후려친 펀치가 회심의 일격이었을 테고…….


정작 피해 당하고 열 받은 건 난데, 그런 상황에서 화해의 손을 먼저 내민 것도 난데, 파란색 나시는 마치 시비를 걸 듯이 내 앞에서 샌드백을 요란하게 친다.


지 성질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다. 저런 인간은 운동하면 안 되는데……


그래도 체육관을 나설 때 그와 악수를 나눈다. 관장님 때문이다. 관원이 떨어지면 안 되니까.


요즘 젊은 세대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이 오지랖.


따지고 보면 지난 번에 곱슬머리와 곰보도 나 때문에 체육관에서 나간 거 아닌가.




사흘이 지났는데 턱이 욱신거리고 머리가 울린다.


파란색 나시가 얼마나 악을 쓰면서 주먹을 휘둘렀는지 알 것 같다. 어쩌면 마지막에 주먹을 더 맞췄으니 자신이 이겼다고 자위할지도 모르겠다.


조만간 복싱을 접어야 할 것 같다.


이제 나도 링에서 치고받기에는 적은 나이가 아니다. 더 이상 중학생과 스파링을 하지 않는다. 어른이 어른처럼 행동해야 하는데, 민망한 짓이다.


사물함의 복싱용품을 바라보며 이제 인생의 한 페이지를 접는 것 같아 쓸쓸하다.


더불어 이 나이 먹고 욱! 하는 내 성격도 다듬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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