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우 아빠 Oct 07. 2022

말징박기 (조영석)

천리마는 힘이 아니라 덕을 칭찬해야 한다

말징박기 - 조영석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천리마는 하루에 천리를 가는 힘을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천리에 도달하는 덕을 칭찬해야 한다. 

(헌문편 驥不稱其力 稱其德也 기불칭기력 칭기덕야)


 천리마는 하루에 천리를 간다고 알려진 말입니다. 1리(里)의 길이는 시대마다 다르게 적용되었지만 현재의 기준으로 변환하면 392.7m입니다. 이것은 1905년 조선 후기 대한제국 때에 제정되어 지금까지 사용되는 우리의 기준입니다. 중국도 시대에 따라서 1리를 497.9m부터 576m까지 다양하게 적용했지만 현재는 500m를 기준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결국 같은 단위라도 국가마다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천리마는 현재 우리 기준으로는 392.7km, 중국의 기준으로 500km를 하루에 달릴 수 있는 말이 되는 셈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하루에 천리를 가는 말은 없습니다. 천리마는 고대부터 최고의 좋은 말을 뜻하는 단어였지만 상상의 동물에 가깝습니다.


 이 구절의 기본적인 해석은 자질보다 목표를 실천하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천리는 결코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닙니다. 만약 천리를 하루에 갈 수 있다면 기본적으로 강한 힘과 함께 참고 견디는 성품이 뒤따라야 합니다.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태도가 갖춰지지 않으면 천리를 갈 수 없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천재라고 소문이 자자했던 사람이 성인이 되어서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할 때, 이와 같은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백락상마(伯樂相馬)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백락이라는 사람이 말을 잘 고른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좋지 않은 환경에서는 평범하게 살다가 죽는데, 백락은 말의 기질을 잘 알아보고 그에 맞게 대하여 천리마로 성장시킨다는 얘기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 고사성어가 나오는 《마설(馬說)》에는 곁에 천리마를 두고도 알아보지 못하는 일화도 나옵니다. 천리마가 천리를 달리기 위해서는 다른 말보다 먹이를 많이 먹고 꾸준한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환경을 제공하지 못하니 아무리 천리마라도 보통 말처럼 보일 뿐입니다. 좋은 말이 옆에 있어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은 세상에 천리마는 없다고 탄식합니다. 천리마가 환경에 의해 길러지듯 사람도 자신의 배경이 못마땅하면 바꿔야 합니다. 동물과 달리 사람은 얼마든지 스스로 환경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때로는 다른 사람들보다 좋지 않은 환경이 오히려 자극제가 되기도 합니다. 영웅은 혼란의 시대에 등장하고 시련을 겪을수록 더욱 강해집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인재를 선발하거나 동료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고민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대게 그 선택은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냐 아니면 성품이 좋은 사람이냐를 두고 벌어집니다. 두 가지를 다 갖추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는 경우에는 어느 한 부분의 장점을 보고 선택해야 합니다. 이런 선택은 자신의 가치관과 별개로 상황에 따라 결정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함께 가야 할 사람이라면 성품이 좋은 사람이 낫습니다. 천리를 한 번에 가는 능력보다 천리를 함께 갈 수 있는 태도를 선택하면, 조금 부족하더라도 서로 격려하고 의지하면서 사이좋게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징박기는 말발굽에 편자를 붙이는 작업을 말합니다. 말은 발굽을 보호하고 닳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쇠로 만든 편자를 붙입니다. 편자는 알파벳의 U와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편자를 붙일 때 쇠로 만든 못을 박아 고정시키는데 그것을 징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말징을 박는 작업은 편자를 고정시키는 일을 말합니다. 


〈말징박기〉는 현대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풍속화입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접해왔던 조선의 풍속화들과 전혀 다른 결이 느껴집니다. 마치 근현대 작가의 그림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 그림 하나로도 조용석이 얼마나 뛰어난 실력을 가졌는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그가 풍속화의 대가로 인정받는 김홍도보다 59년이나 앞선 선배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놀랍습니다. 이 그림은 마치 조선의 일상을 그대로 보는 기분이 듭니다.


 그림은 여러 가지 역할이 있습니다. 사진이 없던 시기에 그림은 정확하고 생생한 현장의 기록이라는 역할도 담당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물의 동작과 위치, 종류별 연장의 쓰임새까지 고려하면, 이 그림은 사진의 역할을 대신하는 풍속화로도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선과 색의 변화를 추구한 〈말징박기〉에서 나무는 다른 방식으로 두드러지게 표현하였습니다. 나무줄기가 몸을 비틀며 올라가는 듯한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묶여 있는 말이 내지르는 울음소리가 사방으로 뻗치는 효과를 나무의 형태로 표현한 것 같습니다. 


 그림의 오른편에는 “사물의 형상을 잘 그리기 위해서는 남의 그림을 베끼는 행위를 부끄럽게 여기고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을 그려야 한다.”(狀物之妙 羞從絹素想承 作生活 상물지묘 수종견소상승 작생활)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것은 조영석이 가진 그림에 대한 기본 원칙이자 예술에 관한 철학입니다. 그가 문인화가로서 그림을 얼마나 사랑하고 가치를 어디에 두었는지 잘 알 수 있는 문장입니다. 




《단원 풍속도첩》 말징박기 - 김홍도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이전 17화 현이도 (조영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