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우 May 20. 2021

부적

상처 둘.

초등학교 6학년 여름, 엄마 나이 마흔넷




 엄마 얼굴에 핀 기미가 곰팡이처럼 거뭇해지고 있었다. 처음에 주근깨 같이 작았던 기미가 아버지가 집에 오지 않자 양쪽 볼까지 번져갔다. 정작 그녀는 얼굴에 관심도 없었다. 엄마는 고모와 통화 중이었다. 고모는 전주에서 양계장을 크게 했는데 집장사를 하는 아버지는 급한 자금이 필요할 때면 고모에게 돈을 빌렸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평소에 고모를 어려워했다.



  “고모, 현이 아빠가 바람났어요. 집에 안 들어온 지도 한참 됐고요. 동네에 젊은 년이랑 바람이 났다고 소문이 나서 찾아가 보니, 진짜로 살림까지 차렸더라고요. 저 이제 어떻게 살아요! 고모가 현이 아빠한테 얘기 좀 잘해주세요. 제발 부탁드려요.”


  통화를 마친 엄마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전화번호가 적힌 수첩을 이리저리 넘겨댔다. 잠시 후 그녀는 자개장 문을 열어 손수 만든 남색 옷을 꺼냈다. 카라가 있고 앞쪽에 단추가 여러 개 달린 상의는, 어깨가 봉긋 솟아 꽃봉오리 모양을 하고 있었다. 바지 안에 윗옷을 넣으니 그녀의 허리가 더 잘록해 보였다. 화장대 앞에서 어깨까지 닿는 머리카락을 동그란 굵은 빗으로 말아 드라이기 바람으로 물결치듯 진한 웨이브를 만들었다. 



  준비를 마친 엄마는 시장에 간다며 구두를 신었다. 작은 키가 콤플렉스였던 그녀는 10센티 통굽 구두를 신발장에서 꺼내 신었다. 나도 그녀를 슬그머니 따라나섰다.     



  우리 집은 인천 서쪽 끝이었고, 동구에 있는 시장에 가려면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걸렸다. 버스가 도착하자 초등학교 6학년인 나를 먼저 태우고 엄마는 내 앞에 앉았다. 점심이 지난 시각이라 여름 햇살이 더욱 뜨거웠다. 창문으로 내리쬐는 볕으로 그녀의 얼굴에 있는 기미가 도드라져 보였다. 열려있던 창문 사이로 바람이 들어와 그녀의 드라이로 정성스레 말은 머리칼을 흔들어댔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시끄러운 버스 엔진 소리, 낯선 사람들의 웅성거림, 울려 대는 벨소리, 열렸다 닫히는 문소리에 귀가 가고, 스쳐가는 바깥 풍경에 눈을 뺏기다 보니 지루할 틈이 없었다. 엄마는 가방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



  버스에서 내린 그녀는 종이에 적힌 주소를 보며 걸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언덕 위로 차곡차곡 쌓은 회색빛 계단이 보였다. 걸음이 빠른 그녀를 따라가자니 숨이 찼고, 이마에 맺힌 땀이 흘러내렸다. 숨을 헐떡거리며 계단을 오르니 골목이 나왔다. 깨진 보도블록 사이에서 검푸른색 이끼들이 자라고 있었고, 재래식 화장실에서 나는 오물 냄새가 동네를 가득 채웠다. 집집마다 유리창이 깨져있고, 누런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길가엔 허리가 굽은 할머니들이 쭈그리고 앉아 전봇대 전선에 얼기설기 어지럽게 엮인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곳은 내가 사는 동네와는 전혀 달랐다.     



  막다른 골목 끝, 대문에 꽂힌 빨간 깃발이 바람을 타고 흐느적거리며 우릴 반겼다. 깃발에 가까워질수록 향내가 진동했다. 점집은 이층이었다. 1층에는 세 명 정도 대기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모두 TV에 눈을 맞추고 말없이 앉아있었다. 나를 빤히 바라보는 한 아주머니의 눈동자는 죽어 있는 생선 같이 초점도 윤기도 없었다. 나는 그녀의 눈을 피해 엄마 손을 꽉 잡았다. 벽에 걸린 대형 괘종시계의 똑딱 거리는 초침 소리에 맞춰 내 심장 박동도 빨라졌다.



