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층 전자정보실에서 고함이 터져 나온다. 시원한 목청이 로비까지 울린다. 도서관에서 여간해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어린이 자료실에서 책을 읽던 아이들까지 무슨 일인가 궁금하게 여기면서 로비로 나온다.
소란이 커지자 데스크의 직원까지 일어난다.
내가 손짓으로 앉으라는 신호를 보내며 로비를 가로지른다. 안을 들여다보는 구경꾼을 헤치고 전자정보실로 들어간다.
복싱을 배운 이후로 소란이 벌어지는 곳에 다가가게 된다.
전에도 길거리에서 술 취한 아저씨와 학생이 싸우는데 잘 말리고 각자 돌려보냈다.
사우나에서 아이들이 빽빽거리고 뛰어다니면 내가 나서서 조용히 하라고 큰소리 친다. 아버지가 눈총을 줘도 위축되지 않는다.
복싱을 배우면서 희한하게 그런 배짱이 생긴다,
“아, 알았다니까! 알아서 한다니까 이 아가씨가 자꾸 왜 이래? 내가 여기서 사고 쳤어?”
대머리 아저씨가 신입사원 윤미와 대립 중이다.
도서관 단골이다. 상의는 항상 허름한 트레이닝 복장이다. 도서관 개장에 맞춰 정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퇴장 시간에 나간다.
열람실에서는 온갖 책을 책상에 쌓아둔다. 정년 퇴직자 같다. 직장을 못 구하자 시간 비빌 곳으로 도서관을 선택한 것 같다.
도서관도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 희한한 사건이 꽤 일어난다.
주차 때문에 다툼이 생기고, 노트북이 도난 당한다. 경찰이 와서 CCTV를 돌려보며 추적했지만 범인은 잡을 수 없었다. 야구 모자를 쓴 학생이 자전거를 타고 나갔는데 CCTV가 없는 골목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놓쳤다.
눈에 거슬리는 진상도 많다.
자료실에서 꺼낸 책을 책상에 놓고 사라지는 청년도 있다. 다른 이용자는 앉지도 못하게 만들면서 어디를 가는지 모르겠다.
책은 펼치지는 않은 채 책상에 앉아 막대 사탕을 물고 휴대폰만 하는 중학생도 있다. 가방을 든 아가씨가 빈자리를 찾다가 중학생에게 뭐라 하지도 못한 채 다시 나온다. 복도로 불러서 쥐어박고 싶은 거 간신히 참는다.
도서관 직원으로서는 이 모든 게 스트레스다.
전자정보실 컴퓨터는 하루에 2시간만 사용할 수 있다.
대머리는 2시간을 다 이용하고도 뭔가 할 일이 많은지 컴퓨터에서 떠나지 않는다. 주위를 둘러보다가 일반 사용자가 일어서면 그 자리로 옮겨 앉는다. 그가 남기고 간 시간을 자기가 사용하는 것이다.
예전에도 같은 문제로 도서관 직원과 갈등이 있었는데, 윤미는 신입이라 그 사실을 모르고 있던 것 같다.
전자정보실뿐만 아니라 같은 공간인 정기간행물실에서 자료를 찾던 이용자의 눈동자가 전부 집중되고 있다. 이게 도서관 사서에게는 약점이다. 여기가 오락실이나 유원지는 아니니까.
관장이 알면 한바탕 정신교육에 들어갈 것이다. 제일 두려워하는 건 민원과 인터넷 후기다.
“윤미씨, 무슨 문제야?”
내가 끼어든다. 이런 순간에 내면에서 복서라는 자신감이 단단하다. 꿀리지 않는다.
“당신이 여기 관장이야?”
“제가 관장은 아니고요. 팀장입니다.”
“관장 나오라고 해.”
대머리가 초면에 반말이다. 거리가 딱 알맞다. 잽에 양훅이 들어가면 바닥에 뻗을 것이다.
“이 분이 자꾸 남의 자리에 앉아서…….”
“다른 사람이 이용하고 나가는 거 확인하고 앉잖아. 그게 잘못된 거야?”
말허리를 자르고 불쑥 끼어드는 대머리의 목소리가 더 커진다. 이곳의 약점을 아는 것이다. 소란 때문에 가방 챙겨서 나가는 학생이 눈에 들어온다.
“화장실에 다녀오는 경우도 있잖아요. 개인정보 유출 문제도 있고.”
“뭐야? 내가 이런 짓으로 다른 사람 정보를 빼낸다는 거야? 그거 빼내서 뭐 어쩐다고. 이 아가씨가 말을 이상하게 하네.”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주식 동향을 살피거나 유튜브를 보는 게 아닐까 추측한다. 대머리의 트레이닝 주머니에서 폴더형 휴대폰의 윤곽이 눈에 걸린다. 인터넷을 할 수 없다.
