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맥주 한잔

by 은빛바다


진태는 군복무를 잘 마쳤다. 복학해서 학교 생활을 하는 중이다. 한동안 적응 안 된다며 난감해한다.


집으로 들어가면 진태가 자기 방에서 나와 반긴다.


“다녀오셨어요.”


인사할 때마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 하지만, 20대 중반이 된 아들을 바라보기만 해도 뿌듯하다.


마냥 살갑게 지내는 편은 아니다. 남자끼리 조잘조잘 수다를 떨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일반적인 아버지와 아들 사이보다 가깝다고 여긴다. 사실 그렇게 된 계기가 있다.


중학교 시절, 무슨 일인가 아내가 외출한 오후였다. 공휴일이라 한가롭게 소파에 앉아 TV 채널을 돌리는 중에 진태가 다가온다.


“아버지, 할 말이 있는데요…….”


왠지 심각하다. 사춘기 지나면서 친구와 바깥으로만 돌던 시기라 대화를 나눌 기회조차 없다.


나는 속으로 반기면서 TV를 끄고 자세를 바로잡는다. 기껏해야 친구 문제나 성 상담 고민이겠지 하면서 가볍게 여기던 나는 경악하고야 만다.


진태는 화상 채팅에 접속했다. 음란물 사이트도 아니고 세계 어느 사람이든 얼굴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는 평범한 곳이다.


한국 여자가 혼자 있는 방으로 들어간다. 이해한다. 성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나이다.


예쁜 누나가 손을 흔들면서 반갑게 맞이한다. 가슴이 엄청 크다.


“이름이 뭐니? 어느 학교에 다니니?”


진태는 순진하게 곧이 곧대로 대답을 해준다.


누나가 제안한다. 네가 알몸을 보여주면 자기도 옷을 벗겼다고.


순진한 진태는 카메라 앞에서 팬티까지 내린다. 완전히 알몸이 되자 누나는 방을 나가버린다.


이틀 뒤 메일이 온다. 진태의 알몸 사진 파일이 들어있다.


네가 벌거벗은 사진을 학교에 뿌릴 거라고 협박한다. 그걸 원하지 않으면 돈을 보내라고. 이 사진은 평생 너를 따라다닐 거라고.


일단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한다. 화를 내거나 다그치면 진태의 자존감은 더 떨어질 것이다.


차근차근 정황을 다 들은 뒤 나는 고맙다고 대답한다. 아빠를 믿고 이런 얘기를 해줘서…….


진태가 끄윽끄윽 눈물을 흘리는데, 나는 꽉 안아준다. 내가 정말 아빠가 된 것 같다. 정말 사랑한다, 아들아. 네가 무슨 짓을 하든지 지켜줄 거야.


사이트 확인하고, 경찰에 신고하고, 사진을 유포하지 못하게 해주는 단체에게 의뢰해서 해결한다.


적지 않은 돈이 들었지만 이 모든 게 엄마에게는 비밀이다.


비밀을 지킨 아들과 나 사이는 돈독해진다.


내 생명과 바꿀 수 있는 아들이다. 만일 강도가 인질로 잡으면서 둘 중에 한 명은 죽어야 한다고 할 때 나는 서슴없이 내 목숨을 내놓을 수 있다.


어쩌면 그런 계기로 아들과 가까워지게 해준 그 사이트의 누나가 고맙기도 하다.




진태의 방문을 두드리면서 나는 제안한다.


“아빠랑 맥주 한잔 할래?”


“치킨 시킬까요? 먹고 싶은데.”


치킨사진.jpg


아내는 부자간에 잘 마시라고 하면서 먼저 안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한다.


주방 식탁에 앉아 진태와 맥주잔을 부딪친다.


“복싱 하는 거 괜찮으세요? 저는 오래 못 갈 줄 알았어요.”


“좋은 운동이야. 너도 해 봐. 체육관 관장님도 엉뚱하지만 괜찮아.”


“어때요? 견자단이 된 것 같아요?”


우리 시대의 홍콩 스타는 성룡과 주윤발이다. 이연걸은 나중에 취급했다. 요즘 견자단도 한물 간 것 같은데, 세대차는 어쩔 수 없다.


“자신감이 붙더라. 이제 문신 새기고 허세 떠는 인간이 가소롭게 보이더라. 맞장 뜨면 내가 충분히 이길 수 있겠더라.”


“대단하시네요.”


다시 맥주잔을 부딪친다. 짠!


“제가 갑자기 군대 갔잖아요. 사실 이유가 있어요.”


어라? 이건 무슨 소리인가?


“죄송해요. 당시에는 말씀을 드리기가 어려웠어요. 엄마는 알아요.”


알몸 사진 유포를 막아준 나에게 어려운 얘기라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신입생 시절, 첫눈에 반한 동기가 있었다. 잘 어울렸다. 한강변에서 데이트를 하는데 껄렁하게 시비를 거는 청년들이 지나간다.


“어, 그림 좋네. 깔치 반반하네.”


그냥 지나치려는데, 몰래 따라 오더니 으슥한 굴다리에서 불러세운다.


“같이 놀자구. 둘만 놀면 재미가 없잖아.”


여자친구는 겁을 먹는다. 욕설을 뱉으면서 위협적으로 대하는 그들에게 진태는 지갑을 내밀면서 다 갖고 가라고 제안한다.


하지만 깡패는 누구 거지 취급을 하냐며 진태의 머리를 후려친다.


마침 지나가던 중년 아저씨들이 무슨 짓이냐며 끼어 든다. 그쪽으로 시선이 몰리는 사이에 진태의 등을 친 여자 친구가 날카롭게 외친다.


“뛰어!”


진짜 뭐 빠지게 달렸다. 자존심이고 뭐고 일단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당시에는 경황이 없었지만, 지나고 보니 그만한 수치심이 없다.


학교에 소문이 돈다. 여자 친구와 관계는 점점 멀어진다. 진태는 군대로 도피한다.




“그 여자 친구는 어떻게 지내냐?”


“유학을 떠났대요. 동기에게 물어보면 연락처를 알 수 있는데, 굳이 알고 싶지가 않더라고요. 아버지…….”


갑자기 진태의 목소리가 우울해진다.


“아버지 아들, 한심하죠?”


그 모습이 중학교 시절, 내가 소파에 앉아 TV를 볼 때 심각하게 다가오던 모습과 겹쳐진다.


이런 사실을 지 엄마하고만 공유했다는 점에 화가 난다.


예전에 면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한 말이 이거였다. 진작 호신술 같은 걸 가르쳐야 했다고. 두들겨 맞더라도 최소한 꿀리지는 않은.


나는 말없이 맥주잔을 들어 아들과 부딪친다. 부자간의 단출한 술자리다.


문득 지난 시절 삼계탕 집에서 당했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시원한 맥주에서 쓴맛만 난다.

keyword
월, 수, 금, 토, 일 연재
이전 25화미친 스파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