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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우 아빠 Sep 23. 2022

유곽쟁웅 (신윤복)

잘못이 있다면 거리낌 없이 고쳐야 한단다

유곽쟁웅(遊廓爭雄) - 신윤복(출처 : 공유마당 CC BY)


군자는 진중하지 못하면 위엄이 없고 학문도 단단해지지 못한단다. 충직과 신뢰를 중요하게 여기고, 이런 가치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친구를 사귀지 말고, 잘못이 있다면 거리낌 없이 고쳐야 한단다.

(학이편 君子不重則不威學則不固 主忠信 無友不如己者 過則勿憚改 군자부중즉불위학즉불고 주충신 무우불여기자 과즉물탄개)


 군자는 무게감이 있는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조언으로 시작하는 구절입니다. 《논어》에는 무게감이 있는 태도와 관련된 유명한 구절이 또 하나 있습니다. 공자의 제자 중 한 명인 증자(曾子)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선비의 임무는 무겁고 갈 길은 멀기에 마음이 크고 굳세야 한다. 인을 자신의 임무로 삼았으니 어찌 무겁지 않겠는가? 죽은 뒤에야 가야 할 길이 끝나니 어찌 멀지 않겠는가?”(태백편 士不可以不弘毅 任重而道遠 仁以爲己任不亦重乎 死而後已不亦遠乎 사불가이불홍의 임중이도원 인이위기임불역중호 사이후이불역원호) 증자는 공자의 학문을 후손들에게 전파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 제자입니다. 그의 말에서는 한치의 나태함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묵직함이 느껴집니다. 선비의 길은 죽은 다음에야 끝난다는 말에서 비장함마저 느껴집니다. 


  논어에는 충(忠)이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현대인에게 충은 곧 충성이라는 단어와 같은 뜻으로 간주되며, 국가나 윗사람에게 몸과 마음을 바쳐 최선을 다한다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그런 이유로 충성이라는 단어를 가장 자주 들을 수 있는 곳이 군대입니다. 많은 군대에서 경례의 구호로 충성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래 충은 나라와 상사에게 복종하는 의미로 최선을 다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충에서 파생된 여러 가지 의미 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한자 충(忠)은 '마음 심(心)'과 '가운데 중(中)'자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글자입니다. 치우침이 없이 중심을 잡고 있는 마음이라는 뜻으로 만들어진 글자입니다. 이러한 의미가 반영되어 본래 ‘마음을 다하다’, ‘진심으로 대하다’라는 뜻이 반영된 글자가 충입니다. 즉, 충은 국가나 왕처럼 특정한 대상을 향한 마음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발전시키고 지켜 나가는 열정적 태도에 가깝습니다. 


 공자가 말하는 충은 본래의 의미를 따라서 ‘진심으로 최선을 다한다’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그래서 문장을 번역할 때도 충성보다 충직이나 충실이라는 단어가 어울립니다. 《논어》에 나오는 대부분의 충은 우리가 연상하는 충성이라는 뜻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몸을 바친다’라는 현대적 의미의 충은 10세기 이후의 송나라에서 비롯된 개념이라고 합니다.(『철학사전』, 출학사전편찬위원회, 중원문화, 2012) 만약 이러한 주장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생각하던 충은 공자가 살던 시대와 무려 1,500여 년의 간극이 발생하게 됩니다. 


  위 구절에서 의미를 곱씹어 봐야 할 것은 마지막 부분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알게 되면 바로바로 고쳐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군자도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도 하고, 잘못된 일을 벌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알아차렸을 때 바로 인정하고 고치면 됩니다. 자신의 실수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특히 나이를 먹거나, 높은 지위에 오르면 더욱 그런 경향이 강해지고 심지어 다른 사람에게 덮어 씌우기도 합니다. 


 공자는 “잘못을 고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잘못이다.”(위령공 過而不改 是謂過矣 과이불개 시위과의)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말이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이 지적하자 다음과 같이 얘기했습니다. “나 공자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구나. 내가 잘못을 저지르면, 반드시 사람들이 그것을 지적해 주는구나.”(술이편 丘也幸 苟有過  人必知之 구야행 구유과 인필지지) 




〈유곽쟁웅(遊廓爭雄)〉은 술집 앞에서 싸우는 남자들을 포착한 그림입니다. 땅에 떨어진 갓이 뜯긴 걸로 보아 이미 한차례 몸싸움이 벌어진 다음입니다.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맞은 이를 달래고, 가운데에 홀로 선 양반은 화가 사그라지지 않았는지 윗도리가 벗겨져 있습니다. 표정만으로도 누가 때리고 맞았는지 선명합니다. 갓을 줍는 사내와 담배를 피우며 구경하는 여인은 모두 못마땅한 표정입니다. 


 이 그림도 《혜원전신첩》에 들어 있습니다. 〈유곽쟁웅〉은 동자의 안내를 따라서 술집으로 가는 〈야금모행(夜禁冒行)〉, 술집에서 술을 마시는 〈주사거배(酒肆擧杯)〉와 함께 시리즈처럼 이어진 구성이 흥미로운 그림입니다. 시리즈로 기획된 세 점의 그림을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는 붉은 옷을 입은 무예별감입니다. 무예별감은 왕을 호위하거나 궁궐의 문을 지키던 관청과 그곳에 소속된 군인을 말합니다. 무예별감은 눈에 확 띄는 옷의 색상으로 세 그림을 이어주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당시의 무예별감은 낮은 직급이었지만, 왕을 가까이에서 호위하는 임무로 신분에 비해 큰 힘을 지녔다고 합니다. 그런 이유로 그들은 술집의 운영에 관여하면서 돈벌이를 일삼던 부패한 관리의 대표적인 예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야금모행(夜禁冒行) - 신윤복(출처 : 공유마당 CC BY)


주사거배(酒肆擧盃) - 신윤복(출처 : 공유마당 CC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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