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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우 아빠 Oct 01. 2022

와운 (이인상)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다

와운(渦雲) - 이인상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습니다.

(팔일편 獲罪於天 無所禱也 획죄어천 무소도야)


 위나라의 대부였던 왕손가(王孫賈)가 공자에게 물었습니다. “방 안의 신에게 잘 보이기보다는 부엌의 신에게 아첨하는 것이 낫다는 말이 있는데 이게 무슨 뜻입니까?” 이 말은 그 당시에 속담이었습니다. 방에 있는 집주인보다 부엌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잘 보여야 먹을거리라도 하나 얻기가 쉽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보편적으로 이 내용은 왕보다는 실권을 가진 신하에게 아부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합니다. 즉, 왕손가는 관료가 되려면 아부를 해야 할 신하를 먼저 찾아야 한다고 공자에게 에둘러 표현한 셈입니다. 이 말을 듣고 공자는 딱 잘라 말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습니다.”(王孫賈問曰 與其媚於奧寧媚於竈何謂也 子曰 不然 獲罪於天無所禱也 왕손가문왈 여기미어오영미어조하위야 자왈 불연 획죄어천무소도야)


 공자가 관직을 얻으려고 전국을 떠돌아다니다가 위나라에 도착했을 때, 왕손가는 제후였던 영공(靈公) 대신 자신에게 잘 보이라고 얘기했습니다. 왕손가는 속담을 인용하여 공자의 속마음을 떠보았지만, 공자는 편법을 쓰지 않고, 바른길을 가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공자는 속담의 내용을 반박하거나 자신의 입장을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방과 부엌의 신보다 한 차원 높은 하늘을 끌어와, 한 마디의 말로 상대방에게 거절의 뜻을 전달하는 답변이 절묘합니다.


 공자가 말한 하늘이란 초월적 존재나 신앙의 대상이 아닙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보다 더 광대한 자연이나 우주를 잉태하고 지탱하는 현상에 가깝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모든 만물의 근원이자 질서입니다. 이와 같은 동양의 하늘이 가진 의미는 나중에 맹자(孟子)로 이어집니다. 맹자는 군자에게 세 가지 즐거움(君子有三樂 군자유삼락)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첫 번째 즐거움은 부모형제의 생존과 건강, 세 번째 즐거움은 재주가 뛰어난 영재를 가르치는 일, 그리고 두 번째 즐거움이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고 사람들을 굽어보아도 부끄럽지 않은 것(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二樂也 앙불괴어천 부부작어인 이락야)이라고 하였습니다. 맹자의 이 말은 나중에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로 시작하는 윤동주(尹東柱)의 〈서시〉로 변주되었습니다. 




 〈와운(渦雲)〉은 소용돌이치는 구름이라는 뜻입니다. 이 그림은 조선의 작품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파격적입니다. 너무나 현대적이어서 깜짝 놀랄 정도입니다. 20세기 이후에 만들어진 추상화의 범주에 넣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와운〉은 얼핏 보아도 고흐를 떠올리게 만듭니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명화로 자주 언급되는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과 닮은 하늘을 가졌습니다. 〈와운〉은 정확한 제작 연도를 알 수 없지만, 이인상의 사망연도인 1760년을 제작시기로 가정하더라도 1889년에 완성된 〈별이 빛나는 밤〉보다 최소 129년이나 앞선 그림이 됩니다.


 선과 면을 이용한 먹의 강약으로 완성된 이 그림은 어떤 의도가 담겼는지 선뜻 알기 어렵습니다. 다행히 그림의 오른쪽에는 작가가 쓴 화제가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학자마다 해석이 완전히 다르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화제를 술에 취해 그린 그림으로 번역하였습니다.(《속속들이 옛 그림 이야기》) 취한 뒤에 시를 쓰려다가 소용돌이치는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반면 근래에는 술에 취한 것처럼 그려졌다는 해석도 나왔습니다.(《능호관 이인상 서화 평석》) 같은 글을 가지고 전혀 다르게 설명하는 전문가들의 분석도 흥미롭습니다. 


 화제는 ‘한번 웃는다’(一笑 일소)로 끝납니다. 취한 뒤에 그렸든 아니면 취한 것처럼 그렸든, 화가는 완성된 자신의 작품을 보면서 ‘한번 웃는다’로 설명을 마무리했습니다. 이인상이 느꼈던 웃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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