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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우 아빠 Sep 07. 2022

강상회음 (김득신)

늘 겸손하게 행동하여 마치 말을 못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강상회음(江上會飮) - 김득신 (출처 : 공유마당 CC BY)


공자는 고기가 아무리 많아도 밥보다 많이 먹지 않았다. 술은 양을 정해서 마시지 않았지만 흐트러진 적이 없었다. 

(향당편 肉雖多 不使勝食氣 惟酒無量 不及亂 육수다 불사승사기 유주무량 불급난)


 《논어》는 대부분 말이나 대화로 구성되어 있으나 향당편은 조금 다릅니다. 제자들은 향당편에 공자의 평상시 행적을 상세히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 습관들의 합은 우리가 공자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 향당편은 공자가 얼마나 자기 관리에 철저했는지 알 수 있는 자료입니다. 


 공자는 먹는 것도 엄격하게 관리하였습니다. 그는 밥이 쉬거나 맛이 변한 것, 물고기가 상하거나 고기가 변질된 것은 먹지 않았습니다. 또한 음식의 색이 나쁘거나, 냄새가 좋지 않거나, 덜 익히거나 너무 익히거나, 제철이 아니거나, 바르게 잘리지 않거나, 음식과 맞는 소스가 없으면 먹지 않았습니다. (食饐而餲 魚餒而肉敗不食 色惡不食 臭惡不食 失飪不食 不時不食 割不正不食 不得其醬不食 사의이애 어뇌이육패불식 색악불식 취악불식 실임불식 불시불식 할부정불식 부득기장불식)


 또한 ‘공자는 마을에 있을 때에는 늘 겸손하게 행동하여 마치 말을 못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孔子於鄕黨 恂恂如也 似不能言者 공자어향당 순순여야 사불능언자), ‘밥을 먹을 때에는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고, 잠자리에 들면 말을 하지 않았다.'(食不語 寢不言 식불어 침불언), ‘앉을 때는 늘 자리를 바르게 한 뒤에 앉았다.’(席不正 不坐 석부정 부좌), ‘마을 사람들과 술을 마실 때면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나가고 난 다음에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鄕人飮酒 杖者出 斯出矣 향인음주 장자출 사출의), ‘상복을 입은 사람을 보면 아무리 친하더라도 반드시 엄숙한 표정을 지었고, 관복을 입은 관리나 시각장애인을 보면 아무리 허물이 없는 사이라도 반드시 예법에 맞게 대하였다.'(見齊衰者 雖狎 必變 見冕者與瞽者 雖褻 必以貌 견자최자 수압 필변 견면자여고자 수설 필이모) 등등의 내용이 나옵니다. 조금은 지나치다고 생각할 수 있는 내용도 나오지만 그것이 모두 자신을 바르게 관리하기 위한 기준이라고 생각한다면, 그의 지독한 노력이 이해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도덕적 탁월함이 습관의 결과라고 정의했습니다. 바른 행동을 반복해야 바른 사람이 되고, 절제를 반복해야 절제력이 길러지고, 용기 있는 행위를 반복해야 용감한 사람이 된다는 주장입니다.(《니코마코스 윤리학》)  습관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을 윌 듀랜트는 자신의 책 《철학이야기》(The Story of Philosophy)를 통해 다음과 같이 규정하였습니다. “현재의 우리는 반복된 행위의 결과로 만들어진 존재이며, 탁월함은 행동이 아니라 습관에서 나온다.”




 김득신은 외할아버지, 큰아버지, 동생과 아들들까지 모두 도화서 화원으로 활동한 화가 집안의 일원이었습니다. 그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아서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큰아버지의 영향력으로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배웠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김득신은 19살 되던 해에 궁중의 부름을 받아서 의궤를 작업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19살 이전에 이미 실력을 인정받은 화가인 셈입니다. 


 그는 활발하게 외부에서 활동을 했던 김홍도와는 달리 도화서 내부에서 본인의 임무에 충실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김득신은 차비대령화원(差備待令畵員)으로 선발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차비대령화원은 조선 후기에 최고로 인정받았던 궁중 화가들로, 별도의 시험을 통과한 인재로 구성되었습니다. 김득신이 차비대령화원으로 선발될 당시에 그는 동료 중에서 가장 어린 나이였습니다. 그리고 차비대령화원 소속으로 무려 37년간 궁중의 그림을 담당했습니다. 그는 66세까지 자격시험인 녹취재(祿取才)에 143회나 응시했는데, 그중에서 1, 2등을 차지한 횟수가 무려 57회나 될 정도로 뛰어난 역량의 소유자였습니다. 어린 시절까지 포함하면 그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경력을 지닌 최고의 전문 궁중 화가인 셈입니다.


 김득신은 현실감과 생동감이 넘치는 풍속화로도 유명합니다. 몇몇 작품은 뛰어난 화가로서의 기량을 아낌없이 자랑하는데, 마치 현장에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19세기에 쓰인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에는 정조가 김득신의 부채 그림을 보고, 김홍도와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의 실력이라고 평가했다는 기록이 전해집니다. 당시에 김득신이 김홍도 못지않게 뛰어난 화가로 유명세를 떨쳤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강상회음(江上會飮)〉은 한적한 어촌을 다룬 김득신의 그림입니다. 강상은 강가를 말하고 회음은 여러 사람이 모여 술을 마신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강가에 둘러앉아 음식과 술을 즐기고 있습니다. 강과 배 그리고 낚싯대로 보이는 대나무가 등장하니 어부들의 평범한 일상으로 보입니다. 중앙에 물고기를 두고 둥그렇게 모여 앉은 사람들은 풍경과 조화로운데, 오른쪽으로 물러난 이들은 뭔가 어색합니다. 홀로 술병을 들고 마시는 사람, 멍하니 먼 곳을 보는 사람 그리고 나무 뒤에 몸을 숨긴 사람의 해석에는 다양한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화가가 동떨어진 인물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맞춰보라고 퀴즈를 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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