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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한 스컹크 May 03. 2024

품고 있는 날개

나이아가라 여행

홈스테이 호스트 J에게는 남자친구가 있었다.


옆집에 사는 커플이 휴가 때 본인들 나라인 '코스타리카'에 다녀올 계획인데

혹시 휴가 때 별다른 계획 없으면 본인들과 같이 가는 것이 어떻냐고 J에게 물어보았다.

J는 커플에게 한번 생각해 보겠다고 말하고 집으로 왔다.

집에서 코스타리카를 검색해 본 J는 옆집 문을 두드리며 같이 가겠다고 했다.

천혜의 자연에서 탄성이 절로 나오는 풍요로운 해안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처럼 

인터넷으로 본 코스타리카는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세명은 코스타리카로 떠났고 J는 거기에서 남자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나에게 직접 찍은 꽃, 나무 등 사진들을 보여줬었는데 색깔이 진하고 선명해서 정말 예뻤다.

캐나다에서는 볼 수 없는 식물들은 그야말로 환상적이고 아름다웠다.

나도 한 번쯤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커플과 지인이었던 J의 남자친구는 이혼남이었는데

J와 같이 자전거도 타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연인사이로 발전했다.

J는 그 남자가 아들이 한 명 있었지만 상관하지 않고 사랑에 빠졌다.

오히려 아들에게 다정한 아빠의 모습이 더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아들과 다 같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J는 다시 캐나다에 돌아와야 했다.

이제 두 사람은 장거리 연애가 되었다.


J는 일을 마치고 와서 저녁식사와 모든 본인의 일을 마무리하고

남자친구와 컴퓨터로 몇 시간씩 데이트를 즐겼다.

주말이나 가끔 나와 시간을 보낼 때도 남자친구는 컴퓨터로 함께했다.

J는 남자친구의 사진을 출력해서 가지고 있다가

본인 가족들 행사가 있을 때에는 사진을 가져가서 꼭 의자에 앉히거나 식탁 위에 사진을 놓으며

함께 하고 있다는 위로를 받곤 했다.


이번 휴가 때는 남자친구가 캐나다에 오기로 약속했다며 J는 기뻐했다.

나이아가라폭포 주위에 Inn('인'이라고 해서 호텔보다는 저렴한 숙박시설이 있다.

한국으로 치자면 모텔과 비슷할까?)을 예약하고 어디를 여행할 것인지 열심히 계획을 세웠다.


여행오기 며칠 전에 갑자기 남자친구는 캐나다에 못 가게 되었다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J에게 전했다.


이혼남인 남자친구가 해외에 나가려면 부인의 동의서가 있어야 하는데

새로 생긴 여자친구를 보러 간다는 사실에 질투를 느낀 전 부인은 전남편을 못 나가게 한 것이다.

말도 안 돼.


그리고 남자친구에게는 자폐증이 있었다.

평소에는 괜찮지만 기분이 안 좋거나 힘든 상황이 되면 자폐증이 심하게 나타났다.

그럴 때는 J에게 심한 말을 하며 본인의 컴퓨터나 휴대폰을 많이 망가트렸다.

그러다 며칠이 지난 후 J에게 다시 연락해서 본인이 미안하다며 사과하고 다시 스위트한 남자친구로 돌아왔다.


이번 여행이 틀어지자 남자친구는 다시 과격하게 변했다.

J에게 온갖 욕설과 듣기 힘든 말들을 쏟아내며 본인을 자학했다.

그리고 며칠 동안 연락이 되지 않았다.


J는 그럴 때마다 힘들다고 울며 나를 찾았다.

나는 짧은 영어로 열심히 다독여줬다. 

그리고 열심히 들어줬다.

이럴 때는 영어가 짧은데 도움이 많이 되어주었다.

들어주는 것만큼 더 큰 위로가 어디 있을까.


며칠을 열심히 들어주던 나에게 J는 

어차피 숙소 취소도 못 하는데 나에게 같이 가자고 했다.


그래 좋아.

남자친구 대신에 우리가 재미있게 놀고 오자!


J는 예정대로 렌터카를 가져왔고 우리는 나이아가라로 떠났다.


왜 캐네디언들은 내비게이션을 못 믿을까.

옵션으로 내비게이션을 받지 않았다.


J는 나이아가라에 거의 도착할 때쯤 나에게 핸드폰을 켜서 지도를 봐달라고 했다.

지금 다리 위를 건너고 있는데 잘 못 들어가면 우리는 캐나다가 아닌 미국으로 넘어가게 된다고.

뭐라고?

급하게 핸드폰을 켜서 지금 위치를 잡으며 나이아가라 가는 길을 검색했다.

처음 보는 도로 이름들이 영어로 나오는데 발음이 왜 이렇게 어려운 거야.

이건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 거지?


J는 빨리 길을 알려달라며 나를 다그쳤고

나는 보이는 대로 읽었다.

당연히 못 알아듣는 J에게 그럼 네가 직접 읽어보라며 휴대폰을 내밀었고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는 J는 읽을 수 없다며 나에게 말을 해달라고 했다.

말을 해도 못 알아들었잖아.

나는 다시 이리 읽고 저리 읽으며 열심히 도로의 간판을 보고 

저기야! 저기로 빠지래!

진땀을 흘리며 무사히 미국으로 건너가지 않았다.


간신히 숙소에 도착하고 우리는 그대로 뻗었다.


조금 후 J는 이런 상황이 어이가 없었는지 막 웃어대기 시작했다.

나도 따라서 웃었다.

어쨌든 우리는 무사히 왔으니 축배를 들자.

남자친구를 위해 야심 차게 준비한 레드와인을 두 여자는 나눠마셨다.

나에게 이런 멋진 시간을 양보해 준 남자친구에게 건배를 외치며

우리는 순식간에 와인 한 병을 비웠고 나는 취해서 필름이 끊겼다.


머리가 아파서 깨보니 다음날 아침이었고 

J는 나에게 어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해 주며 

나에게 왜 그렇게 고집이 세냐고 뭐라고 했다.

그러더니 본인은 피곤해서 더 자야겠다며 누웠다.


J에게 들은 어제의 내용은

와인 한 병을 다 비우고 우리는 숙소 근처에 아웃백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프렌치프라이는 몸에 좋지 않으니 시키지 말라는 J에게

나는 프렌치프라이를 꼭 먹어야겠다며 고집을 피웠고

결국 내가 이겼다.

그리고 나는 프렌치프라이를 입에 대지도 않았다고 한다.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 와인 한 병을 마시고 잠이 들었다고 말해줬다.

그래서 내 침대 옆 테이블에 프렌치프라이가 있는 거구나.


잠깐만!

내가 이 모든 걸 영어로 했다고?

기억이 전혀 없는데 영어로 대화를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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