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뮌헨
4일의 독일
사실 22살이었던 2018년 당시에는 독일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나 인식이 없었다.
일본과 달리 과거에 대해 반성할 줄 아는, 똑부러지면서 깐깐한 나라(?)라는 지극히 일차원적인 관념 외에는 독일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꼭 가보고 싶은 여행지도 없었고, 스위스에서 독일 베를린을 거쳐 체코 프라하로 가기엔 경로가 꽤나 비효율적인 상황이었다. 그럼 왜 독일 뮌헨(München)을 갔는가 하면,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한 달 동안 첫 유럽여행을 하면서 독일을 들리지 않기엔 아쉬웠고, 마침 뮌헨에 대학 선배 S가 교환학생을 가 있었기 때문이다. 선배찬스라고나 할까. 덕분에 뮌헨에 있는 동안은 숙소 걱정 없이 S 선배네 기숙사에서 머물렀다.
선배는 독일에 지낸 몇 달 동안 한국인 티를 꽤나 벗은 것 같았다. 영락없는 관광객인 나와는 표정부터 달랐다.
“마냥 좋지 많은 않아”
못 본 사이 신비로움이 더해진 선배가 동경 어린 나의 눈빛에 대답했다. 해외에 사는 친구들에게 흔히 들은 말이다. 해외살이도 다양한 유형이 있는데, 그중 기약 없는 이민생활과 기간이 정해진 임시 생활은 또 서로 다른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나도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 호주와 캐나다에 어학연수를 간 적이 있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미국, 필리핀, 그리고 말레이시아에 사는 경험을 하게 되지만, 이제 막 혼자 해외여행을 시작한 어린 나에겐 독일어를 하며 뮌헨 대학을 다니는 S 선배는 차원이 다른 아우라를 풍겼다.
스위스에서 늦은 오후에 뮌헨에 도착한 터라, ALDI 마트에서 저녁장을 보고 나니 벌써 해가 저물었다.
뮌헨은 독일의 수도 베를린만큼 볼거리가 다양하고 큰 도시가 아니다. S 선배도 뮌헨에 많은 날을 투자할 필요는 없다고 사전에 미리 당부한 바 있었다.
장바구니를 들고 7월 퀴어 퍼레이드가 한참인 칼스 광장을 걸었다. 광장에 커다란 무지개 깃발을 보니, 대구 동성로 시내에 열렸던 동성애 반대 시위에 부모님과 함께 시위하던 멋모르는 아이가 기억났다. 내 안에 무언가가 부서지는 느낌을 받았었다. 아마 자유, 인권, 존중과 같은 것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의식주와 같은 기본적인 인프라가 갖춰진 나라에 태어난 것도 감사한 일이지만, 인권에 대한 시민의식이 뚜렷한 나라에 사는 것 또한 축복받은 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이런 생각은 20대 후반, 필리핀과 말레이시아와 같은 동남아에 살면서 더욱 굳건해졌다.
터무니없이 저렴한 맥주를 손에 들고 신시청사도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구경하고, 선배와 시시콜콜한 얘기도 하다 보니, 보름 동안 혼자 묵혀왔던 외로움과 답답함이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물론 영국, 프랑스, 스위스에서도 동행을 구하거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많은 추억을 쌓았지만, 원래 나를 알던 사람과 하는 대화는 깊이부터 달랐다.
기숙사에 도착해서는 선배표 저녁 요리 한상이 펼쳐졌다. 튼실한 독일 소시지 야채 볶음과 돼지고기 스테이크, 바질 페스토 파스타와 신선한 어린잎 샐러드까지. 한입 한입 먹을수록 스위스에서 마트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던 설움이 우스운 추억으로 변해갔다.
여행과는 별개로 요리를 정말 못하는 나인지라, 손쉽게 고기를 굽고 파스타 간을 맞추는 선배가 유독 멋있어 보였다.
다음날, 선배와 함께 뮌헨 대학 기숙사에서 늦은 유러피안 모닝을 맞이했다.
우린 함께 뮌헨 대학교 캠퍼스를 거닐었다. 막상 대학교를 다닐 때는 대학생이라는 신분의 특이점을 잘 활용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아마 그때도 온전히 공부에만 집중하지 못한 채 대외활동, 자격증, 인턴쉽과 같은 스펙 쌓기에 몰두했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다시 돌아간다 하더라도 그러지 않을 자신은 없다. 뮌헨 대학생들의 사정은 좀 다를까.
독일 전통 빵 브레쩰(Brezel)을 사들고 영국 정원으로 향했다. 브레첼은 프레젤을 넓고 얇게 잘라 그 사이 버터를 바른 빵이다. 짭조름하고 버터리해서 매우 먹을만했다. 영국 정원 멀리 프라우엔 교회 쌍둥이 탑도 보였다.
사람보다 초록 잔디가 더 많이 보이는 이런 공원의 풍경은 아무리 봐도 낯설었다. 죽어가는 갈색 잔디 위 사람 머리만 빽빽한 서울숲과 한강에 익숙한 나는 이런 풍족한 공간이 사치스럽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선배와 함께 뮌헨 여행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여행이란,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다니는 것이란 걸. 당연한 얘기 같겠지만 나는 전혀 생각지 못한 여행의 이유였다.
나는 평소 입맛이 굉장히 무던한 편이다. 같은 음식을 계속해서 먹어도 물리지 않고, 별 볼 일 없는 요리도 배고플 땐 고급요리 부럽지 않게 맛있게 먹는다. 그래서인지 내가 계획한 유럽여행에는 음식이 큰 지분을 차지하지 않았다.
선배와 함께 하는 뮌헨 여행은 달랐다. 케밥 맛집부터 요거트 아이스크림 맛집, 그리고 독일 하면 빼놓을 수 없는 학세(Schweinshaxe) 맛집까지. 배가 조금 꺼졌다 싶으면 곧바로 맛의 향연이 이어졌다. 선배 덕분에 나도 맛있는 음식을 음미할 수 있는 사람이었단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나는 음식에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가난한 여행자였던 것이다.
로컬들이 북적이는 펍에서 2018 월드컵 결승전을 보며 생맥주를 마시는 것으로 뮌헨 여행은 마무리되었다.
어린 나에게 진정한 맥주의 맛을 알려준 나라가 바로 독일과 그 뒤에 이어진 체코(체스키)였다. 여기서 마신 생맥주는, 단순히 ‘술’이라 부르기엔 그 깊지만 상쾌한 맛을 설명하기에 충분치 않았다. 어른들이 왜 탄산음료보다 맥주를 선호하는지 처음으로 이해하게 되었던 맛. 그리고 7년이 넘은 지금도 나에게 “맛있는 맥주”의 지표로 남아있는 맛.
2018 월드컵 결승전은 프랑스 VS 크로아티아였다. 독일은 역사적으로 프랑스와 많은 갈등을 빚은 적이 있어서, 독일인들은 거의 모두 크로아티아를 응원하는 분위기였다. 완전히 색다른 문화와 사람들 한가운데 잠입한 느낌이었다. 여기저기서 환호성과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들을 흥미롭게 쳐다보다가, 어느 순간부터 군중 심리에 매료되어 나도 함께 크로아티아를 응원하고 있었다.
여행과 삶이 잠깐 마주하여 함께 머물었던 한여름의 밤이었다.
München, Germany_ Key Word
- Marienplatz
- Englischer Garten
- Neues Rathaus
- Frauenkirche Catholic cathedral
- Schweinshaxe
- Brez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