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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우 아빠 Sep 06. 2022

70세 자화상 (강세황)

그 무슨 일이든지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

70세 자화상 - 강세황(출처 : 한국데이터산업진흥원)



나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매진하기로 결심했고, 서른 살에는 홀로서기에 성공했으며, 마흔 살에는 유혹에 흔들리는 일이 없어졌고, 쉰 살에는 시대적 사명을 알았으며, 예순 살에는 어떤 말도 유순하게 듣게 되는 귀를 가지게 되었고, 일흔 살에는 그 무슨 일이든지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

(위정편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오십유오이지어학 삽십이립 사십이불혹 오십이지천명 육십이이순 칠십이종심소욕불유구)


 공자의 일생을 기록한 최초의 전기는 ‘공자세가’입니다. 중국 한나라 때 사마천이 쓴 역사서 《사기》에 실려 있습니다. 공자세가에는 공자가 73세에 세상을 떠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흔 살이라는 나이가 언급되는 위의 구절은 죽음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말년의 고백이 되는 셈입니다. 원문 한자에 나오는 불혹, 지천명, 이순 등의 단어는 40세, 50세, 60세 등의 나이를 빗댄 표현으로 지금도 종종 사용됩니다.


 사람들은 죽음이 임박한 순간이라고 느껴지면 한 번쯤 자신의 일생을 되돌아보기 마련입니다. 생명력이 왕성할 때는 앞만 보며 가다가 기운이 떨어져야 뒤를 살펴보게 됩니다. 꼭 말년이 아니더라도 사고나 큰 병을 앓고 난 다음에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됩니다.


 보통 자신의 인생을 뒤돌아보며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사건 위주로 나열하기 쉽습니다. 예를 들면 직업, 연애, 결혼, 출산 등에 관한 것들이 일반적이고, 성취한 꿈이나 아찔한 위기 그리고 소중한 인연이 된 사람들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자는 인생을 깨달음의 시점으로 구분하였습니다.


 공자의 말은 평범한 독백처럼 보이지만, 위대한 철학자이자 교육자의 면모가 그대로 담겨있습니다. 이것은 한 사람의 인생이면서 동시에 지독한 배움의 과정이었기 때문입니다. 열다섯 살에 언급된 학문으로 주제를 이어 간다면, 서른 살에는 자신의 학문적 견해를 완성했고, 마흔 살에는 학문 이외의 다른 길로 빠지지 않았고, 쉰 살에는 학문을 전파하려고 애썼고, 예순 살에는 어떤 비판에도 흔들리지 않았으며, 일흔 살에는 학문이 두루두루 통하는 경지에 이르렀다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조선은 꽤 많은 초상화를 남겼습니다. 국가에서는 역대 왕을 그린 어진(御眞)과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신하들의 업적을 치하하기 위한 공신상(功臣像) 등을 지속적으로 제작하였습니다. 민간에서는 주로 남성 양반들을 대상으로 그림이 그려졌습니다. 대부분의 초상화가 대상이 한정적이라는 한계가 있었지만, 세세한 얼굴의 묘사는 증명사진에 뒤처지지 않을 만큼 뛰어난 수준을 자랑했습니다. 수염과 주름은 물론 피부와 상처 그리고 안면의 장애까지도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서양에서는 초상화처럼 자화상도 흔한 그림입니다만 조선에서는 매우 귀했습니다. 자화상은 소수의 전유물로 남겨져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많은 작품을 남긴 인물이 강세황입니다. 강세황은 44세에 처음으로 자화상을 그리기 시작해 70세까지 여러 차례 자신의 모습을 남겼습니다. 총 4점의 자화상이 지금까지 전해지는데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이 1782년에 그린 〈70세 자화상〉입니다. 이 자화상은 1783년에 이명기가 그린 강세황의 초상화와 함께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1년의 차이를 두고 자신이 그린 자화상과 다른 사람이 자기를 그려준 초상화가 모두 보물로 지정된 것은 꽤 드문 사건입니다. 그림을 보면 강단 있는 표정과 꼿꼿한 자세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적당히 힘을 뺀 듯하면서도 다부져 보이는 얼굴입니다. 그다음으로 소매가 큰 옥색 도포의 간결한 색상과 곡선의 조화가 인상적입니다. 무던한 도포는 붉은 도포띠를 이용해 멋을 추가하였습니다.  도포띠가 마치 옷 사이를 흐르는 듯합니다.


  그림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모자입니다. 강세황이  모자는 오사모(烏紗帽) 관리들이 근무할  입는 관복과 함께 착용하는 용도로 사용합니다. 그런데 그는 모자에 어울리는 관복 대신 평상복을 입고 있습니다.  일부모자와 옷을 맞춰 입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자면 경찰이 일상복을 입고 경찰관 모자를  것처럼 어색한 장면이 연출된 셈입니다. 그림의 상단에는 형식에 맞지 않는 모자를  이유를 짐작할  있는 글귀가 남아 있습니다. 강세황은 마음이 산림에 있는데 이름은 조정에 있다는 글을 남겼습니다. 그는 70세가 되도록 자유롭게 살지 못하는 현실을 모자로 표현한 셈입니다.



50대에 그렸다고 추정되는, 자화상유지초본 (출처 : 공뮤마당 CC BY)



강세황 71세 초상화 - 이명기(출처 : 공유마당 CC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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