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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May 16. 2021

공벌레처럼

상처 셋.

초등학교 6학년, 엄마 나이 마흔셋



  그녀는 내 머리채를 잡고는 흔들었다. 묶여있던 머리카락이 져나오며 헝클어졌다.



  "왜 말을 안 들어. 하지 말라면 하지 말아야지!"


  그녀는 높고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아침에 차분하게 디스코 머리를 땋아주던 그녀가 아니었다. 나는 그녀를 피해 방문 뒤로 들어가 문손잡이를 붙잡았다. 그렇게있다가는 더 맞을 것 같았다. 머리가 화끈거리고 심장이 미친 듯 요동쳤다. 제발 이 시간이 멈추기를 간절히 바랐다.  몸을 벽 쪽으로 밀착시키고 문손잡이 움켜 잡았다. 그녀는 무거운 발소리를 내며 내 쪽으로 걸어왔다.


  “밖으로 나와!”

  문 뒤에 숨어 벌벌 떨고 있는 내게, 그녀는 소리쳤다. 그녀는 문틈 사이로 손을 넣어 나를 잡아채려 했다. 나는 손잡이를 꽉 붙잡았다. 그녀는  문손잡이를 세게 잡아당겼고, 그 힘을 이길 재간이 없었다. 나는 머리를 손으로 감싼 채 웅크려 앉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슨 잘못을 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녀의 화가 가라앉기를 바랐다.



  "구석에서 나와, 내 앞으로 오라고!"

나는 두려웠다. 그녀는 자기 쪽으로 계속해서 오라고 말했다.

  "내가 나오라면 나와야지 왜 말을 안 들어!"

  그녀의 목소리는 극도로 흥분해서 떨렸다. 나는 몸이 얼어붙어 꼼짝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구석에 있는 나를  닥치는 대로 밟았다. 팔, 다리, 등을 맞을 때마다 머릿속이 온 통 검은색이었다. 번개가 번쩍이는 것처럼 불빛이 잠깐씩 보였다. 너무 아파서 소리를 낼 수도 없었고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수치심이 들었다. 나는 사랑받을 가치도 없는 것 같았다.




  이대로 안 되겠다 싶어 몸을 있는 힘껏 움츠렸다. 마당에서 갖고 놀던 공벌레처럼 몸을 말았다. 공벌레처럼 등에 딱딱한 갑옷을 입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자그마한 벌레가 부럽긴 처음이었다. 

  '이게 다 집 나간 아버지 때문이야. 아버지가 람만 안 났어도 엄마가 이러지 않았을 텐데.'




아버지가 열 살이나 어린 젊은 여자와 바람이 나서 집 근처에 살림을 차린 그때부터 엄마의 폭력이 시작되었다. 엄마는 작은 일에도 화를 내고 얼굴은 굳어 있었다. 예전에 내가 알던 부드러운 엄마가 아니었다. 엄마는 아버지의 외도와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폭언, 폭행으로 당신의 불안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고, 우울증 약을 먹었다. 나를 지켜주지 못했다.




  나는 더 이상 울 힘도, 잘못했다고 말할 힘도 없었다. 점점 몸에 힘이 빠져나가며 몸이 축 늘어졌다. 그때쯤 엄마의 발길질도 멈추었다.




잠시 후 그녀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였다. 엄마의 눈빛과 표정이 내가 알던 엄마로 돌아와 있었다. 그녀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놀란 눈치였다. 나를 슬픈 눈으로 바라봤다.

  "그러게, 왜 엄마 말을 안 들어. 하지 말라면 하지 말지. 다음부터 엄마가 하지 말라면 하지 마."



  엄마의 목소리가 평소 톤으로 돌아왔다. 그제야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그대로 옆으로 누워 두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네."



  엄마는 주방으로 갔고, 그릇 소리에도 몸이 놀라 몸을 움찔거렸다. 나는 그대로 누운 채로 눈물이 흘러나왔다. 눈 끝에 모인 눈물이 바닥으로 떨어졌고, 바닥이 모인 눈물이 흥건해지면서 내 귀도 머리카락도 적셨다.



  자개장 바닥 사이에 잃어버린 내 연필과 머리끈이 어렴풋하게 보였다. 방바닥에 떨어진 내 머리카락도 보였고 벽지가 눈에 들어왔다. 아이보리색에 회색 다이아몬드 모양이 촘촘하게 그려져 있는 벽지였다. 다이아몬드 개수를 천천히 세었다. 세다가 잃어버리면 다시 세기를 반복했다. 개수를 세다 보니 다리와 등에서 화끈거리는 느낌이 잦아들었다.



바닥에 찬기가 느껴져 몸이 추워졌다. 나는 안간힘을 다해 다리를 웅크려 손으로 감싸 안았다. 공벌레처럼 몸을 움츠렸다. 






엄마의 우울증이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이 우울증이 학대나 무시를 야기하는 위험 요소라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p.89

우울증이 있는 엄마 밑에서 자란 아이는 엄마를 웃게 하는 일이 '자신의 일'이라고 믿는다. p.91

오카다 다카시, 나는 상처를 가진 채 어른이 되었다, 프런티어



매를 맞고 자란 사람은 내 아이는 절대 때리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어린 시절에 부모에게 맞았던 감정이 무의식에서 떠올라 요동치면 자기도 모르게 아이를 때리고 있지요. 몸이 기억하는 것은 생각 없이 바로 반응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과연 나 같은 사람을 엄마라고 할 수 있나' 싶어 죄책감이 들고 고통스럽지요. 생각과 의지로 통제하려고 하지만, 일정한 한계를 넘어가면 또 되풀이됩니다.

p.9,  최희수, 푸름아빠 거울육아, 한국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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