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가을인지 겨울인지 모를 정도로도 서늘한 밤 기운이 감싸던 창문 하나 없는 캄캄한 방안, 어떤 생물체가 바닥을 기어 다니는지도 모른 채 나는 팔로 최대한 몸을 감싸 안으며 추위에 떨고 있었다. 수십 마리의 벌레들이 슬금슬금 올라와 내 몸 구석구석 감싸 안는 것 같았다. 등골이 오싹해지고 목과 등 뒤에 식은땀이 맺히는 게 느껴지는 순간 나는 소름이 돋는 감촉으로부터 벗어나려 발악을 하며 일어났다.
꿈이었다. 다행이라는 안도감과 함께 식은땀과 함께 흘러내리는 허무함과 허탈함. 나의 어린 시절 기억은 벌레와도 같았다. 나는 어둠 속에 든 세상 밖에서든 살아 숨 쉬고 있는지도 모르는 투명인간 같은 존재였고, 사람들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모두가 나를 혐오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만 같았다.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혀 정신을 잃을 테면 나는 자물쇠로 잠겨있는 내 방 책상 서랍의 두 번째 칸을 열어 담배 한 개비를 집곤 했다. 한 모금을 빨아들이고 내뱉을 때 하얀 연기가 내 입속에 머물다 날아가는 것을 보면 지난 기억의 잔해들도 함께 날아가는 것만 같았다. 그것이 내가 담배를 처음 입에 대기 시작한 이유이자, 과거의 트라우마에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행복해 본 사람은 안다. 불행한 것이 어떤 것인지. ‘난 왜 아직도 과거의 기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걸까’ 이렇게 나 자신을 자책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지금 불행하다 느낀다는 것은 나에게도 행복했었던 적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마지막 한 모금을 들이키며 위안을 얻는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준이는 끊임없이 학교에 찾아와 나를 기다렸지만, 나는 일부러 그를 마주치지 않기 위해 후문을 하교를 했다. 우울감이나 속상함은 스스로 위안이 될 때가 있다. ‘ 그냥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자. 이런 날도 있는 거지. 이런 사람도 있는 거지’ 이렇게. 하지만 좌절감 같은 감정은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 건가. 할 만큼 했다라며 다독일 수도 없는 법이며, 모두 할머니의 죽음을 잊은 채 다시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