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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우 아빠 Sep 08. 2022

성하직구 (김득신)

효는 어긋나지 않는 것

성하직구(盛夏織屨) - 김득신(출처 : 공유마당 CC BY)



부모님의 나이를 모르면 안 된다. 한편으로는 그 나이가 되셨다는 사실에 기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 나이로 인해 염려되기 때문이다 

(이인편 父母之年 不可不知也 一則以喜 一則以懼 부모지년 불가부지야 일즉이희 일즉이구)


 위 구절은 부모님의 나이로 효(孝)를 전달합니다. 효의 기본은 관심과 마음입니다. 나이는 장수의 기쁨과 연로의 슬픔을 동시에 보여주는 기준입니다. 아시아에서는 고대부터 효라는 개념이 널리 퍼졌습니다. 효는 효도, 효심, 효자, 효녀, 불효 등등의 많은 단어들을 만들어냈습니다. 단어의 수가 많아진 만큼 다양한 개념으로 확장되어 아시아에 정착하였습니다.


 효는 동양과 서양을 막론한 보편적인 개념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효라는 개념이 희미합니다. 대표적인 서양의 언어인 영어에서도 효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자식의 의무(filial duty)’나 ‘자식의 공경(filial piety)’이라는 어정쩡한 합성어를 번역에 이용하지만, 실제로 효라는 의미를 서양인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더 자세한 보충 설명이 필요합니다. 자식의 의무와 공경을 말하기 전에 먼저, 부모님에 대한 감사(gratitude)에서 비롯된 사랑(love)이나 존경(respect)이라는 단어의 조합이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어떤 단어를 사용해도 우리가 생각하는 효와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고유의 단어가 없다는 말은 그런 개념이 예전부터 없었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렇다고 예전부터 서양에서는 부모를 함부로 대하는 문화가 있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동양에는 조금 더 다양한 도덕적 개념들이 존재했고 그것이 나보다는 우리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문화의 한 단면이라고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효는 공자의 가르침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원칙이자 양보할 수 없는 절대적 가치입니다. 그는 효를 ‘어긋나지 않는 것’(無違 무위)이라고 정의하며, 부모가 살아 계시거나 돌아가시거나 한결같이 ‘예를 다하여 모시고, 예를 다해 장례를 치르고, 예를 다해 제사를 지내는 것'(위정편 生事之以禮 死葬之以禮 祭之以禮 생사지이례 사장지이례 제지이례)이라고 하였습니다. 효는 부모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제사를 통해 감사한 마음을 이어 나갑니다. 공자가 반복적으로 장례식에서는 슬픈 마음이 중요하다고 얘기했듯이, 제사도 함께 모여서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이 우선입니다. 어른이 진심으로 부모를 공경하는 모습을 보일 때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효를 배우게 됩니다. 효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공자가 가르치는 유학의 기본 정신입니다. 모범이 없는 강요는 마음으로 스며들지 못합니다.




 〈성하직구〉 에서 성하는 한여름, 직구는 짚신을 만든다는 뜻입니다. 제목을 풀어보면 ‘한여름의 짚신 삼기’정도 됩니다. 이 그림은 조선 시대의 전형적인 농촌 풍경을 담고 있습니다. 집 주변에는 작물이 자라며 울타리에는 소박한 꽃이 피었습니다. 짚신은 식물의 줄기를 말하는 짚과 사람이 신고 다니는 신이 합쳐진 말입니다. 그래서 삼이나 왕골처럼 줄기가 튼튼한 식물을 사용하여 만들기도 하였으나, 조선의 서민들은 보편적으로 볏짚을 이용하였습니다. 짚신은 짚을 실처럼 꼬아서 사용하기 때문에 만들 때 ‘삼다’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했습니다.


 짚신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사용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조선 시대의 짚신은 누구나 사용하던 보편적 신발이었습니다. 양반들도 짚신을 신었는데 신분에 따라서 재료와 바닥의 두께가 달랐다고 합니다. 서민들은 자신들의 신발을 직접 만들어 신었습니다. 그리고 시장에 내다 팔아서 돈을 벌기 위한 용도로도 사용되었습니다.


  그림에는 삼대가 등장합니다. 날씨가  더운지 사람들은 윗도리를 벗고, 개는 혀를 내놓고 헐떡이고 있습니다. 다부진 아버지와 달리 할아버지의 마른 몸이 눈에 띕니다. 할아버지는 하얗고  수염만큼  늙어 보이지만 등과 허리는 아직 꼿꼿합니다. 그는 머리숱이 없지만 아직 정정한 기운이 전해집니다. 아버지는 짚신을 만들기에 전념하고, 할아버지는  모습을 보면서 느긋하게 담배를 피우고 있습니다. 손자는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할아버지 뒤에 바짝 붙어 눈치를 보고 있습니다. 힘을 쓰는 아버지의 팔과 다리에서 풍기는 긴장감이 아들 때문에 누그러지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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