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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Mar 21. 2021

어항 속의 물고기

상처 다섯.

중학교 1학년, 아버지 마흔둘

 



  나는 14살, 중1이다. 집과 학교에서의 행동이 완전히 다르다. 학교에서는 밝고 활달하지만, 집에서는 말없이 조용하다. 나는 중학생이 되면서 긴 머리카락을 자르고, 귀밑 3센티 단발머리를 했다. 반곱슬머리에 머리까지 짧아지니, 부스스하게 뜬 머리가 싫어 노란 고무줄로 질끈 묶었다. 교복은 내 몸보다 한참 커서 치마허리 단을 두 번이나 접어 입었다.



  피부는 까무잡잡하고, 넓은 미간에 눈에는 쌍꺼풀이 없고, 코는 낮다. 입이 커서 웃을 때마다 드러나는 삐뚤빼뚤한 치아가 보기 싫어 손으로 입을 가린다. 거울 속 내 얼굴을 이리저리 살펴보아도 예쁜 구석이 하나 없다. 눈동자는 한 곳을 응시 못하고 이리지리 흔들리고, 어떤 말을들어도 핀잔 같아 눈물이 차오른다.



  나는 선생님 심부름으로 교무실에 가거나 환경미화를 도맡아 하며 칭찬을 구걸한다. 당번인 친구들을 대신해 물을 떠다 놓기도 하고 칠판을 닦고 지우개를 털어놓는다. 내가 뭐든 하지 않으면 사랑받을 수 없을 것 같아서다.



  공부만큼은 예외다. 공부하려면 머릿속이 생각이 많아진다. 생각에 꼬리에 꼬리를 물며 머릿속은 이미 딴세상이다. 수업 시간엔 멍하니 창밖을 보거나 선생님과 아이들의 모습을 관찰한다. 그러다가 쉬는 시간이 되면 친구들에게 실없는 농담을 던지거나 몸개그 까지 한다. 이렇게 하면서 내 마음을 숨긴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고 싶지 않아, 지름길을 두고 돌고 도는 길을 택했다. 길가에 활짝 핀 노란 개나리꽃구경도 잠시, 집이 가까워질수록 표정이 굳어지면서 가슴도 답답해졌다.



  우리 집은 3층이다. 1층 편의점을 지나 상가 입구로 들어가 계단을 오르면, 2층에 미용실이 보인다. 그곳에서 3층까지 남은 열 계단을 아주 천천히 큰 숨을 들이마시며 심호흡하며 오르지만, 마음이 여전히 진정되지 않는다.



  대문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자, 누군지 묻는 소리도 없이 문이 열린다. 그리고는 현관문만 빼꼼히 열어준 엄마는 잘 다녀왔냐는 눈 맞춤조차도 없이 휙 돌아서서 안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잠근다.

‘딸깍!’

고요한 거실에 울려 퍼지는 거리는 문잠그는 소리가 내 심장을 친다. 내가 엄마에게 무슨 잘못을 한 걸까?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거실로 나왔다. 거실은 북향에 커튼까지 쳐져 있어 낮인데도 어둑했다. 집이 조용해 걸을 때마다 바지에서 쓸리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벽시계 초침 소리에 긴장감이 맴돌았다. 적막감이 흐르는 거실에 앉아 안방 문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나는 엄마를 부르지 않는다. 지난번에 엄마를 부르다가 아무 소리가 없어 안방 문을 두드린 적이 있었다. 엄마는 문을 거칠게 잡아 열고는 얼굴가득 인상을 쓴 채로 나를 쏘아봤다. 나는 몸이 굳어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엄마가 도대체 나에게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없지만, 겁이 나서 그때 이후로 엄마를 부르지 않고 무작정 기다렸다.



  나는 허리를 쭉 편 채로 소파에 앉았다. 모든 것이 반듯한 집에서만큼은 학교에서와는 다르게 나도 흐트러짐이 없어야 할 것 같았다. 그때 엄마는 잠겨있던 방문이 열고나왔다. 나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슬리퍼 소리를 내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나도 뒤따라가 엄마와 거리를 유지한 채 마네킹처럼 섰다. 엄마 앞에 있으면 내 목구멍으로 침 삼키는 소리마저도 조심스럽다. 엄마가 냉장고 문을 열자, 차디찬 냉기가 왈칵 쏟아져 나오면서 내 마음까지 서늘해졌다.



  엄마는 검은 봉지에 든 콩나물을 꺼내, 큰 쟁반에 쏟아 부었다. 콩나물에는 검은색 껍질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엄마는 입을 꾹 닫은 채 무표정한 얼굴로 쟁반을 들고 내 쪽으로 내밀었다. 나는 입 꼬리를 최대한 올려 미소를 지으며 양손으로 쟁반을 받아서 주방과 거실 사이 바닥에 앉았다.



