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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May 20. 2021

버려진 고무나무와 엄마

상처 넷.




1층 현관 입구 화단에 화분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모두 상태가 좋지 않은 것 버려진 화분 들이었다. 그중 잎이 몇 개 남지 않은 고무나무가 눈에 띄었는데 보름이 지나도록 그 자리에 있었다. 유독 고무나무가 눈앞에 아른거려 고민 끝에 주워오기로 했다.

저녁 무렵 지나는 사람이 없는 틈을 타 화단 안으로 들어갔다. 가까이서 화분을 보니 거미줄과 먼지로 뒤 덥혀있었다. 잠시 마음이 흔들렸지만, 큰 가방 안에 화분을 담았다. 나는 다 죽어가는 고무나무에 집착하는 걸까.


  집에 도착해 베란다에서 화분을 꺼냈다. 고무나무는 내 허리 정도 닿는 크기였는데 그에 비해 플라스틱 화분이 턱없이 작아 보였다. 고무나무 줄기는 비쩍 말라 가느다랬고 잎은 성한 곳 없이 찢기고 검붉은 반점 투성이었다. 그래도 붙어 있는 잎을 보니 살아날 것 같았다.

 분갈이하려고 꺼내니 화분 안에 작은 화분이 또 보였다. 큰 화분 안에는 흙보다 스티로폼이 가득 들어있었고 작은 화분 안은 뿌리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물구멍까지 뿌리가 삐져나와 자라고 있었다. 상처가 나지 않게 뿌리와 작은 화분을 분리하고 보니 흙 하나 없이 뿌리로만 엉키고 설켜 있었다. 마음이 답답해졌다.

엉킨 뿌리가 펴지지 않아 대야에 물을 받아 한참을 담가 뒀다가 물에 뿌리를 흔들며 펴서 새로운 화분에 옮겨 심었다. 이제야 고무나무가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았다. 물을 흠뻑 주고 베란다가 추울까 싶어 화분을 거실로 옮겼다.

매일 들여다보고, 거실에 들어오는 햇볕에 따라 화분을 이리저리 옮겨주기도 했다. 고무나무 잎도 닦고  물도주었 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새순이 올라왔다. 보고 있자니 어린 시절 나의 고무나무가 문득 떠올랐다.   





  내가 유치원에 다니기 전부터 우리 집에는 화초가 많았다. 베란다, 거실, 안방, 주방 집안 곳곳에 있었다. 엄마는 그중 거실에 있던 고무나무 곁에 오랜 시간 머물렀다. 긴치마를 입은 엄마는 양쪽 무릎을 꿇고 고무나무 잎을 손으로 바치고 걸레로 조심스레 닦았다. 잎을 하나씩 바라보며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고 엄마의 표정은 편안해 보였다. 엄마의 정성으로 고무나무는 늘 윤기가 흘러 반짝였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엄마는 고무나무 먼지 닦는 일을 나에게 시켰다. 나도 엄마가 하던 데로 고무나무 앞에 서서 손바닥 위에 잎을 올렸다. 내 손보다 3배는 컸다.  젖은 걸레로 닦으니 물기가 잎에 닿으면서 색이 진해졌다가 원래대로 돌아오는 게 신기했다. 재미도 잠시, 많은 잎을 닦으려니 이내 싫증이 났다. 그럴 때면 엄마는 나에게 용돈을 주며 달랬다.


  엄마는 바빴다. 재봉틀로 당신의 옷을 만들거나 자식들 옷을 만들어 입혔다. 시간을 쪼개서 텃밭에 고추와 깻잎을 심어 수확하기도 했다. 엄마가 집에 있어도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심심해지면 고무나무 옆에 앉아 잎을 쓰다듬거나 혼잣말을 했다.

  “엄마가  옷을 만들지 말고 나에게 관심을 주면 좋겠는데.”

  그러면 고무나무가 내 말에 귀 기울이는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의 고무나무는 내게 더 특별해졌다.

