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로 체육관 배경 음악을 검색하던 관장님이 고개를 들고 반색한다. 출입문으로 들어온 사내가 고개를 꾸벅 숙인다. 푸릇한 청년이다.
“간만이야. 어떻게 지냈어?”
맞이하는 태도가 일반 관원과 다르다. 뭐라고 안부를 나누더니 이번 시장배 복싱 생활체육대회에 대한 의견을 나눈다.
“근무 시간 맞춰서 참가하려고요. 혹시 훈련이나 비상 걸리면 어쩔 수 없지만.”
소방관이다. 운동복으로 갈아입으니 허벅지와 팔뚝 근육이 탄탄하다. 러닝을 뛰고 쉐도우로 몸을 풀더니 관장님에게 미트를 받는다. 한코치는 끼어들지도 못한다.
“잽!”
갑자기 관장님의 목소리만 달라진 게 아니다. 눈빛이 호랑이다. 미트에 날리는 펀치는 대포를 쏘는 것 같다.
다들 운동하던 동작을 멈추고 소방관이 미트 치는 광경만 집중하고 있다.
“투원투, 바디. 아니야, 다시! 그게 아니고. 간을 정확하게 노리려면 왼쪽으로 상체를 확실하게 숙여야지. 왼쪽 다리 꽉 고정시키고 다음에 체중을 실어서 쾅! 그래야 쓰러진다고. 다시!”
주먹이 용수철처럼 팡팡 튀어나간다.
관장님은 소방관의 자세를 꼼꼼하게 고쳐준다. 미트를 잡아주는 시간도 일반 관원에 비해 3배는 되는 것 같다. 러닝에, 샌드백에, 웨이트까지 관장님은 입에서 단내가 날 정로도 훈련을 시킨다.
소방관은 복싱 생활체육대회에 출전해서 5연패 기록을 갖고 있다.
어린 시절에는 축구를 했는데, 부상으로 접고, 소방관 시험에 합격한다.
친구 따라 복싱을 시작했는데 의외로 놀라운 재능을 갖고 있다. 관장님이 직접 지도하면서 생활체육대회에 출전을 시킨다. 축구가 아니라 처음부터 복싱으로 운동을 시작했으면 빛을 봤을 거라고 아쉬워한다.
직장 때문에 꾸준하게 나올 수 없지만, 시간이 나면 항상 관장님에게 훈련을 받는다.
“스파링을 해보지 않을래?”
관장님이 은근한 눈빛을 보낸다. 마땅한 대전 상대가 없어서 그는 다른 체육관에서 스파링 파트너를 만나고 있다.
“죽을 각오가 아니면 상대하지 마세요.”
한코치가 슬쩍 지나치면서 충고인지 협박인지 살 떨리는 말로 긴장시킨다.
나는 경험 삼아 붙어보기로 한다. 과연 어느 정도의 실력인지 궁금하다.
관장님에게 OK 사인을 보내고 글러브를 차는데, 영화 글래디에이터가 떠오른다. 검투장으로 들어가는 막시무스가 이런 기분일까.
소방관은 헤드기어를 차지 않는다. 시야에 불편한 이유도 있지만 미리 관장님의 언질로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아는 것 같다. 그게 기분이 나쁘기보다 그나마 다행스럽다는 안도감이 일어난다.
링으로 들어서자 어느 때보다 긴장된다. 팔과 다리가 빳빳하게 굳어버리는 것 같다. 벌써 린 주위로 관원이 모이고 있다.
공이 울린다. 소방관이 글러브 터치를 하며 공손하게 말한다.
“괜찮으니까 마음대로 치세요.”
여유가 보인다.
슬쩍 반감이 일어난다. 얼마나 뛰어난 실력이면 저런 자신감을 가질까, 나도 한때 올스타 복싱클럽 헤비급 대표였다. 버펄로 복싱 선수와 난전을 치른 경험이 있다.
일단 왼손 잽으로 거리를 잰다. 이상하게 어색하다. 평소와 다르게 속도가 붙지 않는다.
쫄아서 그런가, 팔을 돌리면서 어깨를 풀어 준다. 다시 왼손을 뻗으면서 거리를 잰다. 소방관은 가볍게 패링으로 막는다.
거리를 확인한 뒤 스탭을 뛰면서 잽 잽 투로 들어가는데, 갑자기 내 얼굴에서 번개가 친다.
어? 하는데 나는 엉덩방아를 찧고 있다. 분명히 맞았는데 고통이 없다. 아무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다. 기분도 나쁘지 않다. 다만 정신이 멍하다.
링 주위에서 놀란 관원들의 표정이 생생하다. 코너에서 관장님이 손바닥을 아래로 향하면서 누르는 동작을 반복한다. 소방관에게 수준을 낮춰서 상대하라는 지시다.
고개를 끄덕거리는 그가 다른 은하에서 온 외계인처럼 보인다.
딱 맞아보니까 각성한다. 펀치가, 펀치가 이럴 수도 있는가.
올스타의 혁진이나 서코치를 몇단계 뛰어넘는다. 일반인 강자가 이 정도면 프로 선수나 세계 챔피언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남은 시간 동안 나는 농락당한다. 소방관은 마음만 먹으면 나를 당장 링에서 눕힐 수 있다. 아웃복싱으로 잽만 툭툭 던지다가 스파링이 끝난다.
한참 떨어진 것 같은데 눈을 깜빡이는 사이에 다가와서 턱을 날리는데 도저히 막을 방법이 없다.
“수고하셨습니다.”
소방관이 글러브를 터치하면서 겸손하게 고개를 숙인다. 나는 그보다 더 깊게 허리를 접는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 한코치가 어색하게 입술을 당기며 고개를 젓는다.
“어때? 해보니까.”
관장님이 헤드기어를 벗겨주면서 묻는다.
“확실히 대단하네요.”
“만일 저 친구가 어릴 때부터 복싱했으면 지금쯤 이름을 꽤 날렸을 거야. 너는 그만큼이면 잘한 거야.”
나중에 알았지만 이번 생활체육대회가 지나면 소방관은 프로 테스트를 받을 예정이다. 프로 선수로 활동하지는 않지만 관장님이 그의 재능이 아까워 적극 추천했다.
스파링 뒤에 어색한 여운을 날리기 위해 나는 농담을 던진다.
“만일 제가 어릴 때부터 복싱을 했으면 어땠을까요? 저도 재능이 있을까요?”
관장님이 출입문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입맛을 다신다. 가당치 않은 소리를 들으면 나오는 반응이다. 희한하게도 그 순간 체육관에서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도록 하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글러브 끼고 샌드백 쳤다고 다 복싱 선수가 되는 건 아니야. 물론 일반인보다 낫겠지. 네가 죽도록 훈련한다고 해서 저 친구를 이길 것 같아?”
확실히 상위 클래스를 경험해보니 알 수 있다.
지금껏 고작 몇가지 기술만 배워 우쭐거리는 복싱에만 있었다. 고만고만한 일반인이 모여 마구잡이 휘두르는 주먹이었다. 더 넓은 세계가 있었지만, 다음 날 출근해야 하는 일반인이 그 안으로 들어갈 여유나 각오가 없다.
노관장이 한 말이 떠오른다. 복싱하는 모든 이가 스타가 될 거라고. 그래서 체육관 명칭이 올스타라고.
아니다. 스타는 악착같이 훈련하는 저 소방관 같은, 그 중에서도 하나가 나올까 말까, 그게 진정한 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