  다른 날보다 쟁반 위에 콩나물이 더 수북이 쌓여 있었다. 콩나물을 하나씩 들고 검정 껍데기를 떼어 스테인리스 그릇에 손질한 콩나물을 담으니 작고 무게도 없는 콩나물이 그릇에 부딪히며 소리를 냈다.

'토~독!'

그 소리가 정겨웠다.



  엄마가 와서 힐끔거리며 한숨을 쉬었다. 빨리하라는 신호다. 손을 좀 전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드디어 손질이 끝나 쟁반을 양손에 들고 식탁 위에 올려뒀다. 엄마라는 말이 나의 목구멍 아래서만 멈칫거렸다.


  “다했어요.”


  ‘아이고 잘했구나.’라고 칭찬받고 싶지만, 엄마는 여전히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엄마가 다른 일을 시킬까 싶어 주방과 가까운 소파 끄트머리에 엉덩이를 반쯤 걸터앉아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엄마는 피부가 희고 선이 또렷한 얼굴에 윤기가 흐르는 검은색 단발머리를 했다. 눈이 얼굴의 반을 차지할 만큼 큰 반달 눈에 애교살이 도톰했다. 코는 오뚝하고 입술은 바르지 않았는데도 선홍색을 띠고 있다. 팔다리가 가느다란 깡마른 몸매에 비해 유독 배만 볼록 나왔다. 엄마 배 속에는 남동생이 들어 있었다. TV에 나올 것처럼 예쁜 엄마를 나는 하나도 닮지 않았다.



  잠시 후, 엄마는 화장실로 가서 걸레를 가져와 내 손에 툭 던지듯 주고 주방으로 갔다. 새하얀 걸레를 손에 들고, 거실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너무나 큰 거실이 원망스러웠다. 매일 닦아서인지 걸레에 묻어나는 먼지도 없었다.



  처음부터 거실에서 엄마를 돕기 위해 기다린 것은 아니었다. 내가 방에 있을 때면 엄마는 주방에서 그릇 부딪치는 소리를 내거나, 방문을 세게 닫거나, 발을 쿵쿵거리거나,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를 냈다. 그럴 때마다 밖으로 나와 엄마 곁에 서면 엄마는 그제야 조용해졌고 내게 집안일을 줬다.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은 관심받기 위한 노력이고, 사랑받기 위한 애씀이었다. 이렇게 하면 언젠가는 새엄마가 웃으며 나에게 '현이야' 하며 말을 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밥 먹으라는 소리와 동시에 거실 닦기를 끝냈다. 식탁엔 나와 남동생의 밥만 차려져 있었다. 나는 발가락 끝을 가까스로 새워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엄마는 식탁에 등을 돌린 채 아버지의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잘 먹겠습니다."


  동생과 나는 합창을 하며 수저를 들었다. 식탁엔 어제 먹었던 쓰고 억센 고들빼기김치와 배추김치, 퉁퉁 부은 어묵국이 있었다. 뜨거운 국과 밥을 먹는데, 이상하게도 입속에서 차가웠다.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반찬 없이 맨밥만 먹고 있는 나보다 한 살 어린 남동생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밥을 먹을 때 말을 해서도, 소리 나게 씹어도, 밥풀을 남기거나 흘려도 안 된다고 했다. 밥 먹던 숟가락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나는 소리에도 혼이 났다. 아버지 저녁 준비를 마친 엄마는 안방으로 들어가서 여전히 문을 잠갔다. ‘딸깍!’ 하는 소리가 칼끝으로 변해 내 심장을 찔렀다.



  나는 남은 밥을 어묵국에 말아 꾸역꾸역 입속에 넣었다. 그릇을 개수대에 담으며 그릇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날까 조심스러웠다. 그때, 바로 초인종이 울렸다. 아버지가 왔다. 잽싸게 거실에 있던 어항을 가로질러 현관 앞에 서서 남동생과 몸 장난을 쳤다. 방에서 나온 엄마는 립스틱을 발라서인지, 아까보다 더 예뻐 보였다. 엄마는 나와 동생에게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는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섰다. 엄마에 다가가고 싶지만 유리관을 입고 있는 것 같아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빨리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현관에 들어선 아버지에게 나와 동생은 허리를 90도로 숙여 합창하듯 깍듯하게 인사했다.


  “다녀오셨어요. 아버지.”

  “그래.”


