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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우 아빠 Sep 29. 2022

눈 내린 소나무 (이인상)

지혜란 사람을 아는 것이다

눈 내린 소나무 - 이인상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제자 번지가 인(仁)에 대해 묻자, 공자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라고 답하였다. 그리고 지혜에 대해 묻자, "사람을 아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번지가 그 뜻을 잘 알아듣지 못하자 공자는 다시 설명했다. “굽은 것을 들어서 곧은 것 위에 올려놓으면 능히 굽은 것을 곧게 만들 수 있느니라.”

(안연편 樊遲問仁 子曰 愛人 問知 子曰 知人 樊遲未達 子曰 擧直錯諸枉 能使枉者直 번지문인 자왈 애인 문지 자왈 지인 번지미달 자왈 거직조저왕 능사왕자직)


 위 구절은 인(仁)에 대한 간결한 정의와 바른 세상을 만드는 핵심적인 방법에 관한 견해가 담겨 있습니다. 공자는 인(仁)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그 안에 지속적으로 머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 깊게 생각해야 할 점은 인은 한번 도달했다고 끝나는 행위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마음가짐과 실천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누구나 인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만 꾸준히 머무르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논어》에는 제자들이 인에 대해 물어보는 장면이 7번 나옵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변 중에서 위 구절에 나온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간결합니다. 이것은 제자 번지의 눈높이에 맞춘 답변이었습니다. 번지는 종종 공자의 얘기를 잘 알아듣지 못하였기에 최대한 쉬운 설명이 필요한 제자였습니다. 따라서 위 구절은 인에 대해서 최대한 간단하고 명료하여, 그 어떤 다른 설명보다 정곡을 찌르는 정의라고 생각됩니다. 공자는 “강직하고, 굳세고, 꾸밈이 없이 수수하고, 무거운 입이 인에 가깝다(자로편 剛毅木訥 近仁 강의목눌 근인)라고 얘기했는데, 이것은 진실된 사랑의 특성과 비슷합니다.


 곧은 사람을 굽은 사람 위에 두는 것은 목재를 관리하는 요령에 빗댄 말입니다. 예부터 목재를 보관할   나무가 있으면  위에 평평한 나무를 올려 두었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굽은 나무들이 곧은 나무의 압력을 받아 자연스럽게 평평해진다고 합니다. 사람의 역할과 인재의 중요성을 목재로 비유한 설명입니다. 자의 지혜는 출세나 부귀와 거리가 멉니다. 공자는 권력을 잡고 돈을 버는 일보다 사람을 아는 것을 지혜로 여겼습니다. 사람을 알고 이해해야  좋은 세상을 만들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됩니다. 사람을 상대하고 이해하고 협력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사람을 아는 것에는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공자가 제자에게 언급한 지혜는 결국 인류의 공존과 상생의 원리인 셈입니다. 공자는 바른 지혜를 가진 사람들이 사회를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배우기를 강조하고 제자들의 양성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바른 지혜를 가진 사람들이 늘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논어〉에는 이와 비슷한 구절이 또 있습니다. 노나라의 제후 애공이 공자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백성이 잘 따르겠습니까?” 공자가 답했습니다. “곧은 사람을 굽은 사람 위에 두면 백성이 따르고, 굽은 사람을 곧은 사람 위에 두면 백성이 따르지 않습니다.”(위정편 哀公問曰 何爲則民服 孔子對曰 擧直錯諸枉則民服 擧枉錯諸直則民不服 애공문왈 하위즉민복 공자대왈 거직조저왕즉민복 거왕조저직즉민불복)




 이인상은 고조할아버지 이경여(李敬輿)가 영의정을 지낸 명문가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그의 증조할아버지 이민계(李敏啓)가 서자였기 때문에 차별된 신분을 고스란히 물려받았습니다. 그는 9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숙부에게서 학문을 배웠습니다. 명문가의 후손이지만 서자의 혈통 때문에 높은 관직으로 나아갈 수 없는 제약 속에서 살았습니다. 이인상이 그림을 어떻게 배웠는지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서예에 재주가 많았던 숙부에게서 예술에 대한 영향을 받았다고 보입니다.


 그는 30대부터 하급 관리로 공직에 몸담으며 다양한 관직을 맡았습니다. 그러다가 44세에 음죽(陰竹 지금의 장호원) 현감으로 지내던 중 자신보다 신분이 높았던 관찰사와 다투고는 관직을 버렸습니다. 그 이후에는 공직을 떠나 죽을 때까지 조용히 은둔하며 살았습니다. 평소에 몸은 쇠약했지만, 성격은 강직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첨으로 출세하기를 바라지 않고 타인의 눈치도 보지 않아서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인상은 서예와 시에도 뛰어났으며,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문인화가로 유명합니다. 강직한 인품을 그림으로 옮겨 문인화의 격조를 한층 높인 화가라는 평이 많습니다. 신분의 한계로 높은 관직을 얻을 수 없었던 이인상은 자신의 재능과 성격을 예술에 녹였습니다. 그는 전각(篆刻)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습니다. 전각은 나무나 돌 같은 재료에 이름이나 호 등을 새겨 서예나 그림에 사용하는 도장입니다. 글자를 그대로 파기보다는 예술적인 미를 더해서 작업을 하기 때문에 전각도 예술의 한 분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눈 내린 소나무〉는 이인상의 대표작으로 자주 언급되는 그림입니다. 바위를 쪼개고 서 있는 듯한 소나무 두 그루가 그림의 주인공입니다. 지나치게 곧은 나무 뒤로 심하게 굽은 나무의 휨이 마치 무용을 하는 사람의 몸짓 같습니다. 여백으로 처리한 눈이 겨울의 시련을 암시합니다. 곧은 소나무의 줄기에도 좌우로 눈이 붙어 있습니다. 심한 바람으로 눈이 옆으로 몰아친 흔적 같습니다. 절개와 지조를 상징하는 소나무가 뿌리까지 드러났으나 아직 생명력의 기운이 사그라들지는 않았습니다. 곧은 소나무에는 아무리 많은 눈이 내린다 하더라도 꺾이지 않을 그윽한 기운이 담겨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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