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을 선택하는 나

by 이씨 이혼하다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남들은 시련이 오니까 어쩔수 없이 성장하는데

나는 굳이 시련을 선택해서 그걸로 성장하려고 하는거 같다고. 스스로 가학적인 선택을 하는거 같다고.


아니야. 그게 선택이든 어쩔 수 없는거든.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잘하고 있다 답했던거 같다.


아이을 낳는 문제에서도 그랬다.

이대로면 장애를 가질 수 있다고

혼자 서울대병원에 간 날도,

또 혼자 삼성병원에 간 날도 괜찮다는 말을 듣지는 않았다.


임신중독증이었다.

20주부터 아이는 뱃속에서 크지 못했고

쌓여가는 영양분은 나의 혈압만을 높이고 있었다.

집 앞 산부인과에서 분당서울대병원 전원을 권유하는 의뢰서를 받아 혼자 병원에 다녀온 날,

전남편은 나의 의견대로 하겠다라며 모든걸 나에게 넘겨버렸다.

서울대병원의 늙은 의사 선생님은 이대로 조산하면 아이는 여러 문제를 안고 살아갈테니 지우는 선택을 하면 어떻겠냐 말했다. 뇌성마비란 단어를 꺼냈다.

와. 미칠 노릇이었다.


기형아 검사를 하며 결과가 이상하면 수술하겠다.

혹시나 문제가 있다면 못키우겠다 다짐하던 나였는데

나는 못지우겠다. 그냥 키워보겠다. 다른 병원에 가보겠다라고 말했다. 전남편도 그러라 했다.

위로따위는 없었다.

그냥 하루를 견딜 뿐 그에게 기대할 건 없었다.

삼성병원 예약을 잡았다.


전화가 왔다. 시어머니한테서.

지워라. 장애 있을지도 모른다며. 왜 낳겠다 하냐며.

뇌성마비라며. 말도 안되는 소리하지말라며.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미혼모 장애인 아들 모금하는거 보면 너 생각난다고.

어머니!!!!! 저 미혼모 아니잖아요.

아무리 외쳐도 그녀는 확고했다.

결국 친정엄마에게 전화하기까지 이르렀다.

딸한테 지우라 권유하라고. 미칠 노릇이었다.


힘들어 죽겠는데 왜 저런말을 전하고 왜 내가 이런전화를 받게하냐 미친듯이 전남편과 싸우며 또 병원에 혼자 갔다.


선생님은

아니요. 이대로 낳아도 잘 클 수 있어요.

아니라고는 100프로 말 못해도 아닐 수도 있어요

뱃속에서든 인큐베이터에든 잘 키워봅시다 라고 말했다.

그런데 혈압이 너무 높으니 오늘 입원하세요.


마음이 준비가 안됐다.

고위험 산모실에서 혼자보낼 그 외로움이.


준비 다 하고, 그 때 와서 입원하겠다고.

친정에서 2주를 지내다 입원했다.

왼쪽으로 누워 움직이지 않고 아이가 잘 있는지 배에 아기의 움직임을 확인할 장치들만 붙여두고 누워있던 것이 하루의 전부였다.


그러다 낳았다 내 아들 수호를.

코로나 시절 1명의 보호자만이 1일 1시간 면회할 수 있는 그 시간 내내 싸운 이후부터, 미친듯이 혈압이 올랐고 면회가 끝나자마자 그 싸움의 여파였는지

새벽에 급작스럽게 산소호흡기를 꼈고,

혼자 아이를 낳았다.

아무렇지 않게 스스로 수술 동의서에 싸인하며 전남편에게 전화했다.

어차피 도착하면 수술은 끝나고 회복실에 와있을테니

그냥 천천히 오라고.


그 날의 기억을 떠올리면 가장 기뻐해줘야하는

나의 아들의 생일이.. 날 이었다.

28주에 아이를 낳고 짧은 울음소리를 듣자마자

수면마취에 잠이 들었고, 아팠고,

아이가 보고싶지만 볼 수도 없이 미쳐있는 내 앞에서

보쌈을 시켜 산모가 먹으라고 나온 미역국에

보쌈김치에 미역국이 잘 어울린다며

열심히 먹고 있던 그의 모습이 너무 미웠다.

그런 미운 날이었다. 그 날이. 나에게는.


가끔 그런 선택을 안했으면.

낳지 않는 선택을 했다면 고부갈등 따위, 부부씨움조차 없었나? 그럼 이혼하지 않았나?

매일매일 보이타에, 보바스에 물리치료든 언어치료든 그냥 애를 데리고 다니는 그 치료들에 지쳐하지 않는 나날이었다면 우린 달랐을까?


나의 선택이 나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건가? 정말 내가 날 가학하나? 그런 생각에 지치는 때가 있다.


그럼에도 내 아들 수호야

너가 없었으면 지금까지 버티지 못했을거야

그냥 한탄이지 널 낳은걸 후회한 적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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