  아버지에게서 돌아온 것은 무뚝뚝한 한마디 대답뿐이었다. 아버지는 엄마가 있으면 우리를 차갑게 대했다. 엄마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눈웃음을 지으면서 아버지 팔을 낚아채고는 나를 힐끗 쳐다보며 안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닫았다. 엄마는 나와 동생에게 아버지가 오면 현관에서 인사만 한 후 각자 방으로 들어가서 나오지 말라고 했었다. 나와 동생은 안방 문 앞에 잠시 섰다가, 거실에 있는 어항 속 물고기들을 말없이 바라 봤다. 그리고 천천히 각자 방으로 돌아갔다.         




어항속의 물고기, 그림 : 진우



  어두운 내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고, 불을 켜지 않은 채 문 앞에 섰다. 언제부턴가 어두움에 익숙해졌다. 아버지가 나오길 한참을 기다리다가 문 앞에 웅크리고 앉았다. 안방 문이 열리고 아버지와 엄마의 슬리퍼 끄는 소리가 났다.


 문틈 사이로 거실 불빛이 새어들었다. 엄마와의 약속으로 나갈 수 없는 나는, 문에 귀를 바짝 대고 최대한 귀를 쫑긋 세우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바깥소리를 들으며 상상했다.



  매콤한 고춧가루 냄새로 온 집안이 매운걸 보니 저녁 메뉴는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돼지고기를 넣은 김치찌개다. 엄마는 다양한 목소리를 가졌는데, 아버지 옆에서 수다스러운 지금은 상냥하고 애교 있는 목소리였다. 아버지는 찌개를 한 숟갈 떠서 입에 넣고는 후루룩하는 맛있는 소리를 냈다.


  "아우~ 국물이 끝내주네."


  아버지의 칭찬에 엄마는 아버지 앞에 턱을 괴고 앉아 활짝 웃겠지. 엄마가 내게 웃어준 적이 있던가. 나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 보이는 엄마와 아버지의 얼굴을 직접 보고 싶었다. 내가 아버지에게 엄마처럼 웃음을 주는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나는 거실로 나가는 걸 포기하고 어둠 속에서 책상등 스위치를 손으로 더듬거리며 켰다. 그리고 라디오도 켰다. ‘기다린 날도 지워질 날도 다 그대를 위했던 시간인데······’ 이승환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의자를 조심스럽게 빼내어 책상에 앉아서 서랍 속에 깊숙하게 숨겨둔 일기장을 꺼내들었다.



  A5 크기의 양장커버로 된 두툼한 일기장을 손에 든 순간,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일기장은 그동안 흘린 눈물 자국으로 말라붙어 페이지가 제대로 넘겨지지 않았다. 글자는 눈물로 번져 알아볼 수가 없었다. 나는 구깃구깃해진 종이를 억지로 열어 닥치는 대로 적어 내려갔다. 친엄마 생각이 사무치게 밀려왔다.



  ‘엄마 너무 보고 싶어요. 아버지가 스무 살이 되면 성인이 되어 엄마를 보러 갈 수 있다고 했어요. 지난번 엄마가 아버지 몰래 찾아와 밥을 같이 먹고 옷도 사준 날, 새엄마에게 들켜  종아리도 맞고 옷도 찢겼어요. 아버지는 고래고래 소리치며, 당신과 사는 동안은 엄마를 절대로 만나면 안 된다고 했어요. 제가 엄마를 만나는 날까지 어떻게든 참아 볼게요.’



  어디에도 털어놓을 수 없는 말을 일기장에 썼다. 터져 나온 눈물이 계속해서 발그스레해진 볼을 타고 내려왔다. 턱 끝에 맺혀있는 눈물이 한 방울씩 일기장에 떨어졌다. 눈물이 글자를 타고 까맣게 물들어 가면서 내 마음도 타들어 갔다.



  눈물이 내 마음을 품어주는 것 같았다. 감정에 북받쳐서 양쪽 어깨가 미세하게 들썩거렸다. 일기장이 흠뻑 젖을 만큼 눈물이 쏟아지지만, 울음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누구도 내 울음을 받아줄 사람이 없었다.



  식사를 마친 아버지와 새엄마가 방으로 들어가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는 안방 문을 잠갔다.

딸. 깍!






p.118 마땅히 받아야 할 사랑이었지만 부모가 알지 못해 줄 수 없었다. 받지 못한 상실이며, 결핍이 무의식에 있다. 이럴 때 아이는 내가 못나서 부모가 주지 않았다고 믿는다. 아이는 자신이 더 잘하면 엄마가 줄 거라고 믿고 엄마를 기다린다. 어릴 때의 충족되지 못한 욕구와 공감받지 못한 감정은 결핍을 채우고자 하는 갈망으로 남는다. 갈망은 대상에 대한 강한 집착이다.

최희수, 푸름아파 거울육아, 한국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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