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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Oct 21. 2021

6장, <꽃다지>

‘앗싸! 오늘도 1등으로 하교한다.’


나에게는 특이한 승부욕이 있는데 바로 학교를 첫 번째로 나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등교도 첫 번째로 하는 것은 아니다. 언니랑은 다르게 등교는 늘 뜀박질로 시작한다. 오늘도 기분 좋게 학교를 나서자, 익숙한 뒷모습의 아이가 검은색 비닐봉지를 든 채 서있었다. 준이였다. 

나는 깜짝 놀란 채, “어? 너?” 하며 가던 길을 멈추고 서서 준이를 바라봤다. 


“어? 일찍 나왔네? 저번에 급하게 간 게 마음에 걸려서…”

준이는 특유의 눈웃음을 지으며 부끄럽고 머쓱해하는 표정으로 검은색 비닐봉지를 내게 건넸다. 

화분이었다.  


“이게 뭐야?”나는 물었다.  


“꽃다지라는 식물이야. 꽃은 예쁘지만 금방 시들고, 식물은 물과 빛을 주고 사랑과 관심만 줘도 잘 자라니까. 그리고 너 이름도 다지길래…”


나는 재빨리 내 명찰을 손으로 가렸다. 그러면서도 그의 섬세함에 놀랐다. 


“고마워. 처음 받아봐. 이렇게 마음이 담긴 선물... 아 그리고 그날 내가 너무 흥분한 나머지 말을…” 


“괜찮아. 귀여웠어.” 그는 부끄러운 듯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서로의 눈을 한참 쳐다보다 아무 말도 없이 정류장을 향해 걷기만 했다. 침묵 속에서 서로에 대한 묘한 감정이 흐르는 것을 느꼈지만 부담을 되거나 불편한 감정은 아니었다. 다만, 확실한 건 이 모든 게 처음 경험해보는 상황과 느껴보는 감정이라는 것이다. 그가 탈 버스는 도착했지만, 그는 타지 않았다. 벌써 7대의 76번 버스가 지나갔지만 우리는 여전히 버스정류장에서 서로에 대한 얘기를 주고받느라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인지조차 하지 못했다. 행복이 뭔지 조금씩 느낄 수 있었다. 이게 행복이라는 감정인 게 확실하지는 않지만, 늘 파도만 쳤던 나의 내면에 잔잔한 물결이 치기 시작했다. 마지막 버스가 오고, 그와 헤어질 시간이 왔다. 나는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76번의 버스가 지나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면의 잔잔한 물결이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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