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로 인한 공황 장애인 것 같아요.”
“트라우마는 주로 과거에 경험했었던 안 좋았었던 기억에서부터 시작이 되죠.
혹시 어렸을 때 학대받았었던 경험이 있나요?”
아버지는 놀란 표정과 함께 눈이 휘둥그레지고, 손 사례를 치며 “전혀요. 저희 아이들은 6살 때 저희가 맞벌이를 시작한 이후로 할머니 손에서 자라왔습니다. 지금 저희와 같이 산지는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은 나의 치료에 대해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고, 그렇다면 의사는 일단 경과를 지켜보고 다시 공황 장애가 재발한다면 그때는 치료하는 것에 대해 권유를 하였다. 그리고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비상약을 처방해주고, 엄마, 아빠, 그리고 다혜 이렇게 우리 모두는 한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향하는 내내 적막한 정적만이 흘렀다. 집으로 도착하자마자 나는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렇게 사람이 미워지는 날이면 하루 종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만 잤다.
작고 샛노란 개나리가 곳곳에 박힌 초록 논밭으로 가득한 마을에 옹기종기 붙어있는 돌담집들이 가득한 마을이었다. 나는 뭘 하든 항상 할머니 옆을 졸졸 따라다니기 바빴다.
“할미 뭐해?”
“알면서 물어보긴. 뭐하긴 니들 밥 차려줄 준비 하지.”
“나는 할미가 차려 준 밥이 세상에서 젤루 맛있더라.” 하며 나는 할머니를 향해 엄지를 치켜 새웠다.
“이 할미는 다지가 할미 밥 맛있게 먹는 모습 보는 낙으로 산다,”
그렇게 똑같이 나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우며 할머니는 피씩 웃었다.
할머니의 밥상은 손맛으로 다져진 반찬들과 찌개로 하나하나 채워져 갔고, 나는 눈치껏 언니를 부르러
방으로 들어갔다.
“다혜 언니 밥 먹어”
언니는 역시나 공부 중이었다.
언니가 못 들었는지, 나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서 언니에게
“언니 밥 먹어”라고 조용히 속삭였다.
언니는 갑자기 “알겠다고!”라고 짜증을 냈고, 나는 별수 없이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왔다.
“왜? 다혜는 왜 안 나오고?” 할머니가 물었다.
소리 내며 울지 않는 법을 일찍이 배웠던 나였는데 할머니의 얼굴을 보자마자, 갑자기 눈물이 울컥 나왔다. 할머니는 그런 나를 품에 안겨주며 “우리 다지 속상했구나, 저년의 가시마는 뭔 공부를 그리 한대냐. 우리 다지 참지 말고 울고 싶은 만큼 펑펑 울어버려.” 할머니는 내가 항상 울먹일 때마다 참지 말고 펑펑 울라고 나를 쓰다듬여 주셨다. 그러면 나는 금세 울음을 그치고 할머니 품에서 곤히 잠들곤 했다.
나는 나지막이 “할머니...”를 불러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눈을 뜨자, 베갯잇이 온통 눈물로 젖어있었다. 꿈이었다. 아주 달콤한 꿈이었지만, 지금 내가 마주한 건 아주 불행한 현실이었다.