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를 누릴 자격

스위스 루체른

by 시옹
7일의 스위스

스위스 루체른(Luzern)은 리기산(Rigi Mountain peak)이라는 산에 오르기 위해 이틀 동안 머물렀던 도시다.

2018년의 유럽 여행은 혼자서 떠난 첫 해외여행이었기에 아직 내가 어떤 여행지를 선호하는지, 내 체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신이 없는 시기였다. 그래서 가이드북을 읽으며 '교과서' 같은 일정을 계획했었다. 시간이 지나며 혼자 여행하는 내공이 쌓이면서 나는 도시보다는 광활한 자연을 보는 것을 더 추구한다는 것을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네 개의 숲 속에 자리 잡은 호수"라는 뜻을 가진 루체른에서는 도시와 자연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유럽 하면 떠오르는 풍경을 그대로 담아놓았다. 카페, 식당, 마트 등 현대인이 필요한 여러 인프라들이 갖춰져 있고, 그러면서도 옛 모습을 그대로 담은 채 낭만을 잃지 않았다. 사람들은 7월의 따사로운 햇볕 아래에서 한가하게 커피 한잔을 마시거나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타고 볼일을 본다. 파란 관광열차조차 도시의 분위기에 그대로 녹아든다.

실용성만 따지지 않는 이런 모습이 오히려 시각적으로 편안함을 준다.




루체른의 시그니처는 바로 이 카펠교다. 1333년에 건조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다리기 때문이다. 다리 안쪽에는 삼각형으로 된 그림 속에 루체른의 역사가 그려져 있다. 여행을 하면서 모든 나라 모든 도시에 대한 모든 정보를 다 알아가긴 어렵겠지만, 이런 허름한 다리가 대체 왜 유명하지?라고 궁금증이 든다면 찾아보는 것도 좋다. 그럼 그 유명한 다리가 나에게도 작은 의미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자세히 보면 더 아름답다는 말은 이럴 때 쓰나 보다.

물론 그렇다고 공부하듯이 억지로 머릿속에 집어넣으려고 하면 가기도 전에 질려버리는 수가 있다. 언제나 내가 원하는 만큼 하는 것이 그것을 오래 사랑하는 방법인 것 같다.




빈사의 사자상은 1790년대 프랑스혁명 당시 루이 16세와 왕가를 호위하며 희생한 스위스 용병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조각상이다. 스위스 하면 '중립의 나라'라는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이들도 전쟁의 아픔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은 사진과 실물이 그다지 다르다고 느껴지지 않았는데, 빈사의 사자상은 창에 찔려 고통스러워하는 사자의 표정이 너무 리얼해서 보고 있는 내 갈비뼈가 시릴 정도였다.




루체른은 도보로도 충분히 다닐 수 있는 작은 도시였다. 사실 나는 유럽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지도를 보고도 길을 못 찾는 전형적인 길치였다. 하지만 혼자 떠나는 여행에서는 지도를 보는 능력이 생존에 필수적이었다. 오늘도, 내일도 가고 싶은 곳이 명확했기에 구글지도를 버릇처럼 계속 보게 되었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방향감각이 생긴 것 같다.

그러니 전국의 모든 길치들이여, 두려워말길! 지도 보는 감각은 후천적으로 충분히 기를 수 있다!




가이드북을 숙달하고 간 나는 모범생처럼 책이 알려주는 모든 스폿을 다 정복하려 했다.

그중 가장 실망스러웠던 관광 스폿은 무제크 성벽이라는 곳이었다. 성벽에 가기 위해 한참을 걸어갔으나 실제로 보니 그저 벽일 뿐이었다. 투어를 신청하지 않고 혼자 떠나는 여행은 내가 가고 싶은 곳만 골라갈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인데.

그래도 성벽을 보기 위해 언덕을 올라간 덕에 루체른을 내려다보는 아름다운 전망을 볼 수 있었다.

22살의 나는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루체른을 하나라도 빼먹고 간다면 후회할까 봐 두려웠나 보다. 미련이 남을까 봐.

하지만 지금 29살의 나는 미련 없는 여행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안다.

미련이 남는 그 면접, 그 인연, 그 시절처럼.




카펠교 다음으로 가볼 만한 목제다리는 슈프로이어교다. 무제크 성벽으로 가이드북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진 나는 슈프로이어교에 갈까 말까 고민했었는데, 가길 정말 잘했다.

다리 자체는 큰 감흥이 없었지만, 늦은 해질녘에 딱 맞춰 다리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노을에 졌은 찬란한 로이스강(Reuss Lake)과 루체른의 전경을 볼 수 있었다.

선물과 같은 풍경이었다. 왜 한국사람들이 유럽여행을 부르짖는지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숙소 근처 공원으로 돌아왔다. 루체른 시민들은 공원에 누워서 휴식을 취하고, 바비큐를 해 먹고, 공차기도 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유럽여행 2주 차, 나도 한달살기하고 싶은 도시가 생겼다. 루체른 로컬들의 여유있는 삶이 너무나 부러웠다.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라서 나도 자연스레 보수적 성향을 가지고 살았던 터라 워킹 홀리데이나 해외 한달살기 등은 솔직히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 또한 나를 가둬두고 있었던 틀이었다는 것을 루체른에서 깨달았다.

이들과 같은 삶을 누릴 자격은 나에게도 있었던 것이다.


Luzern, Switzerland_ Key Word
- Kapellbrücke
- Löwendenkmal
- Museggmauer
- Spreuerbrücke
- Ufschötti Luzern
- Rathaus Stadt Luzern
- Jesuitenkirche Luze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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