  안내하는 사람을 따라 2층으로 향했다. 계단에 발을 디딜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에 신경이 곤두섰다. 방으로 들어서자 점쟁이가 앉아서 창이 넓은 붉은색의 모자를 쓰고, 소매 폭이 크고 붉은색과 파란색, 흰색이 섞인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다. 엄마가 자리에 앉자 힐끗 보더니 책상 위에 쌀을 뿌렸다. 나는 엄마 어깨너머로 그를 살폈는데, 점쟁이는 검은 라인을 두껍게 그린 눈과 크게 립스틱을 바른 입술로 괴물 같아 보였다.



  "남편이 바람났지?"

  엄마는 놀란 눈으로 점쟁이에게 다가앉았다.

  "남편이 젊은 년이랑 바람나더니 아예 살림을 차렸어요. 헤어져 달라고 난린데 저는 억울해서 이혼은 못해줘요. 이때까지 고생하며 살았는데, 좀 살만하니 바람을 피우네요."



  엄마는 지쳐 보였다. 점쟁이는 쌀을 다시 뿌리고 엄마에게 골라보라고 했다. 그는 아버지가 돌아오려면 부적을 써야 한다고 했고, 엄마는 미리 준비해 간 돈 봉투를 꺼내 상위에 올렸다. 그는 양팔을 걷어 누런 종이를 펴고 핏빛 색 물감에 붓 끝을 적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저 부적으로 아버지가 돌아올 수 있을까?’ 엄마는 부적을 조심스레 가방에 넣으며 점집을 나섰다. 그녀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엄마와 나는 아무 말 없이 아까보다 더 빠른 걸음으로 그 우중충한 골목길을 빠져나왔다.     



  한참 걷다 보니 시장이 나왔다. 엄마는 기름에 막 튀겨 건져놓은 동그란 찹쌀 도넛을 내 손에 쥐어줬다. 나는 뜨거운 도넛을 한입 베어 물었다. 그녀는 다시 내 손을 잡고 시장을 걸었다. 후미진 귀퉁이에서 흠집 난 과일을 파는 할머니에게 사과 두 봉지를 샀다. 그녀는 무거운  봉지를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으로 내 손을 움켜잡고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또다시 여기저기 전화를 걸었다.     



  다음날 고모가 저녁쯤 도착했고, 엄마를 보자마자 끌어 앉고 등을 쓰다듬었다. 엄마는 흐느껴 울었다.

  “고생해서 돈 벌어 살만하니 처자식이랑 자식새끼들 버리고 젊은 년이랑 바람을 피워? 이 쳐 죽을 놈 같으니라고.”

  고모는 울고 있는 엄마의 손을 포개어 잡고 말했다.


  “동상, 내가 자네 고생한 거 알아, 내가 당장 가서 그 자식 머리채를 끌고 올 것이야! 걱정 말게!"

  고모는 아버지를 만나러 갔고, 기다리던 고모는 밤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고모와 통화한 엄마는 삑삑거리는 수화기를 붙들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그리고 전화를 어디론가 걸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더니 똑같아, 남편 정신 차리게 해서 데리고 온다더니, 고모도 그년한테 홀딱 넘어가서 그 집에서 잔 거야. 나한테 전화해서는 ‘올케 어쩌겠나, 동상이 그 여자 없인 못 산 데네. 헤어지라니 물에 빠져 죽겠다는데 어떡해. 자네가 사람 목숨은 살려줘야 않겠나.’ 하는 거야. 그년이 고모까지 구워삶은 거야.”


  나는 부적이 힘을 발휘해 아버지가 돌아올 날만 기다렸다. 시간이 갈수록 그녀 얼굴에 핀 기미는 검푸른 이끼처럼 얼굴 전체로 번져가고 있었다.





시간이 모든 상처를 치유하는 건 아니다.

모든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의 고통은 평생 감당해야 할 숙명 같은 게 아닙니다. 자라지 못한 나의 내면 아이를 어른이 된 내가 시간을 들여 배우고 살피며 안전하게 키워나갈 수 있습니다.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이고, 이는 곧 '성장'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삶의 진실을 이해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어른인 내가 어린 시절의 나를 다시 바라보아 주어야 합니다. 상처를 주었던 부모의 그 눈빛이 아니라 건강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말입니다. 그럴 때 자기 비난으로 벗어나 변화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배재현, 나는 가끔 엄마가 미워진다, 갈매나무, 2021, p.8




이전 03화 엄마의 유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