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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우 아빠 Oct 09. 2022

추순탁속 (최북)

가난하면서 원망을 하지 않기는 어렵다

추순탁속(秋鶉啄粟) - 최북 (출처 : 공유마당 CC BY)


선비가 도에 뜻을 두고도 좋지 않은 옷과 좋지 않은 음식을 부끄러워한다면, 그 사람은 함께 이야기할 만한 가치가 없다. 

(이인편 士志於道 而恥惡衣惡食者 未足與議也 사지어도 이치악의악식자 미족여의야)


 공자는 가난하면서 원망을 하지 않기는 어렵고, 부유하면서 교만하지 않기는 쉽다고 말했습니다.(헌문편 貧而無怨難 富而無驕易 빈이무원난 부이무교이) 그만큼 가난은 사람을 피폐하게 만드는 강력한 힘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셈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궁핍해도 정당한 방법으로 환경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풍족한 재산과 높은 지위는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지만 정당하게 얻지 못한다면 가져서는 안 된다. 가난과 천한 신분은 많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지만 정당하게 벗어나지 못한다면 피해서는 안 된다. 군자가 인에서 멀어진다면 어떻게 자신의 이름으로 당당하게 경지에 오를 수 있겠느냐? 군자는 밥 먹는 시간에도 인에서 어긋남이 없으니, 황당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반드시 인에 의지해야 하느니라.” (이인편 富與貴 是人之所欲也 不以其道得之 不處也 貧與賤 是人之所惡也 不以其道得之 不去也 君子去仁 惡乎成名 君子無終食之間違仁 造次必於是 顚沛必於是 부여귀 시인지소욕야 불이기도득지 불처야 빈여천 시인지소오야 불이기도득지 불거야 군자거인 오호성명 군자무종식지간위인 조차필어시 전패필어시)


 사회가 혼란해질수록 빈부의 격차는 심해집니다. 이러한 상황이 가속되면 가난에서 쉽게 벗어나기 어려운 환경이 만들어집니다.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환경에서 살다 보면 희망의 크기도 작아지기 마련입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희망에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들은 한탕주의에 물들기 쉽고, 한탕주의가 만연한 곳 주위에는 자연스레 사기가 기승을 부립니다. 이렇게 비정상적인 욕망들이 꿈틀대다 보면 돈이 최고의 가치가 되는 분위기가 조성됩니다. 결국 돈이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인식이 퍼지고 사람들을 망가트립니다. 사람이 사람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세상이 됩니다. 


 돈에 대한 욕망은 ‘적당히’가 없습니다. 욕망에 한번 빠지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만족감이 채워지지 않습니다. 평생을 먹고살 만큼 충분한 양을 모아도 더 많은 돈을 찾아 돌아다닙니다. 돈을 잘 버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삶의 소중한 가치와 행복은 결코 돈과 소유에서 찾기 어렵습니다. 소유의 기쁨은 대부분 스치듯 사라집니다. 진정한 행복은 대부분 사람과 행위에서 나옵니다. 계산적으로 사귀지 않고 순수하게 어울릴 수 있는 사람과 함께할 때,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일에 열정을 다하여 몰입하면서 성장을 느낄 때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행복은 결과와 상관이 없습니다. 과정만으로도 충분한 만족감을 얻습니다.  




 〈추순탁속(秋鶉啄粟)〉은 조를 먹는 가을의 메추라기라는 뜻입니다. 최북이 자기 멋대로 인생을 살고 술에 자주 취했다고, 그의 작품마저 거친 체취로 채워졌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그는 표범이나 꿩 그리고 매처럼 섬세한 붓놀림이 필요한 동물도 잘 그렸습니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에게 가장 높게 평가받았던 동물 그림이 메추라기였습니다. 메추라기는 메추리라고도 부르는데 꼬리가 짧고 통통한 생김새가 특징입니다. 우리에게는 메추리알을 낳는 동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최북은 메추라기를 잘 그려서 ‘최메추라기’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고 합니다. 


 메추라기는 깃털의 색이 누더기 옷을 입은 모양과 닮고, 거처를 정해두지 않고 생활하며, 번식기에는 일부일처제로 한 쌍이 함께 생활하기에 겸손하고 청렴한 선비를 상징하는 동물로 비유되었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가난하더라도 만족할 줄 아는 정신을 메추라기로 표현하였습니다. 동물의 특성을 잘 살펴서 의미를 부여하고 그림으로 표현하는 과정이 흥미롭습니다.  


 이 그림에는 두 마리의 메추라기가 등장합니다. 한 마리는 먹이를 쪼고, 다른 한 마리는 조 이삭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비교적 단순한 형태의 그림입니다만 메추라기의 몸에 부위별로 다르게 난 털을 보면 꽤 정성을 들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 조의 잎들은 힘을 잔뜩 뺀 느낌으로 이삭의 풍성함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 줍니다. 조의 이삭도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모양으로 겸손함을 상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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