   

 초등학교 4학년 때쯤 엄마는 아버지의 외도로 살림을 손에서 놨다. 집이 더러워지기 시작했고, 엄마의 화분들도 하나둘 죽어갔다. 어느새 내 키만큼 자란 고무나무도 상태가 좋지 않아 졌다. 잎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고무나무 줄기가 앙상하게 드러나고 잎은 몇 개 남지 않았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겨울, 엄마는 아버지의 협박과 매질에 결국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엄마가 떠나던 12월  30일 날, 나는 고무나무 옆에 쪼그리고 앉아 엄마가 짐을 챙기는 모습을 살폈다. 엄마의 얼굴은 기미가 번질 때로 번져 얼굴 전체가 거무스름했고, 살이 빠져 튀어나온 광대가 더 도드라져 보였다. 엄마가 아끼던 고무나무에는 이제 관심조차 없었다. 엄마의 그릇들이 하나씩 신문에 쌓아 포개어 상자에 담았다. 엄마의 짐을 싣을 이사 차가 왔고 안방에 있던 엄마의 미싱과 화장대, 그릇장을 꺼내 실었다.


떠나기 전 엄마는 나에게 말했다.

  "니가 새엄마 쫓아내면 엄마랑 다시 살 수 있어. 국에 소금도 넣어 짜게 만들고, 말도 듣지 말고, 새엄마 힘들게 해서 쫓아내.”

  엄마에게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의 아프고 수척해 보이는 얼굴과 힘없는 목소리를 들으니, 떠나는 엄마를 붙잡을 수 없었다. 엄마에게 안기면 안 될 것 같았다.


엄마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주방을, 거실을, 안방을 차려대로 둘러보았다. 나는 엄마의 짐이 빠진 안방에 들어갔다. 바닥은 먼지가 뒹굴었고, 아무것도 없는 어두운 빈방 같아 보였다. 엄마는 간다는 말도 없이 현관을 나섰다. 잠시 후 나도 엄마 뒤를 따라나섰다. 엄마는 빠른 걸음으로 대문 밖을 나섰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용달차에 탔다.


'엄마, 가지 마.'

소리쳐 부르는데 입 밖으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잠바도 입지 않은 나는, 엄마 눈에 띄지 않게 차가운  담벼락에 바짝 기대어 섰다. 엄마의 짐을 가득 실은 파란 용달차를 보며 혼잣말을 했다.



'엄마 나도 데리고 가.'

나는 분명 엄마를 향해 달리고 있는데 내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출발하는 용달차를 바라보다 눈물을 글썽거렸다. 용달차는 그대로 자취를 감췄고, 나는 차가운 벽과 한 몸이 되었다.

엄마가 혹시라도 다시 돌아올까 싶어, 한참을 멍하니 그 자리에 꼼짝없이 서 있었다. 




   

아파트 화단에 버려져 있던 앙상한 고무나무는 나의 어린 시절 죽어가던 나의 고무나무와 닮았었다. 엄마의 손길이 없어지자 죽어갔던 고무나무를 생각하니 어린 시절 내가 보였다. 부모님의 관심 밖에 있던 잎이 떨어지고 시들시들해진 내가 보였다. 


주워온 고무나무는 이제  전과 다르게 키도 크고 잎도 무성하게 윤기를 내며 잘 자라고 있다. 이제는 어린 시절 고무나무도, 겨울날 다 죽어가던 고무나무도 없다. 지금 생생한 고무나무처럼 나 역시 건강하게 살고 있다.






p.119-121 엄마의 특별한 사랑을 기다리는 상처받은 내면아이는 엄마가 꼼짝 말고 있으라 했던 그 어두운 자리에 수십 년 동안 그대로 있다. 자신이 움직이면 엄마가 못 찾을까 봐 그대로 있는 것이다. 의식에서는 자신이 그 자리는 방일 수도 있으며, 엄마에게 버림받은 길거리이거나 엄마를 기다리는 골목의 어느 장소일 수도 있다.

엄마의 특별한 사랑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이제 엄마가 올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 억울함이 마은 깊은 곳으로 부터 올라온다. 억울함을 느끼기 시작하면 상실의 애도가 이미 시작된 것이다.


p.220 아이가 당시 마땅히 느꼈어야 할 감정인 슬픔과 분노를 대면하고 버림받음의 깊은 상실을 애도하자 사라졌다. 아이가 어른이 되는 것이다.

최희수, 푸름아빠 거울육아, 한국경제신문


pp.216-217 엄마와 깊은 애착을 형성하고 세상에 대한 믿음을 키워야 할 시기에 엄마와 떨어지면, 맥락이 없는 아이들은 자신이 사랑받을 가치가 없어서 엄마가 버렸다고 느낀다. 자기가 사랑스럽고 무엇인가를 더 잘했다면 엄마가 버리지 않았을거라고 믿는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버림받은 아이는 자신의 존재를 수치스럽다고 여기고 죄인이 된다.  존재가 수치스러우면 내면이 공허하다. 최희수, 푸름아빠 거울육아, 한국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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