주위의 시선이 부담스럽다. 일단 물러나고 다음 기회에 조치를 취해야 할 것 같다.
진중하게 상담을 해보든지, 아니면 입장 금지를 시킨다든지, 여기에서 쫓겨나면 다른 도서관으로 갈 텐데 블랙리스트라도 만들어야 하나, 도서관에도 경비를 두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게 되는 순간이다.
나는 공손하게 예의를 갖추면서 언질을 준다.
“여기는 도서관이라 큰 소리로 떠들면 다른 이용자에게 피해를 줍니다. 일단 알았으니까 윤미씨는 자기 업무를 보고요. 선생님도 그만 자리로 돌아가는 게 좋겠어요.”
나중에 이 대머리와 따로 만나서 대화를 나누든지 해야 할 것이다.
윤미를 데리고 나오는데 대머리가 뒤에서 부른다.
“어이, 이봐.”
이봐? 내가 네 친구야?
머리 끝으로 열이 올라오는 괴랄한 기분을 느낀다. 나도 모르게 입술을 앙다물면서 돌아본다.
다음으로 대머리가 내뱉는 말이 걸작이다.
“사과해.”
흔히 도서관에서 근무하면 고상할 거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펜대만 굴리는 유약한 선비로 본다.
도서관 사서는 항상 안경을 끼고, 세련되지 않는 외모에, 책 속에서 파묻혀서 영화에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연약하게 인식하는데 굉장한 착각이다.
“저 양반이 해도 해도 사람을 뭘로 보고……. 야! 너 이리로 와!”
일부러 세게 나간다. 누가 쳐다보든 말든, 관장이 들이닥치든, 꼭지가 돌아버리기 직전이다.
나는 지금 대머리를 단번에 조용하게 만들 힘을 숨기고 있다. 만일 링에서 만났으면 함부로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눈을 부라리며 튀어 나가려는 행동을 이번에는 윤미가 막는다. 의외로 악력이 세다.
대머리가 움찔거리며 뒤로 물러선다. 자기도 오버했다고 깨달은 모양이다. 도서관 사서가 의외로 만만하지 않다.
소란이 더 커지자 다른 직원들이 들어와서 말린다. 그들이 어깨를 잡고 허리를 감싸 안으면서 끌고 나가는 동안에도 나는 끝까지 노려본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관장의 귀까지는 들어가지 않은 것 같다. 이거 근태 관리에 들어가서 평점 깎이면 승진에 지장 있다. 어쩔 수 없는 월급쟁이다.
나는 옥상에서 흥분을 가라앉히고, 대머리는 눈치를 살피다가 도서관에서 빠져나간다. 사용자 후기와 댓글이 불안하다.
한동안 그 사건은 직원 사이에 좋은 안주거리가 된다. 윤미와 나는 이전보다 가까운 사이가 된다.
도서관은 식당이 따로 없다.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옆 세무서 식당으로 간다.
원래 도서관도 업체가 들어와 식당을 운영했는데 자율 배식에서 문제가 생겼다. 아직 어린 학생들이 식판에 밥이 넘치도록 담아서 둘이 나눠 먹는 광경을 종종 목격했다. 이익이 남을 수가 없었다.
세무서 식당은 가격이 저렴하지만 식사 인원이 많아 번잡하다. 혼자 식판을 들고 빈자리를 찾던 중에 창가에서 손을 흔드는 윤미를 발견한다.
“팀장님, 여기요.”
같이 온 직원이 식사를 마치고 먼저 일어서자 빈자리가 난다. 나를 확인한 윤미는 식판을 절반 정도 비운 채 대기 중이다.
밥 먹는 도중에 윤미가 말을 건다.
“예전에 전산정보실에서 고마웠어요. 팀장님.”
이런 감사의 표현 부담스럽지만 짜릿하다.
“뭘…… 그 아저씨 이제 안 오지?”
“자기도 낯짝이 있죠. 아마 팀장님이 세게 나가서 그런 것 같아요.”
“만일 도서관이 아니라 길거리에서 붙었으면 가만히 안 뒀을 거야.”
나도 남자이기에 허세가 넘친다. 그게 몸통을 부풀린 복어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윤미가 설핏 비웃는다. 이 친구도 도서관 직원을 찐따로 여기는 걸까.
“싸움도 싫어하시는 분이 왜 그러세요.”
마치 나를 무시하는 것처럼 들린다.
“윤미씨는 평소에 운동하는 거 있어?”
“그냥 이것저것……. 팀장님은요?”
“나 복싱해.”
순식간에 윤미의 얼굴이 굳어버린다.
“그럼 스파링도 하세요?”
“다 해. 몇 년이나 했는데…….”
