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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May 05. 2021

크리미 빵

치유 둘.


 “바쁘냐? 집에 있으면 밤 갖다 주러 가게.”

  뒷산에 가서 며칠 동안 밤을 줍다 보니 포대로 한 자루나 되었다. 딸에게 택배로 부치려니 양이 많아 직접 갖다 주려고 전화를 걸었다. 일 년에 딸집에 고작 두어 번 가는데, 그것도 아침 일찍 전화를 걸어 무작정 간다고 하니, 딸애는 놀라면서 내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냐며 물었다. 딸을 안심시키고 딸내로 남편과 서둘러 출발했다.



  공주에서 수원 딸집까지 세 시간쯤 걸려 도착했다.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남편과 같이 무거운 밤 포대 자루를 내렸다. 딸이 현관문을 열며 우릴 반기더니 밤 자루를 보고는 놀랐다. 딸애가 줍느라 고생했겠다며 걱정하면서도 좋아하는 눈치였다.



  딸이 차려준 밥을 먹은 후, 밤을 압력밥솥에 올려놓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 딸의 뒷모습을 보다가 싱크대 위에 있는 '크리미빵'을 보았다. 나는 빵을 집어 봉지를 뜯으면서 딸에게 물었다.


  "너도 이 빵 좋아하냐?"

  딸이 설거지하다 말고 고개를 돌려 쳐다보았다.

  “응, 엄마도 좋아해?”

  딸이 이 빵을 좋아한다는 말에 나는 빵 가운데를 자르려다 말고, 크림이 들어있지 않은 끄트머리를 한입 베어 물었다.



  “나는 빵 중에 이게 제일 맛있어. 빵에 들은 크림이 정말 맛있지 않냐? 니네 집에 다니면서 배고프면 휴게소에 들러 이 빵을 자주 사 먹어. 바나나우유랑 같이 먹으면 배도 든든해서 좋아. 너도 꼭 우유랑 먹어라.”   


  나는 50여 년 전 아가씨 때부터 이 빵을 좋아했던 것 같다. 그때는 이 빵이 귀했다. 간신히 빵 하나 사면 먹기가 아까워, 네 등분해서 한 조각씩 종일 아껴먹었었다. 딸이 빵을 먹고 있는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엄마 근데, 금방 밥 먹고 배부르지 않아? 군것질도 안 하는 양반이 웬일이래. 그리고 배고프면 휴게소에서 밥을 먹어야지, 끼니를 빵으로 때우면 어떻게?”


  딸아이가 걱정스레 눈을 흘겼다.

  딸애는 어릴 때부터 빵에 크림만 골라 먹었다. 나도 크림을 좋아하지만, 딸이 안 먹는 끄트머리만 잘라서 먹고 크림이 들은 부분은 봉지에 담았다.     


  “이 빵은 자주 먹어도 질리지 않아. 너는 아직도 빵 먹을 때, 크림 있는 데만 홀랑 먹고 나머지는 버리냐?”

  딸이 어찌 알았냐는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우리 엄마 귀신이네. 내가 어릴 때부터 그랬어?”

  “말도 마라. 니 어릴 때부터 그렇게 먹지 말라고 혼도 내봤는데, 봉지에 끄트머리만 담아서 몰래 버리더라. 내가 그거 아까워서 남긴 거 다 먹었어.”

 딸은 내 말에 미안했는지 멋쩍어했다.

  “엄만, 그걸 그냥 버리지 왜 드셨데·····”          


  소파에 앉아 잠깐 눈을 붙인다는 게 오후 4시가 다 돼서 깼다. 딸이 잠에서 깬 나를 보고는 쟁반에 찐 밤을 가득 들고 왔다. 내가 칼로 밤을 반으로 쪼개자, 딸은 밤을 받아 들고 어릴 때처럼 작은 숟가락으로 퍼먹었다. 먹는 모습이 어릴 때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남은 밤을 까서 그릇에 담고는 서둘러 일어났다. 딸이 자고 가라지만 사위도 불편할 거고, 내 집이 편하다.



  남편과 함께 1층 주차장으로 내려오는데, 딸이 잠시 어디론가 달려갔다. 나는 차 앞에서 우두커니 서서 딸을 기다렸다. 잠시 뒤, 딸이 검은 봉지를 들고 저 멀리서 숨을 헐떡거리며 뛰어와서 내 손에 검정 봉지를 쥐여 줬다.


  “엄마, 이거 아버지랑 드셔. 더 사고 싶은데 가게에 몇 개 없네.”

  “이게 뭐냐?”

  나는 뭔가 싶어 봉지 안을 가만히 열어보았다. 그 속에 내가 좋아하는 크림빵 여러 개와 바나나우유가 들어있었다. 나는 순간 눈물이 울컥해 고개를 들지 못하고 딸의 손을 잡았다. 살림한다고 어느새 거칠어진 딸의 손이 안쓰러워 여러 번 쓰다듬었다.‘너는 이 어미에게 항상 기쁨이었다는 걸 기억해라.’라는 말이 나의 목구멍에서 타고 올라왔지만 다시 삼켰다. 자식은 속으로 사랑하라고 배웠다.



  “고맙다.”

  “엄마, 식사는 꼭 하고 빵은 간식으로 드셔.”

  딸이 나를 살포시 끌어 앉으며 말했다. 그러고는 쭈뼛거리며 돈 봉투를 내 손에 쥐여 줬다.

  “너도 애들 키우느라 쪼들릴 텐데, 매번 고맙다.”

  남편이 차에 시동을 걸자, 딸이 조수석 차 문을 열어주었다.

  “오늘 고생했어, 어여 들어가서 애들 오기 전에 좀 쉬어.”

  “엄마, 다음에 꼭 자고 가. 아버지도 조심히 운전하시고요.”



  차가 출발하면서 나는 창문 밖으로 손을 뻗어 딸에게 손을 흔들었다. 딸은 활짝 웃으며 두 손을 머리 위로 들고 하트 모양을 하더니 두 손을 번쩍 들어 흔들어 댔다.         



  차가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나는 검정 봉지에서 크리미빵을 꺼냈다. 딸이 하던 말이 생각났다. 배가 불렀지만 딸아이가 사준 크림빵을 네 등분으로 나누어 입안에 꾸역꾸역 넣었다. 우유를 마셨는데도 목이 메어왔다.

  




엄마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 보니 크리미 빵 봉지가 식탁 위에 있었습니다. 봉지를 버리려고 보니 엄마가  가장자리만 먹고 남겨둔 크림이 잔뜩들은 빵이 봉지 안에 있었습니다. 배가 부른데도 입에 우걱우걱 넣으며 눈물이 났습니다. 엄마의 입장이 어땠을지를 생각하며 쓴 글입니다. 엄마의 입장에서 글을 쓰다 보니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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