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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Oct 21. 2021

7장, <트라우마>

할머니와 떨어져 서울살이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내가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 다혜와는 다른 특별한 점이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바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늘 쌍둥이라는 이유로 언니에 비해 모든 게 뒤쳐져 쉽사리 비교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준이는 오늘 내게 나는 세상에서 특별한 사람이고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집으로 들어서자 썰렁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식탁에는 엄마와, 아빠, 다혜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심각한 얘기를 하듯 내가 집에 들어오기만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나는 자연스레 그들의 부름 없이 이끌리듯 식탁에 앉았다.  


“너 사내아이 만나고 다닌다며?” 엄마는 내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나는 말없이 다혜를 바라봤고, 다혜는 입을 꾹 다문 채 내 시선을 애써 피했다.  


“이제 곧 수능이 코 앞인데 공부에 집중해야 할 시기 아니니, 다지야.”

아빠는 차분하게 말했고, 엄마는 갑자기 흥분을 하며


“공부도 못하는 년이, 언니 따라서 야간학습이나 할 것이지. 사내 녀석이랑 뭐하고 돌아다니는 거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방으로 들어왔고, 방문을 닫아도 또다시 엄마가,

“독한 년"이라 말하는 것을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 

4살 때 어린이집을 다니면서부터 모든 게 시작되었다. 아니다 어쩌면 우리 둘이 함께 태어난 것이 모든 문제의 발단이 될 수도 있다. 엄마는 늘 내가 언니만큼 하기를 바랐다. 그것을 충족시키지 못했을 땐 어두운 다락방에 가둬 흔히들 말하는 ‘반성의 시간’을 갖게 했다. 그때 이후로 나는 어두운 곳에 혼자 남게 되면 공황장애가 재발되었고, 과거의 기억에 괴로울 때면 자해를 하기 시작했다. 


새벽 한 시 칠 분. 아빠가 내 방에 들어와, 

“다지야, 할머니가 돌아가셨단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멍하니 아빠를 계속 쳐다봤다. 

“ 자다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대. 그래도 편안히 돌아가셔서 다행이야. 

옷 갈아입고, 빨리 다지가 좋아하는 할머니 마지막 모습 뵈러 가야지” 


병실 앞 들어갈 수 없었다.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볼 자신이 없었다. 아니. 받아 들 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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