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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우 아빠 Oct 03. 2022

기려심매 (정선)

행동보다 말이 지나친 것을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

기려심매(騎驢尋梅) - 정선(출처 : 공유마당  CC BY)


제자 자공이 군자에 대해서 묻자 공자가 답했다. “말보다 행동이 우선이다. 그런 다음 실천에 따라 말이 나와야 하느니라.”

(위정편 子貢問君子 子曰 先行其言 而後從之 자공문군자 자왈 선행기언 이후종지)


 말을 잘하는 사람은 대체로 인기가 많습니다. 요즘은 개인이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다양한 매체가 발달한 시대이기 때문에 인기가 높은 사람들이 가진 말의 파급력도 대단합니다. 그런데 다른 한쪽에서는 접근성이 쉽고 돈이 된다는 이유로 아무나 전문가 행세를 하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주의를 끌기 위한 자극적인 말과 가짜 미끼처럼 실속 없는 말이 넘쳐납니다. 하나가 유행하면 그와 비슷한 아류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다양한 가짜가 득세하고 추종세력들이 생기면 진짜 전문가와 구별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한 분야에서 이름을 알렸다고, 마치 모든 걸 다 잘 아는 것처럼 함부로 나불거리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야말로 말만 그럴듯하게 내뱉는 아류들의 전성시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고수인 척하다가 말과 다른 행동이 드러나거나 거짓으로 뒤덮인 말이 탄로 나 추락하는 사람들도 수시로 나타납니다. 가벼움을 쫓는 인터넷 매체의 특성상 어쩌면 진짜 고수들은 말의 무게 때문에 함부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논어》 전체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소재가 말입니다. 말의 중요성에 대한 언급이 무려 33번이나 나옵니다. 말은  조심해야 하고, 바르게 해야 하고, 행동이 앞서야 한다는 가르침이 계속해서 반복됩니다. 공자는 말에 대한 신중함을 정말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는 제자들에게 가급적 말을 삼가고 행동이 앞서는 사람이 되라고 강조했습니다. ‘공자가 마을에 머무를 때에는 지나치게 조심스럽게 행동하여 마치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였다.(향당편 孔子於鄕黨 恂恂如也 似不能言者 공자어향당 순순여야 사불능언자) 제자들의 증언에 울림이 더해지는 이유는 스승이 먼저 실천으로 자신의 말을 입증해 이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공자는 ‘행동보다 말이 지나친 것을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고 말했습니다.’(헌문편 君子恥其言而過其行 군자치기언이과기행) 어쩌면 요즘의 우리들에게 헛되고 거친 말들이 넘쳐나는 이유는 부끄러움이 사라져 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논어》를 구조적으로 살펴보면 배움의 즐거움으로 시작하여 말의 중요성으로 끝납니다. 《논어》의 가장 마지막 문장은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 수 없다.’(요왈편 不知言 無以知人也 부지언 무이지인야)입니다. 《논어》의 편집자들도 마지막까지 말이 중요하다고 당부했습니다.




〈기려심매(騎驢尋梅)〉에서 기려(騎驢)는 나귀를 타고 간다는 뜻이고, 심매(尋梅)는 매화를 찾는다는 말입니다. 조선 시대에는 선비가 나귀를 타고 가는 다양한 형태의 그림이 그려졌습니다. 혼자서 타고 갈 때도 있고, 하인과 함께 가기도 하는데 이와 같이 인물과 나귀에 초점을 맞춘 그림에는 대부분 ‘기려’라는 제목이 붙습니다. 거기에 배경이나 상황을 조금 더 신경 쓰면 기려에 추가 제목이 붙습니다. 물을 건너면 도수(渡水), 친구를 찾아가면 방우(訪友), 정처 없이 떠돌면 행려(行旅), 신선이 등장하면 선도(仙圖)등이 대표적입니다.


 심매는 중국 당나라의 시인이었던 맹호연(孟浩然)의 일화에서 유래된 제목입니다. 맹호연은 과거에 낙방한 이후 은거하면서 자연에 대한 시를 짓고 살았습니다. 그는 이른 봄이 되면 가장 먼저 매화를 찾아서 눈길을 헤치고 다녔다고 합니다. 이러한 그의 일화가 조선에 전해지면서 매화를 찾아 나서는 그림에는 심매(尋梅)나 탐매(探梅)라는 제목이 붙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관직을 얻지 못하였지만 학문을 닦고 시를 지으며 자연의 정취를 즐기는 맹호연의 삶을 높이 평가하였습니다.


 이 그림은 거친 산 사이로 녹지 않는 눈을 헤치며 홀로 터벅터벅 길을 나선 인물이 두드러지게 표현되었습니다. 나무를 포함한 모든 배경에는 황량함이 감돕니다. 그러나 겉옷을 단단히 챙겨 입은 주인공은 분위기에 움츠리지 않습니다. 냉랭한 눈이 가득해서 꽃은 어디에도 없어 보이지만,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을 꼿꼿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림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인물의 노란색 겉옷입니다. 만약 노란색이 화가가 의도한 색상이라면 추가적인 해석도 가능합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예부터 검은색, 하얀색, 파란색, 빨간색, 노란색 등의 5가지 색을 오방색이라 부르며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였습니다. 노란색은 만물을 성장시키는 흙과 방위의 중심을 상징하는 고귀한 색으로 여겨졌습니다. 주인공은 진짜 매화를 찾아서 가고 있는 중일까요? 아니면 자신만의 길을 가고 있는 중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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