나는 젓가락을 쥔 채 가드를 잡으면서 어깨를 흔든다. 빈 식판을 들고 지나가는 세무서 직원이 흘깃거린다.
“대단하시네요. 저는 주짓수 했어요.”
깜짝 놀란다. 대머리에게 달려가려는 것을 막을 때 호리호리한 몸에서 악력이 강한 이유를 이제 안다. 가끔 손가락에 파스를 감고 출근해서 의아하게 여겼는데 그 이유가 있다.
“언제부터 했는데?”
“부모님 때문에 어릴 때부터 했어요. 퍼플벨트예요.”
주짓수 등급은 블랙벨트가 가장 상위고, 그 아래가 브라운벨트, 바로 다음이 퍼플벨트다. 내가 알기로는 어느 체육관에서 코치를 맡아도 되는 등급이다.
이십대 중반에 그 정도의 성취면 엄청난 거다.
주짓수는 실적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대회에 나가 트로피를 몇번 들어올려야 승급이 된다.
시비 거는 놈 붙잡아서 무릎 관절을 나무젓가락처럼 부러뜨리는 건 우습다.
“아무도 몰라요. 비밀로 해주세요. 저도 비밀로 할 게요.”
윤미가 입술 사이로 검지 손가락을 스친다.
“그 대머리 아저씨 운이 좋아. 이런 고수를 둘이나 만나고 무사하다니.”
“에이, 체육관 말고 거리에서 일반인을 상대하면 안 되죠. 괜히 잘못 건드렸다가 고소장 날아와요.”
나는 올스타 복싱클럽의 스트리트 파이터 창곤을 떠올린다. 하긴 순간의 욱, 감정으로 경찰서에 가지 말라는 보장이 없지 않던가.
예전에 잠깐 활동하던 산악회의 뒤풀이 자리다. 하도 여자에게 껄떡거리는 회원이 있었다. 아마 등산하는 목적이 그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를 피하느라 여성 회원은 자리를 옮겨 다니거나 먼저 일어섰다.
참다 못한 내가 팔을 뻗어 제지했다. 회원끼리 싫어하는 행동을 그만 두시라고.
“너 뭐야? 뭔데 끼어들어서 잘난 척이야?”
갑자기 그는 앉던 의자를 들어 나를 내려 찍는 시늉을 한다.
여름철이고, 야외에 놓인 플라스틱 파라솔 의자다. 나는 또렷하게 노려보면서 눈을 깜빡거리지도 않는다.
“어구구구~~~~ 이 친구, 많이 취했네.”
느닷없는 행동에 옆 회원에 일어서서 그를 막아선다. 얼버무리는 행동이 과장스럽다. 비틀거리며 의자에 앉은 그가 행동이 지나친 것을 인식했는지 제법 온순해진다.
그때 의자를 젖혀버리고 그의 턱에 주먹을 꽂으면 정당방위가 인정이 되었을까. 다음 사태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을까.
이런 나도 문제다. 갈등이 생기면 주먹으로 해결을 보려고 한다. 자신감이 생겼으니까.
어쩌면 그 사건이 산악회에서 왕따의 계기가 아닌가 의구심이 일어난다. 그는 산악회 부회장이었으니까. 신입이 계급 높은 간부에게 뭐라고 했으니 불경죄 아닌가.
언젠가 노관장이 한 말이 떠오른다. 복싱 배워봐야 사회에서 아무 쓸모가 없고, 사고 치기에 딱 좋다고.
윤미가 숟가락으로 식판을 싹싹 긁는다.
밥알 한톨 남기지 않은 게 아마 그녀의 운동량 때문이 아닐까 짐작한다. 주짓수를 배우는 사실을 알자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연관을 짓게 된다.
“그런데요, 팀장님.”
신중한 의견을 꺼낼 듯 윤미의 목소리가 낮아진다. 무슨 말을 하려고?
나는 고개를 들어서 그녀를 마주 본다.
“그 아저씨도 고수 아니었을까요? 태권도나 유도를 배운 선수 출신일지도 모르고요.”
피식, 웃음이 터진다. 늘 입고 다니는 트레이닝복을 떠올리면 그럴 가능성이 없지는 않을 것 같다.
“만일 제대로 운동을 배웠으면 그렇게 사람을 깔보지 않아. 혹시 모르지만.”
“그렇죠? 세상에 숨은 고수가 얼마나 많은데요.”
만에 하나 그럴 수도 있겠다. 조금 운동했다고 까불다가 역으로 당할 수 있는, 항상 세상은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
윤미가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먼저 가겠다고 일어선다. 식당에 꽉 찼다. 얼른 자리를 비켜줘야 한다. 나는 손사래를 친다.
식기를 반납하고 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평소와 달리 골격이 튼튼하게 보인다. 왠지 든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