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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릉도원 김수형 Dec 18. 2022

스물 한 번의 이사

스물 한 번의 이사

2002년


   내일 서울에서 태안으로 이사합니다. 부처장에서 영광의 처장으로 진급하여 발령받은 것이 또 태안입니다. 아내의 친구들이 오늘 저녁 모임을 준비한다니 고맙습니다. 아내도 기분이 참 좋을 겁니다. 한 번 꼽아보니 그동안 참으로 많이도 이사했네요.

   처음에 삼척군 당저리에 살림을 차려 동생 둘과 자취하며 살다가, 결혼해서 동생들과 함께 성내리에 신혼자리를 잡았다가, 봉황촌으로 이사, 다시 성내리로 컴백, 그리고 영동화력으로 전근하는 바람에 강릉시 옥천동에서 살다가, 계장시험에 합격하여 안인리 한전 단독주택 사택, 아파트 사택, 5년 후 보령화력으로 전근되어 충남 보령읍 변두리에 살다가, 보령군 주교면 은포리 사택 마동으로, 나동으로, 보령군 죽정동 사택으로, 이번에는 여수화력으로 발령받아 여수 사택, 다시 보령으로 발령받아 보령 죽정 사택으로 되돌아 와, 대전 전력연구원으로 발령받아 대전 삼성 푸른 아파트 사택, 태안으로 발령받아 태안군 원북면 사택 아파트, 서울로 전근되어 서울 송파구 미성아파트, 이제 다시 태안 사택으로 돌아가니 총 17번 이사하게 되네요.


   인생 보따리요, 인생의 짐을 딸랑 트럭 한 대에 싣고 거처를 옮기는 기분은 술에 취하지 않으면 모르는 겁니다. 강릉서 보령으로 옮기던 날은 전날 송별회 술에 정말 많이 취했습니다. 결혼 10년간 가계부가 적자에서 헤어나지 못하다가, 대관령을 넘는 것을 분수령으로 그리고 분기점으로 적자는 면했으니까요. 이사하던 중 그 날이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아내와 철없는 어린 자식 셋을 운전기사 옆자리에 태우고, 짐 보따리는 뒤쪽에 고무줄로 단단히 묶어 싣고, 일가친척 피붙이라고는 단 한 명도 없는 보령으로 가다니, 나는 술이 안 깨서 트럭 운전기사들이 교대로 잠자는 뒷자리에 드러누워 자면서 넘던 아흔아홉 구비 대관령 고개...

내 인생을 ‘딸랑 트럭 한 대’에 싣고 가는 외로운 기분은 ‘쓸쓸함’ 그거였어요.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날 것 같아요.


   이제 태안으로 또 이사를 갑니다. 또 얼마나 오래 태안에서 살른지 알 수 없는 인생길... 서울의 송파구 석촌호수도, 올림픽공원도, 방이동 먹자골목도 다 추억이 되네요. 삼성동 코엑스는 내 사무실 코밑에 내려다 보였고, 거기는 일요일이면 내가 잠시 사무실에 나가서 일 좀 보다가 내려가서 젊은 氣를 흡입하던 곳인데, 이제는 들어가기조차 서먹서먹하게 나는 촌놈으로 되돌아오게 되겠지요?

   그래도 한전에서 발전회사로 분리되고, 나도 본사 근무 처음으로 한 번 한 것이 참 보람이었어요. 우여곡절 끝에 진급하기까지 서울 생활은 사실 내게는 벅찬 열매와 성공을 갖다 준 곳입니다.

   친구님들 태안으로 놀러 오세요. 선양 쐬주 한 꼽뿌 완 샷, 밀국 낚지 한 저름에 아아 짜르르~! 

창자에 번지는 알코홀의 기분, 으아 미치겄네.

황금의 땅 태안으로 꼭 놀러오세요!


 *2002년 현재

 그 후에 딱 20년이 더 지나면서 이사를 더 했다. 2005년에 한국서부발전 태안발전본부에서 명예퇴직을 하고, 두산중공업에 취직하여 18번째 진해시에 이사를 갔다. 4년 근무하면서 같은 진해시에 19번째 이사. 2009년에 두산중공업 근무를 마치고 서울 내집으로 20번째 이사. 2019년에 서울 집 팔고 그 부근으로 21번째 이사했다. 

   앞으로도 한 두 번은 더 이사를 해야 할 것 같다. 참 많이도 한다. 

   징그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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