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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Oct 20. 2021

4장, <풍선껌>

툭, 하고 선 분홍빛 벚꽃잎이 나의 새하얀 운동화 위에 떨어졌다. 벌써 사계절 중 가장 아름답고, 설레는 계절인 봄이 왔다보다.  


“밟았다.” 

뒤에서 한 남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아이였다. 늘 반대편 정류장에서 76번 버스를 타던 그 아이였다.

나는 그 아이가 한 대사도 잊은 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너 껌 밟았다고.”

그 아이와 나의 새 하얀 운동화를 번갈아 바라보다 신발을 들어올렸더니 하얀 풍선 껌이 찌익 하고 늘어졌다. 


“아씨. 이거 새로 산 운동화인데" 


그러자 그 아이는 

“그러게 조심 좀 하지" 툭 던지며 76번 버스를 탄채 사라졌다.  


학교에 도착해, 수업중에도, 쉬는 시간에도 심지어 점심시간에도 솔솔 부는 바람에 커튼이 휫날리는 창가만을 바라보며 아까 일어난 일을 계속 곱 씹어보았다. ‘그러게 조심 좀 하지’... 참나 지가 뭔데…

그러면서도 심장이 간질거리면서 두 볼이 뜨거워지는 내 자신이 느껴졌다. 봄이라는 계절을 온몸으로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이런 감정은 처음이라 어쩔 줄 몰라, 하루 종일 붕 떠 있는 느낌을 받았다. 친구들도 평소와 다른 내 모습을 발견했는지, 나에게 다가와 무슨 일 이 있는지 캐묻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자기들끼리 온갖 추측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내게 무례한 질문을 했던 똑 잘린 단발머리에 늘 꼬리 빚을 들고 다니는 여자아이가 불쑥 나타나,  


“사랑에 빠졌네.”하며 나의 모든 증상들을 한 문장으로 진단을 내려버렸다.

그러자 마치 자기네들이 사랑에 빠진 아이들 마냥 설레발치기 시작했다. 


“누구야?” 나도 알고 싶다. 신원조차 모르는 아이에게 설렘을 느껴버린 거다. 

“우리 학교야”하며 “설마 우리 학교겠니” 자기네들끼리 북 치고 장구 치며 대화를 하기도 했다. 

“잘생겼어?” 아니 잘생기진 않았다. 


마지막 직격탄으로,

“그 아이 어디가 그렇게 좋은 건데?”라는 질문에 역시나 나는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전교권에서 놀아다니는 언니는 오늘도 어김없이 야간학습을 하고, 껌이 붙은 신발 바닥을 질질 끌고 다니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나는 그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받았던 그 질문, “그 아이 어디가 그렇게 좋은 건데?” 또한 이 모든 게 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라 그저 낯설기만 했다. 봄기운을 느끼며 한참을 걷다 정답을 찾은 것 같았다. 그 아이가 잘생겨서, 키가 커서, 단지 이런 단어들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끌림”이었다. 그 아이에게서 나는 말로는 형용하기 힘든 끌림을 느꼈던 것이다. 그렇게 나의 첫사랑은 서서히 찾아온 봄처럼, 우연히 새 운동화 신은 날에 풍선껌을 밟았던 것처럼, 아무런 예고도 없이 무언의 끌림으로 인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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